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수인 도시는 안전하고 아름다운가

영화 '엘리멘탈'로 보는 장애 '시민'의 이동권

등록 2023.08.11 15:04수정 2023.08.1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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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 어느새 600만 관객을 넘어섰다. 누가 봐도 뉴욕에 정착한 이민 가족의 이야기라 미국의 관객 후기에도 '내 가족의 이야기 같다'라는 평이 눈에 자주 띈다. 경제 발전기에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부모님 이야기를 보는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K 장녀'에 대한 공감대도 큰 편이다.  

<엘리멘탈>에서 부모님과 달리 이민 2세인 엠버는 언어와 문화적 정서가 다른 시민들과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왜 지하철을 타고 다리를 건너 엘리멘트 시티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걸까? 엠버의 대사 하나에 멈칫했다.

"애초에 시티는 불의 사람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곳이라구! (The City isn't made by Fire people IN MIND!)"

불의 원소인 '시민' 엠버는 지하철을 타고 시티로 들어가는 내내 주변의 물, 공기, 흙 승객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자체가 주변 승객을 태우거나 증발시키며 민폐가 되기 때문이다. 불의 시민만 민폐를 끼치는 걸까? 엠버의 부모가 엘리멘트 시티에 도착해 처음 지하철을 이용했을 때, '임신' 중이던 엠버의 엄마는 물의 승객 때문에 다쳤었다. 

민폐가 되든지, 위험을 감수하든지. 엠버와 같은 소수의 불의 주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느끼는 감정일테다. 애초에 그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대중교통. 지하철에 이어 버스 승하차 시위 중인 한국의 '엠버'들에게 시선을 돌려본다.  

다수일 때는 보이지 않는 불편
 
미국에서 많이 이용하는 G사의 지도 앱과 한국에서 많이 이용하는 K, N사의 지도 앱을 단순 비교해 보았다. G 지도 앱의 경우 양국의 관공서 목록에서부터 휠체어 그림이 바로 보인다. 식당이나 마트, 영화관 같은 생활 편의 시설을 검색해도 휠체어 접근성 정보를 첫 화면에서 바로 알 수 있다. G 지도 앱의 사용자 설문 조사나 지역 가이드 활동에도 휠체어 접근성 여부는 우선적으로 기입할 중요 정보로 다룬다. 

한국의 두 지도 앱을 하나씩 확인해 보았다. 목록에서는 물론 한 장소씩 검색을 해도 휠체어 편의 시설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내가 검색한 곳들 중 서울시청, 중구청, 은평구청 정도에서 동물 출입, 놀이방 시설과 함께 휠체어 사용 가능 표식을 발견했다.


관공서 뿐 아니라 대다수의 편의, 위락 시설에서 와이파이와 주차장 정도만 중요 정보로 담고 있을 뿐 휠체어 접근성 여부를 알기는 어려웠다. 휠체어 사용자는 장소 이용객으로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 앱을 이용해 출발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어려움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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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휠체어 사인들 수동적이고 정적인 느낌의 휠체어 그림이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그림으로 대체 사용되고 있다. ⓒ 장소영

 
또, 미국은 꾸준히 휠체어 사인을 바꾸어가고 있다. 주차장, 공용 화장실, 엘리베이터, 안내 표지판 등 주변 어디에서나 이전 그림보다 역동적이고 주체성이 강한 휠체어 그림을 볼 수 있다.

하루 동안, 필자의 일상 중에 보이는대로 담아본 사진들이다. 학교 주차장, 마트 앞 주차장, 동네 도서관의 화장실, 동네 공원의 화장실 등이다. 시설이나 그림이 어디에나 있다는 것은 장애인, 비장애인이 생활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고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화장실 시설은 한국이 압도적으로 훌륭할 것이다. 비데가 설치된 곳도 많고 위생적이고 세련되었다. 그러나 미국처럼 유모차나 휠체어가 들어가고 기저귀를 갈 수 있는 테이블이 벽에 부착된 큰 공간의 화장실 칸막이는 보기 드물다. 
 
