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공장이자 소비시장인 중국에서도 쓰촨성 청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쓰촨성 청두이어야 하는지 현지 취재(7월 29일~8월 10일)를 통해 다섯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말] |
마지막 주제는 쓰촨의 인문자산과 바이주(白酒) 이야기다. 쓰촨성 청두는 쓰촨분지와 쓰촨평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높은 산이 사방을 두르고 4개의 큰 강은 쓰촨분지와 평원을 적신다. 이 때문에 연중 안개 끼는 날이 많다. 촉나라 개는 해를 보면 짓는다는 '촉견폐일(蜀犬吠日)'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안개 낀 날만 봐왔던 촉나라 개에게 모처럼 나오는 해는 낯설 수밖에 없다. 촉견폐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을 전부라고 믿는 아둔함을 일컫는다. 진영 안에서 자신들만 옳다고 고집하는 여의도 정치인들이 떠오른다.
기름진 땅, 풍부한 물 덕분에 쓰촨은 예부터 중국의 곡창이었다. 제갈량은 쓰촨을 '비옥한 땅이 천리에 이르고 황제의 곳간 역할을 하는 땅(沃野千里 天府之土)'라고 했다. 쓰촨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땅을 하늘이 내린 곳간 '천부지국(天府之國)'으로 부르는 이유다. 쓰촨은 쌀 생산량 전국 1위, 밀 생산량 전국 2위다. 고구마와 채소 생산량 역시 전국 1위이다. 우리나라 호남이 그렇듯 중국에서는 쓰촨이 중국 인민을 먹여 살리는 곳간 역할을 맡았다. 쓰촨은 전라남도와 자매결연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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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빈 창장 중국에서 가장 긴 6300km 창장이 시작되는 이빈시. 이곳에서 3개 강이 합류해 창장강을 이룬다. ⓒ 임병식
쓰촨은 중국에서 가장 긴 6300km 창장(長江)이 시작하는 곳이다. 창장(長江)과 함께 민강(岷江), 퉈강(沱江), 자링강(嘉陵江)이 흐르기에 4개의 큰 강에서 쓰촨(四川)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과 다르다. 송나라 때 익주로(益州路), 재주로(在州路), 이주로(利州路), 기주로(氣州路)에서 비롯한 '천협사로(川峽四路)'에서 쓰촨 지명을 땄다. 풍부한 농산물과 맑은 물은 음식과 술로 발달했다. 쓰촨 요리는 중국 4대 요리 가운데 으뜸이다. 중국 음식에 거부감 있는 사람도 쓰촨 요리에는 선뜻 젓가락이 간다. 중국 정부가 2010년 쓰촨 청두를 '미식도시'로 선정할 만큼 쓰촨 요리는 대중적이다.
쓰촨은 중국 최고 바이주 생산지역이기도하다. 중국 바이주 엑스포는 매년 10대 명주를 선정하는데 쓰촨 술이 4개나 들어있다. 중국에는 대략 21만종에 달하는 바이주가 생산된다. 10대 명주에 들기도 힘든데 특정 지역 술이 4개나 있다는 건 놀랍다. 우량예(五粮液)와 젠난춘(劍南春), 수징팡(水井坊), 루조우 라오지아오(泸州老窖)가 쓰촨을 대표하는 바이주다. 우량예 주조공장이 있는 쓰촨 이빈 시에서 우량예는 최대 산업이다. 쓰촨 사람들은 마오타이보다 우량예를 높이 치며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바이주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놓자.
문화 예술과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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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검 쓰촨성 천극은 베이징 경극과 쌍벽을 이루는 중국 전통공연예술이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는 변검술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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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극 공연을 마친 변검 기예자는 객석을 돌며 관객들과 사진 촬영 서비스까지 한다. 관객들과 벽을 허물고 가까이가는 모습에서 천극이 지닌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한다. ⓒ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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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훠궈 쓰촨 요리는 중국 4대 요리 가운데 으뜸이다. 소극장에서는 음식을 먹으며 천극을 관람하는데 사진은 쓰촨의 대표 요리인 훠궈 ⓒ 임병식
먹을 게 넉넉하니 심성은 유순하고 문화예술이 발달했다. 쓰촨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곡창지대에서 보이는 공통된 심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보는 전북 또한 그렇다. 전북인들 성정은 순하고 판소리를 비롯한 문화예술 수준은 높다.
중국이 자랑하는 국보 팬더는 쓰촨 사람 심성을 그대로 닮았다. 유순한 팬더 서식지가 쓰촨인 건 우연이 아니다. 팬더는 순한 성정 때문에 사랑받는다. 쓰촨 사람과 팬더는 절묘하게 닮았다.
쓰촨을 대표하는 전통공연 천극(川劇)은 베이징(北京) 경극(京劇)과 쌍벽을 이룬다. 제갈량과 유비를 기린 무후사(武侯祠) 주변 진리(錦里)와 콴자이샹즈(宽窄巷子) 전통거리에는 소극장이 많다. 소극장은 식당에 딸린 경우가 많다. 관람객들은 훠궈 요리를 먹으며 천극을 관람한다. 천극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엮은 갈라 쇼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겁게 접근할 수 있다. 천극에서 백미는 삽시에 얼굴을 바꾸는 변검(變臉)이다. 얇은 가면을 여러 겹 벗긴다는 걸 알지만 도무지 알아챌 수 없다. 흥겨운 전통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변검술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두보와 청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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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보초당 두보는 전쟁을 피해 4년 동안 청두에 머물면서 240편의 시를 썼다. 두보초당은 쓰촨 사람들의 인문학 감성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 임병식
청두가 자랑하는 문화자산은 두보초당이다. 두보는 안록산의 난을 피해 청두에 초당을 짓고 240편을 남겼다. 초당은 한적하고 여유롭다. 시성(詩聖) 두보는 시선(詩仙) 이백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가장 빛나는 두 개의 별이 한 시대를 살았다는 건 축복이다.
