양구에서 광복절 기념행사 따로하는 이유... '정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돌에 새긴 마음 ②] 양구 사람들 이야기

등록 2023.08.06 16:30수정 2023.08.0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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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의 삶이 뒤엉키고, 과거 일들과 현재 일들이 등나무 줄기처럼 얽히고설키며 통시적(通時的)인 날줄과 공시적(共時的)인 씨줄로 짜인 것을 역사라 부를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한 것이라 조국과 겨레 앞에 모든 것을 바쳤던 독립지사들을 이젠 직접 만날 수 없고, 그들 곁에서 함께했던 이들도 세상을 떠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립지사는 아닐지라도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계승하고자 했던 이들 역시 늙음을 피할 길이 없다. 이제 귀는 어둡고 기억은 흐릿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역사를 살아내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더 늦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시작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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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안두희응징비, 백범어록비, 곽태영의거비 ⓒ 조선동



위도로서의 38선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지만, 조국을 양단하는 외국 군대들의 경계선으로서의 38선은 일각이라도 존속시킬 수 없는 것이다.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의 기아가 있고, 가정의 이산이 있고, 동족의 상잔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 <단결로 독립 완수 - 김구 주석 남북 동포에 격(檄)> (1948.4.21.)
 

백범은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으며,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위를 위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 협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조국 분단을 막기 위해 생의 마지막을 통일 조국 건설의 제단에 바쳤다.

백범은 1949년 6월 26일 점심 무렵, 안두희의 흉탄에 '뫼 무너지듯, 크낙한 바위 무너지듯' 숨을 거두었다. "남북분단은 끝내 동족상잔의 참상을 불러올 것"이라고 했던 백범의 예언처럼 꼭 1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우리 역사에서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 벌어졌다.

양구에서 있었던 일

강원도 양구는 한국전쟁 최고의 격전지 중 하나다. 1951년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 벌어진 '피의 능선' 전투에서만 국군과 미군은 1개 연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북한군은 1개 사단 규모 이상의 피해를 봤다.

백범에게 총을 쏜 안두희는, 백범 암살 사건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주변에서 기다렸던, 헌병들에 의해 구출되어 헌병사령부로 옮겨졌다.

안두희가 재판받던 법정 주변에는 난데없이 '애국자 안두희를 석방하라'라는 벽보가 붙어 사람들을 의아하게 했다.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지만, 안두희는 무기형을 받았고, 석 달 뒤에 15년으로 감형됐다. 복역 중이던 안두희에게는 언제든지 술과 고기가 마음껏 제공됐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안두희는 현역 군인으로 복귀하여 승진을 거듭했다. 전역한 안두희가 당시 최고 권력과 동향 친구이자 지역 사단장이던 이기건의 비호 아래 군납업을 하면서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양구다.

백범을 시해한 안두희를 응징하고자 몇 년을 벼르고 별렀던 곽태영이 양구에 온 것도 필연이라 하겠다.

백범이 걱정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이 첨예하게 벌어진 곳, 동족상잔의 피가 흥건하게 고인 양구 땅에 안두희가 하필이면 자리를 잡았고, 곽태영은 끈질긴 추격 끝에 양구에 찾아들었다. 그리고 백범 암살범에 대한 응징이 바로 양구에서 벌어졌다. 절대 흘리지 말았어야 할 희생으로 물든 곳에, 배반의 피가, 반역의 피가 더해졌다.

지금 양구에서는 - 양구의 광복절 기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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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영 의거 20년이 되는 1985년 4월 17일에 민족정기소생협회가 세운 곽태영의거비 ⓒ 조선동


백범 서거 33년이 되던 1982년 3월 3일, 홍천 사람 남궁경은 안두희 집터가 있던 자리에 안두희응징비를 세웠다. (관련기사: 김구 암살 안두희를 '응징'한 곽태영...그를 위한 비석 https://omn.kr/24hau ) 두 차례의 대수술 끝에 겨우 목숨을 건진 안두희는 양구를 떠나 은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두희응징비가 새워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에 의해 원래 자리에서 옮겨져 외진 곳에 방치됐다가, 곽태영 의거 20년이 되는 1985년 4월 17일에 민족정기소생협회가 '곽태영의거비'를 세웠다.