 
유명 공연장 좌석 예약 지도도 단순 비교해 보았다. 뉴욕의 C 공연장은 백 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건물이다. 엘리베이터와 연결되어 있는 층에 휠체어 좌석과 동반자석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동반자석은 일반인이 예매할 수 없다. 동네 영화관, 공연장, 위락 시설도 마찬가지다. 휠체어 이용자의 필요를 잘 파악하고 배치되었다는 뜻이다. 최근에 문을 연 한국의 L 콘서트홀 좌석 지도이다. 맨 뒷자리에 일렬로 휠체어 석이 지정되어 있다. 보호자가 필요 없는 장애인 단체 관람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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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화관 예매 사이트 휠체어 좌석도 많지 않고, 동반자(보호자) 좌석도 찾기 어렵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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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화 예매 사이트 영화 관람에 좋은 위치에 휠체어 사용자와 동반 보호자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특별한 영화관이 아니라 동네마다 있는 일반 영화관이다. ⓒ 장소영

 
한국의 대형 영화관의 예매 사이트 몇 군데를 둘러봤지만 휠체어석은 매우 적었다. 미국의 경우 일반 동네 영화관에도 휠체어 이용자는 물론 동반자(보호자)석이 함께 지정되어 있다. 출입이 용이하고 관람에 좋은 위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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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과 자폐인 보호 주의 간판 스쿨존 뿐 아니라 자페인과 아동 보호 주의 표지판을 볼 수 있다. 특정구역이 아닌 보통의 동네에서 보는 표지판들이다. ⓒ 장소영

   
미국 동네에서 운전자들이 흔히 만나는 표지판이다. 근방에 살고 있는 어린이와 자폐인의 안전을 위해 차량 운전을 주의하라는 뜻이다. 자폐 아동 보호 사인은 미국에 와서 보고 감탄했던 표지판 중 하나이다. 개인이 신청할 수도 있고 보호가 필요한 주민이 이사를 올 경우, 관공서에서 파악하여 의사를 묻고 설치해주기도 한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이들을 고려하는 문화가 골목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학교, 쇼핑몰, 위락 시설, 카페와 식당, 대중교통 어디에서나 장애-시민 '엠버'들을 만날 수 있다. 동반자(자원봉사자, 보호자)가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누구도 그들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접촉점이 많을수록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더 좋은 공생의 방법과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정책은 시민들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지하철을 이용 중인 뉴욕 시민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서울 지하철 내에 있는 핑크색 좌석이다. 영화 '바비'가 한창 흥행 중이어서인지 '바비용 좌석이냐(just for Barbie?)'라고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도 있었다. 임산부용 좌석이라고 일러주었더니 특히 여성들이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반색했다.

임신한 몸으로 지하철을 탔다 상해를 입은 영화 속 엠버의 엄마가 한국의 지하철을 탔다면 도시에 대한 인상이 조금은 따뜻했을 것이다. 지하철 역사나 인도 위의 노란 점자 블록을 보고도 놀라워했다. 뉴욕의 지하철이나 인도에서는 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엘리멘탈>로 돌아가 보자. 무슨 사고를 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시민' 엠버는 지하철을 타면서부터 움츠러들고, 주변의 다른 '시민'들은 '여기에 왜 불의 원소가 들어온 거야' 삐딱한 시선으로 힐끔 거린다. 내가 타고 있는 지하철에서는 어떤 시선이 오가고 있을까. 

왜 일반인의 자리를 내줘야 하냐는 질문에 엠버의 대사를 조금 바꿔 되돌려 주고 싶다. 애초에 그들의 자리였어야 할 공간을 다수인 비장애인들이 차지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돌려주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배려를 받았으니 이제라도 그들의 자리를 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영화 속 엘리베이터에서, 영화관에서, 공원에서 자신의 빛남과 열정을 후드 재킷으로 가려야 하는 엠버를 보호해 주는 것은 '웨이드'라는 다수에 속한 시민이다. 개인이 알아서 준비하고, 개인적으로 선량한 시민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고위공직자와 공무원의 외유 목적은 여행이 아니라 교류를 통한 배움이다. 외국에 가서 크루즈 선상을 경험하기보다, 일주일쯤 휠체어로 생활해보면 어떨까. '시민'의 이동권이 '시민'과 싸울 일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중복 게재 합니다.
#장애인 #장애시민 #이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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