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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소극대응'에 교권보호위 못 연 교사, 결국 학생은 또 욕설

[제보취재] 교장이 나서서 "교보위 열린적 없어"... 교육부와 서울교육청도 "문제없다" 결론

등록 2023.08.29 10:05수정 2023.11.3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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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 A씨가 지난해 10월 학생의 교권침해 후 받은 신경정신과 진단서. 진단서에는 "심한 스트레스 반응과 불면, 걱정 상황의 강박반추, 만성프로증후, 자율신경실조증, 무력증과 집중장애 등을 동반한 불안동반 우울증 치료 중", "향후 3개월 가량의 안정과 집중치료가 필요하다고 사료 됨" 등의 내용이 담겼다. ⓒ A씨 제공

 

학교의 미온적 대응으로 제때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열지 못했다가 결국 교권침해가 재발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교사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고통을 겪었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이 나왔지만, 교육청과 교육부는 학교 측 처분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서울의 13년 차 초등교사 A씨는 지난해 3월 학생으로부터 폭언을 듣는 등 교권침해를 당했다. 이 학생은 여러 차례 지도를 따르지 않고 자리를 무단 이탈하기도 했다. 정신과 상담 및 치료를 받아야 했던 A씨는 두 달 뒤 교보위 개최와 병가를 요청했다. 교보위는 학교장 또는 교권보호위원장 또는 재적위원의 1/4이 요청하는 경우 개최된다.

하지만 교장은 교보위 개최를 요청한 A씨를 불러 "우리학교에서는 그간 (교보위가) 열린 적이 없다", "나중에 소송까지도 갈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소송에 가도 실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조치가 나오지 않아 학교를 애먹인 사례가 있다", "병가를 쓰면 교보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등의 말을 했다. 

이같은 교장의 말을 만류로 여긴 A씨는 요청을 철회했고 결국 교보위 개최는 무산됐다. A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학교 최고책임자가 교보위 개최와 실효성 등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냈는데, 그 뜻을 거슬러 교보위를 열면 나중에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지 않느냐"라고 토로했다. 

교사 연가 요청에 교장 "학교 경영 어떻게 하냐"

이후에도 학생의 교권침해 행동은 잦아들지 않았다. 학생의 폭언과 지도 불응이 이어졌고 결국 지난해 10월 심한 욕설을 들은 A씨는 다음 날 다시 정신과를 찾아야 했다.


A씨는 연가·조퇴 또한 학기가 끝날 때까지 사용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A씨는 남아 있던 병가(약 20일)와 연가를 붙여 쉬겠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교장은 "학급은 어떻게 할 거냐", "학부모들이 민원을 넣으면 어떻게 답해야 하냐", "학교 경영은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에 따른 특별휴가(5일)만 허가했다. 

이 사건은 2022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다뤄졌고 이후 A씨의 재요청으로 그제야 교보위가 열렸다. 해당 학생은 '사회봉사 10시간, 심리치료 6시간' 처분을 받았다. 교보는 교권침해 정도에 따라 학교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출석정지, 전학, 퇴학 등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A씨는 "교보위 처분으로 해당 학생은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만약 (처음 요청했던) 5월에 교보위가 열려 문제 행동이 개선됐다면 10월에 더 큰 교권침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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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강화를 위한 우선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국회 국정감사 지적 후 서울시교육청이 해당 학교를 상대로 '특별장학(교육청의 조사 절차로 징계 등 행정처분 가능)'을 진행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항의하는 A씨의 고충심사 청구 또한 교육청·교육부 모두 기각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교육위원장이었던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지난해 5월 교보위 만류가) 사실이라면 그 학교 교장·교감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며 "긴급하게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서울시 동부교육지원청은 지난해 말 특별장학을 실시했지만 '학교 교육 행정상의 부적절성을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해당 특별장학을 통해 '교장이 5월 면담 직후 교보위 개최 계획을 담은 교육활동 침해사안 발생보고서를 결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교장이 보고서를 결재했다는 점은 특별장학 및 이후 교육청·교육부의 고충심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A씨는 "당시 고민 끝에 철회 의사를 밝히니 '이미 결재가 됐다'거나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 (교보위 개최) 취소 절차가 이뤄졌다"며 "(교장이 보고서를 결재했다는 걸) 두 달 뒤인 지난해 12월 '특별장학' 결과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A씨는 '특별장학 결과가 부당하다'며 서울시교육청에 고충심사를 청구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 보통고충심사위원회는 "A씨가 교보위 개최와 관련해 부정적 반응을 느꼈다는 것만으로 교장이 개최를 만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A씨는 교육부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교육부 중앙고충심사위원회 또한 지난 5월 이를 기각했다. 중앙고충심사위원회는 "해당 발언만으로 학교장이 교보위와 연가 요청을 거부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교장 "만류 아닌 부수적인 설명... 결재도 했었다"

교장은 2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5월) 교보위를 개최하자고 교감 등 여러 사람이 합의하는 자리가 있었고 그때 (A씨에게) 부수적인 설명을 해준 것"이라면서 "(교육청·교육부의) 여러 조사를 통해 제가 만류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담당 부장이 와서 (A씨) 본인이 (교보위 개최를) 취소하겠다고 해서 '왜 갑자기 취소합니까'라고 말했었다"라며 "(A씨가 첫 번째 교보위 개최를 요청했을 때) 제가 교육청에 보고했고 결재했었다. (제가 개최를 만류했다면) 그렇게 보고하고 결재했을 이유가 없다"라고 밝혔다.

더해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에 따라 A씨에게 특별휴가(5일)를 제공했다"며 "이후 공가를 더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았고 매뉴얼상 혼란스러우니 교보위 심의를 거쳐 판단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A씨는 "작년 10월 열린 교보위는 국정감사에서 제 사례가 언급됐기 때문에 학교장이 개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며 "공론화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학교장이 '부수적인 설명'이라고 주장하는 그 발언들이 교권침해를 당한 교사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교육 당국이 다시 한 번 더 고민해봐주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또 "교권침해 학생과 단 하루라도 더 분리된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싶어 연가 신청을 했던 것인데, 학교장은 학부모 민원 등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면서 교권 보호를 위한 조치는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라며 "학교장의 만류 발언에 대해 교육 당국이 문제 없다고 넘어가버리면, 앞으로 다른 학교장들도 교보위를 열고 싶지 않을 때 피해 교사에게 이와 같은 발언을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교육 당국, 기계적·형식적 결정... '참고 넘어가자' 학교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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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최근 서이초 교사의 사망으로 교권침해를 막기 위한 여러 해법이 제시되고 교육부 또한 대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교보위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교육부는 지난 23일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며 개별 학교에서 운영하는 교보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해 전문성과 객관성을 높이기로 했다. 또 교사의 요청만으로도 교보위가 열릴 수 있도록 개최 조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선 교원지위법(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등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피해 교사 입장을 좀더 고려했다면 이 사안은 충분히 고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며 "교육 당국이 피해 교사의 처지에서 판단하기보단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보위는 피해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교내 유일한 장치임에도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열리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학교장이 아닌 피해 교사가 신청하면 교보위가 바로 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희정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은 "교보위가 있긴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 보니 사안이 심각하지 않으면 참고 넘어가자는 게 학교 현장의 일반적인 분위기"라며 "학교장이 어떤 의지와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교권침해에 있어 너무도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사람에 상관없이 제대로 기능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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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보호위원회 #초등교사 #교권침해 #고충심사 #서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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