이어서 1995년 4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1987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중 생존자였던 조경한 선생을 회장으로 추대하면서 조직했다. 곽태영 의거 30주년이 되는 1995년에 양구에 '백범어록비'를 세웠다.)가 백범 선생의 친필 어록(평생염원 오국독립 平生念願 吾國獨立)을 새겨서 냉천골공원에 '백범어록비'를 세우자, 누군가 두 비석의 옆에 안두희 응징비를 가져다 엎어놓은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졌다.

그 뒤로 양구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이 이 세 비석을 관리하면서, 모두 세 차례에 걸쳐서 주변을 정화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양구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김영진 선생을 중심으로 한 시민 모임이 첫걸음을 뗐고, 이후 전창범 전 양구군수가 도움을 주면서, 지역주민과 지역자치단체가 뜻을 모았다. 매해 광복절에는 이곳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자주 통일을 기원하는 광복절 기념행사를 한다.

이곳을 꾸리고 가꾸면서, 매해 광복절에는 기념행사를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역사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한 줄기의 역사가 있는 것 같지만, 그 아래로는 두 갈래의 역사가 있어요. '상해임시정부'라는 김구 선생님의 뜻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건국절'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그거예요. 이명박 정부 때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해서, 우리가 급하게 '광복절기념위원회'를 꾸린 거예요. 잘못하면 '광복절'을 '건국절'로 빼앗기게 생겼으니까요.

이제부터는 시민단체 중심으로 행사를 해나가려고 해요. 굴절된 우리 역사가 언제 바로잡힐지 모르겠지만, 그 연장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거고요. 우리 후대에, 젊은이들에게 역사 탐방도 시키고… 이 성스러운, 역사를 심판하고 단죄한 자리, 아직도 남북이 대치하고 어마어마한 무기로 서로를 죽이려는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자리에 서린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 김영진(양구 으뜸이발소 운영)
 

"제가 다른 모임에 가면 안 그런데, 여기에서는 늘 막내예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하는데... 우리가 광복절 기념행사를 하는데, 저보다 어리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는 행사가 되어서, 곽태영 선생님의 뜻과 의지를 본받고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백범김구재단이나 관련 단체에서 학생과 이곳에서 1박 2일 정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게 하고, 학생들이 '아, 이런 곳이 있구나, 관이 아니라 주민 주도로 이런 일을 하고 있구나, 이런 일들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구나' 이런 것을 깨닫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데를 우리만 알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게 알려주고 연결해주는 게 우리의 큰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계기로, 젊은이들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하나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조인선(공무원, 전 공무원노조 양구군사무국장)

"이곳의 이야기를 향토사 차원에서라도 논문 하나 써보고 싶어요. 주민들도 잘 몰라요. 저희 어렸을 적에는 여기는 '안두희 별장'으로 통했어요. 어렸을 때는 이곳에 이야기를 전혀 몰랐어요. 나중에 커서 알게 된 거지요.

지금 광복절 기념식을 따로따로 해요. 군청에서 주관하는 기념식은 따로 하고, 여기는 대부분 시민단체 중심으로 조촐하지만, 저희 나름대로 준비해서 기념식을 하고 있어요. 처음보다는 관심 가져주는 분들도 생기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테러 사건도 기념해야 해?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어요. '정의'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는 것이 아쉽고, 뜻 있는 분들도 자꾸만 연로해지시고, 오늘 이런 기회를 통해서 조금 더 이곳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현장성'이 알려지고 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 김규호(전 도의원, 향토사학자)

"여기서 8.15 기념행사를 계속하고 있어요. 모이는 사람의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힘이 있고 의미 있는 모임이라고 생각해요. 백범 선생의 정신과 곽태영 선생의 의로움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면서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데에도 하나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건국절 논란이 있을 때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어요.

8.15를 광복이 아니라 건국절로 만들려고 했고, 자주독립을 외치고 통일을 위해서 일하다 살해당했던 김구 선생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싹 갈아엎고, 건국으로만 기억하고자 했던 음모에 분개했고, 작은 동네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에서, 이런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결국에는 김구 선생님이 염원하셨던 조국의 자주와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서 하나의 작은 디딤돌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기쁘기도 하고 자랑스러워요." - 한명희(전 강원도 여성복지국장. 민중민주당 대표)

