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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조원 '묻지마' 구조조정?... R&D 7조 삭감 "굉장히 위험"

정부 2024년 예산안 발표, 구체적 내역 공개 안해... 정치적 논리 작동하나

등록 2023.08.29 11:34수정 2023.08.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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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6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중기재정운용 및 내년도 예산 편성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2023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윤 대통령,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대통령실 제공


정부가 내년 예산 23조 원 구조조정 방침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연구개발(R&D) 예산 7조 원 삭감 방침에 대해서는 "굉장히 위험한 방식"이라는 비판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29일 기획재정부는 '알뜰재정, 살뜰민생 2024년 예산안' 자료를 통해 "모든 재정사업의 타당성과 효과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재정 누수요인을 차단"이라면서 "약 23조 원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추경호 "대단한 비밀 아니다"면서도...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23조 원에 달하는 구조조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다만 구조조정이 연구개발(R&D) 분야와 보조금 사업 분야에 중점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정도의 골자만 밝혔을 뿐이다. 기획재정부는 "관행적 R&D 지원은 성과창출형 도전적 R&D로 전환"하고 "성과가 저조하거나 집행과정이 부당한 보조사업은 재정비"하겠다며 구조조정의 필요성 정도만 서술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앞서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 기자설명회(8월 22일, 24일, 25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3조 원 구조조정 계획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자 25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R&D 예산은 7조 원 규모로 줄이고, 보조금 재정비로 4조 원을 삭감한다고 밝힌 것 정도다. 

이날 추 부총리는 "(구조조정) 리스트를 주거나 할 수 없다"며 "대단한 비밀이라기보단, 사업 조정한 게 1만개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정 성과를 평가해 미흡하거나, 부정 수급·사용 이런 게 도출이 됐던 것이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지난 2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정치적·행정적 논리 없이 단순히 구조조정 하는 것은 기준이 없거나, 기준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얘기"라며 "혹은 융자사업을 줄이는 '무늬만 감액'인 경우일 수도 있어 상세한 내용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R&D 예산 7조 감액? "굉장히 위험하고 비효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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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상세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추 부총리가 밝힌 R&D 예산 7조 원 감액 방침에 대해서도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우리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큰 원천인 R&D 예산을 크게 줄일 경우 인력이 유출되고, 오랜 기간 쌓아온 지식의 맥이 끊어질 수 있다"며 "굉장히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과거 방만하게 쓰인 점이 있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점진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한꺼번에 감액하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도 "특별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예산을 감액하겠다는 것인데, R&D의 경우 특성상 직접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고, 이에 대한 투자가 향후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는 알 수 없다"며 "전체적으로 R&D 역량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일처럼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R&D 투자를 강화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단순히 삭감만 한다면 그동안의 투자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세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재정준칙 법제화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나라살림(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GDP의 3% 이내로 유지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25일 추 부총리는 "(재정준칙 법제화는) 당연히 추진한다"며 "지금도 국회에 계속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긍정적인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김유찬 교수는 "이미 재정준칙과 유사하게 규율하는 강력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도 있기 때문에 재정준칙은 필요 없다"며 "법제화한다면 오히려 정쟁만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경기 침체뿐 아니라 기후 위기, 에너지 전환에 대한 국가 리더십이 굉장히 필요한 상황"이라며 "기후 위기 문제를 민간 경제에 맡길 수는 없고, 재정의 큰 역할이 필요하다. 재정준칙을 도입해선 안 된다"고 했다. 

약자 복지? "언 발에 오줌 누기... 무리한 재정준칙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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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수영 행정국방예산심의관, 김언성 재정정책국장, 박금철 조세총괄정책관, 김동일 예산실장, 유병서 예산총괄심의관, 조용범 사회예산심의관, 황순관 경제예산심의관. ⓒ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안 20대 핵심 과제 중 서두에 '약자 복지'를 내세운 것은 재정준칙 법제화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세은 교수는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미 복지 수준이 높이 올라온 상태에서 지출을 효율화할 필요성이 있어 재정준칙을 제정한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복지 수준이 아직 낮은 상태인데, 이를 강행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이어 "세수 부족에 더해 감세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재정준칙을 도입하면 R&D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지출 정책이 축소할 것"이라며 "약자 복지를 늘렸다 얘기하지만, 저출산·양극화 심화 상황에서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패러다임을 변화하는 수준의 복지 확대가 필요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재정준칙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생계급여를 13.2%(4인가구 기준 21만3000원) 인상하고, 기준중위소득을 30%에서 32%까지 상향해 3만9000가구를 추가 지원한다. 또 노인 일자리 수를 103만명으로 14만7000명 늘리고, 수당은 2~4만원(7%) 인상한다.

정창수 소장은 "문제는 기초수급 대상자가 전체의 3%밖에 안 된다는 것"이라며 "이들 개인이 받는 금액을 소액 늘리는 것은 오히려 복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가 많음에도 (수급) 자격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금액이 아닌 대상자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내년 총수입은 13조6000억 원(2.2%) 감소한 612조1000억 원, 총지출은 18조2000억 원(2.8%) 증가한 656조9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기획재정부는 "국채 발행으로 지출 규모를 크게 늘리기보다, 강도 높은 재정 정상화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집중하겠다"며 "약자복지, 민간경제 활력 제고 등 민생 사업에 과감하게 재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예산안 #R&D #추경호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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