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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새벽 '납치'된 소녀상... 그 이후는 이렇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세워졌던 독일 카셀대학교, 철거 이후 직접 찾아가보니

등록 2023.08.15 11:04수정 2023.08.1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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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카셀대학교의 소녀상 설치와 철거

지난해 7월 8일, 독일 카셀대학교에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 잡았다. 학생회 의결로 영구 설치가 결정됐다. 베를린 주민들 주도로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이어 독일 내에 두 번째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것이다. 특히 독일의 대학 캠퍼스 내에 최초로 설치됐다는 것은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렇다면 독일에서의 '평화의 소녀상'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해 7월 카셀대학교에는 소녀상과 함께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설치됐다.
 
"전시 성폭력은 현재도 여전히 발생하는 문제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와 유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전쟁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투쟁한 이들의 용기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 안내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카셀대학교에 설치된 소녀상은 단순히 한일문제에서 한국 편을 들 것인가, 일본 편을 들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에도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카셀대학교 학생회는 단순히 한국 편을 들기 위해 소녀상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망라한 과거 위안부 피해자 추모와 이와 같은 전쟁범죄가 미래에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수많은 전쟁범죄가 보고되었으며,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역시 다수 발생한 것이 세상에 알려져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한 시기에 카셀대학교 학생회에서 결의된 소녀상 설치가 갖는 의미는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2023년 3월 돌연 카셀대학교의 소녀상 철거에 관한 뉴스가 보도됐다. 새벽을 틈타 학교 측에서 철거한 것이다. 철거를 요구하는 학교 측과 철거를 반대하던 학생회 측이 대립하던 중, 학교 측이 사전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철거에 나섰다.

당시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대학 당국은 공식 누리집에 '2022년 카셀대 총학생회가 학생회관 앞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대학의 허가가 한시적으로 체결됐고 이미 몇 달 연장됐으나 만료됐다'며 소유주인 코리아협의회가 소녀상을 찾아갈 때까지 학교가 이를 보관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한겨레>는 이 소식을 전하며 "일본 정부의 지속적 철거 압박을 받아온 대학이 전격 철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평화의 소녀상의 빈자리 


철거 직후 공간만 덩그러니 남아있던 곳에 학생들은 빈 의자를 가져다 놓고, 항의 문구를 작성한 패널 등으로 소녀상을 대신했다. 철거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광복절을 이틀 앞둔 8월 13일 카셀대학교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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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의 빈자리 독일 카셀대학교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지난 3월 기습철거된 이후, 약 5개월이 지난 후에도 소녀상 자리는 보존되고 있다. ⓒ 박신영

 
소녀상 자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오히려 소녀상 자리 뒤편에 나무로 가벽을 추가로 설치해 항의 문구를 붙여뒀다. 소녀상 철거를 두고 납치(kidnapping)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그리고 '소녀상을 찾는다'는 전단을 작성해 부착해 뒀다. 한국에서도 잊히고 있는 소녀상 철거 문제에 독일의 대학생들은 지금도 여전히 항의하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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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전단지 소녀상을 찾는다는 전단지를 제작해 붙여두었다. 하단의 QR코드를 스캔하면 소녀상 되찾기 서명운동 페이지로 연결된다. ⓒ 박신영

 
'기록'하고 '기억'하는 나라 독일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특징처럼 보이는 장면이 몇 가지 눈에 띈다. 그것은 '기록'하고 '기억'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의 여러 지역이 파괴되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렇기에 제2차 세계대전의 원흉인 독일 나치와 관련된 상징은 금지돼 있다. 그럼에도 독일은 '기억'한다.

독일에서 다양한 박물관을 방문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치'와 관련된 기록이다. 독일의 풍부한 석탄 산지로도 유명한 루르 지방, 독일 에센에 위치한 '루르박물관'은 나치의 석탄 이용에 대해 전시한다.

우리에겐 소녀상 설치 및 철거로 유명해진 카셀에 있는 '그림 형제 박물관'에는 동화작가이자 언어학자인 그림 형제에 대해 전시하면서, 그림 형제가 시작한 독일어 사전 제작이 나치 통치 하에서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설명한다.

함부르크에는 남녀노소들에게 인기가 많은 '미니어처 원더랜드'가 있다.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전 세계 다양한 풍경이 장관을 이루는 가운데, 독일 변화의 역사를 다룬 코너가 눈에 띈다. 시대별로 독일의 특징을 미니어처로 만든 것인데 나치가 세상을 뒤덮고 유대인이 끌려가고 국민을 선동하는 장면, 장면이 모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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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끌려가는 장면 미니어처 원더랜드에서 나치 통치하에 끌려가는 유대인을 묘사한 장면이다. ⓒ 박신영

 
독일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건물에 동판으로 된 안내판이 부착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안내판엔 이 건물이 나치 시절에 무엇으로 이용됐는지, 이 장소에서 유대인 몇 명이 탈출하다가 사망했는지 등 다양한 정보가 기재돼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나치' 통치 시절을 그리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조건 끌어내리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나치에 의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기록하고 기억하기에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반성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기억'하는 나라 독일에서 자행된 '역사 지우기'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박물관에도, 거리의 건물에도 '나치'와 관련된 기록은 독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기억'하는 독일에서 소녀상 철거라는 '역사 지우기'가 자행된 것이다.

소녀상 철거는 '기억'하며 '반성'하는 독일의 정신과 반대되는 것이다. 민주적인 절차로 학생회가 결정한 것을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철거한 것은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독일 카셀대학교 입구에는 조형물이 하나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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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대학교 조형물 강제노동자와 강제수용소로 추방당한 이들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 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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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 안내판 카셀대학교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 안내판이다. ⓒ 박신영

 
안내문에는 강제 노동자들과 강제 수용소로 추방된 사람들을 상기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표지판에는 '기억의 길'이라고 쓰여있다.

소녀상 철거를 통해 '기억'하기를 부정한 곳에 '기억의 길'이라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소녀상 #평화의소녀상 #독일 #카셀대학교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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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다문화사회전문가. 다문화사회와 문화교류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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