"역사의 흐름을 얼마나 정확하게 후손에게 전해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구 선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민족주의자입니다. '민족'이란 개념은, 결국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실타래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바라보는 진보와 보수가 보는 시각이 다르겠지요. 그 다른 부분까지도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가 생각해요. 이곳에서 행사를 하면서, 이곳의 이야기가 주변에 알려지고 확장되었으면 하는데, 그게 어려움이 있어요. 이런 자리를 통해서 이곳 현장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 이영기(전 양구군의원)
 

양구 지역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김주 선생(심산 김창숙 선생의 손녀)은 미리 적어 온 메모를 꺼내어 읽으셨다. 김주 선생은 삼십 년 전 '백범어록비'를 세울 때, 물심양면으로 열과 성을 다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양구와 백범의 인연이 잊힐까 봐, 그 인연의 끈을 젊은이들에게 건네주기 위해, 백범 선생의 증손 김용만과 몇몇 젊은이들의 손을 붙들고 양구를 방문하였다. 그래서 이 기사도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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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세 비석이 자리잡게 된 사연을 설명하고 있는 냉천골공원의 안내문 ⓒ 조선동

 
오늘 여기에

1946년 경교장에 어른들 손잡고 다니던 때, 넉넉한 미소로 반기여 주셨던 白凡 할아버지.
너무나 슬픈 기억이 있어 잊으려 했던 생각. 내가 성장하고 왜 그렇게……, 세상은 시끄러워져 있을 때, 별별 일이 겹쳐 있어 정신이 없을 때.
을지로3가 2층 사무실에는 뜻은 있으나 힘이 없는 지사들의 모임 장소였다. 손기정(마라토너), 류우석(류관순의 오빠), 김석원(성균관유도회), 신수범(신채호의 아들), 주 선생. 그때 드나들던 젊은 청년들, 곽태영.

나는 유림 집 안에 있는 사람이다. 성균관유도회는 이승만 정부의 먹잇감이 되어 몹시 시끄러웠다. 우리 할아버지의 바른말은 극히 싫어했다. 탄압이 심했다. 뜻 있는 분들의 발의로 백범 할아버지의 어록비를 세웠다, 양구 여기에.

뜻 있던 분들은 다 타계하시고, 나만 남아서 그때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때의 이상이 남았으니 난 이제 만족이다. 이제는 젊은 세대에게 넘겨줄 일뿐이다. 이렇게 역사는 흐릅니다.

이 비석의 돌은 장항선을 타고 가서 어렵게 구하여 글씨는 새겼으나 석공의 노임을 주지 못해 석공이 비석을 깔고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련하다. 이곳에 외롭지만 오래 서서 견뎌 주신다면 백범 할아버지의 뜻이 웃음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김구는 두 번째 투옥된 서대문 감옥에서 '백범(白凡)'이라는 호를 지었다. '백범(白凡)'은 '백정(白丁)'과 '범부(凡夫)'에서 한 글자씩을 따온 것으로, 우리나라가 완전한 독립국이 되려면 백정과 범부, 즉 보통 사람들도 모두 각성하고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을 호에 담았다. '백범'은 김구 한 사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역사를 살아가고자 하는 이 땅의 사람들을 통칭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양구에서 만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역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이전에 벌어진 사건들을 단순히 기억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그것은 역사적 사건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각자의 삶에 끌고 들어와서, 자신과 주변을 바꾸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올여름 양구로 휴가 가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박수근미술관, 두타연, 한반도섬, 국토정중앙천문대 두루두루 살펴보시고, 이곳 냉천골공원도 한번 다녀가시라. 광복절이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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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영 의거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양구에 세운 백범어록비 ⓒ 조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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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줄 왼쪽부터] 홍소연(심산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 이정순(곽태영 의거를 목격)[윗줄 왼쪽부터] 김용만(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 김금자(비석 정비 후원), 김주(심산 김창숙 선생의 손녀), 김영진(양구에서 이발소 운영, 기념공원 보존의 중심인물), 김규호(전 도의원, 향토사학자), 정일철(당시 곽태영 하숙집 아들), 이영기(전 양구군의원), 김태욱(심산 김창숙 선생의 증손), 한명희(전 강원도 여성복지국장. 민중민주당 대표), 배상국(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조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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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선생 말씀 ⓒ 조선동

 

 
2023 양구 광복절 기념행사 계획
1. 때 : 2023년 8월 15일(화) 11시
2. 곳 : 양구 냉천골공원(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하리 18-5)
#양구 냉천골공원 #백범 김구 #곽태영 #민족정기소생협회 #안두희 응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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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사, 한국근현대사 특히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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