두보는 서른셋에 뤄양에서 이백과 조우한다.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통했고 나이를 초월해 시우(詩友)가 됐다. 두보는 이백보다 11살 아래였다. 두보는 이백을 친형처럼, 또는 스승처럼 따랐다. 둘은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짓고 인문 여행을 다녔다. 당나라 판 브로맨스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도 나이를 초월해 치열한 사상논쟁을 벌였다.
두보는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라는 시에서 이백을 노래했다. 팔선은 당대를 주름잡던 술꾼 8명이다.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에서 선호하는 상호가 팔선이다. '이백은 술 한 말에 백 편 시를 짓고(李白斗酒诗百篇)/ 술 취하면 장안 시장에서 잠을 자며(長安市上酒家眠)/ 천자가 불러도 배 위에 오르지 않고(天子呼来不上船)/ 스스로 자신을 술 취한 신선이라 하네(自称臣是酒中仙)' 명예과 권력에 무심한 이백을 칭송한 시다. 두보초당은 우리에게는 미남 배우 정우성이 출연한 영화 '호우시절(好雨時節)'로 친숙하다. 두보는 '춘야희우(春夜喜雨)'에서 '반가운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린다(호우지시절 好雨知時節)'고 했다. 호우시절은 때를 아는 지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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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보초당 수만평에 달하는 두보초당은 한적한데다 여유가 있다. 방학을 맞은 요즘은 두보초당을 찾는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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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보의 시 두보는 '석호리'라는 시에서 힘없는 백성들이 전쟁통에 당했던 고통을 단편소설을 쓰듯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 임병식
두보는 사회현실도 외면하지 않았다. '석호리(石壕吏)'라는 시는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을 떠올리게 한다. 두보는 석호촌이란 마을에 머물렀는데 관리들이 백성을 잡아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노부인은 관리에게 "아들이 셋 있다. 한 명은 전쟁터에서 편지를 보내왔고, 나머지 둘은 방금 전사했다. 집안에는 더 이상 남자는 없다. 젖먹이 손주만 있다. 나는 늙고 힘이 없지만 전쟁터에 가면 병사들 아침 식사라도 지을 수 있다"며 자신을 데려가라고 호소한다. 두보는 힘없는 백성이 겪는 고통을 시로 고발했다. 두보초당에서는 호우시절의 낭만과 석호촌 백성에 대한 연민을 함께 엿볼 수 있다.
청두 남쪽으로 65km 떨어진 곳에 미산(眉山)이 있다. 이곳은 걸출한 시인 소동파가 태어난 곳이다. 미산은 도교와 불교 성산으로 유명한 어메이산(娥眉山)에서 멀지 않다. 미산에는 거대한 동상 셋이 있다. 소동파와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이다.
삼소(三蘇)는 중국 문학사에서 빛나는 별이다. 당나라와 송나라를 통틀어 가장 글을 잘 쓴 '당송팔대가'에 삼부자가 들었으니 대단하다. 그들이 살던 옛집은 삼소사라는 사당으로 바뀌었다. 사당 앞에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시부시자(是父是子)'라는 현액이 걸려 있다. 청두 두보초당에서 시작한 인문여행은 미산 삼소사로 연결된다.
이밖에 쓰촨에는 많은 관광자원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만 5곳이다. 어메이산(娥眉山)과 러산대불(樂山大佛), 구자이거우(九寨洵) 풍경구, 황룽(黃龍) 풍경구, 칭청산(靑城山)과 두장옌(都江堰), 팬더곰 서식지 등이다. 러산대불은 세계 최대 석각 대불이다. 높이 71m, 폭 28m에 머리 둘레만 14.7m에 달한다. 엄지발톱에만 어른 4~5명이 앉을 수 있다. 온전한 모습을 보려면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가야한다. 기원 전 256년 세운 두장옌은 2000년 동안 기능하는 인공 치수시설이다. 수량을 조절해 홍수 피해는 최소화면서 쓰촨 평원에 물을 댄다. 또 소수민족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소수민족 자치구도 이방인에게는 매력적이다.
우랑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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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랑예 이빈시 재정 수입의 60~70%를 차지하는 우량예 주조공장 전경. ⓒ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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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량예 우량예주문화박람관에는 수백종에 달하는 우량예 바이주가 전시돼 있다. 이 가운데 수천만원짜리 술도 적지 않은데 사진은 한 병에 4000만원짜리 고급 우랑예 ⓒ 임병식
우량예는 마오타이(茅台), 구징궁주(古井貢酒), 양허구펀(洋河股份과 함께 중국 주식시장에서 100위안을 넘는 바이주 4개 클럽에 속한 명주다. 중국 증시에는 3500여 종목이 상장됐는데 100위안 넘는 주식은 통틀어 20개 정도다.
쟁쟁한 기업을 제치고 술 만드는 회사가 100위안에 올랐다는 건 그만큼 명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기준 우량예 시가총액은 105조2153억 원이다. 참고로 글로벌 음료회사 1위는 마오타이, 2위 코카콜라, 3위 펩시, 4위 스타벅스, 그리고 7위 우량예다. 우량예는 브랜드만 수십 종에 달한다.
바이주는 제조 방식에 따라 장향(醬香)형과 농향(濃香)형, 청향(淸香)형으로 나뉜다. 마오타이는 장향형, 우량예는 농향형이다. 이빈 거리를 걷다보면 우량예 도시를 실감한다. 우량예 공장으로 향하는 도로 명칭은 우량예로, 이빈 국제공항은 우량예국제공항(2012년 6월 개명)이다. 또 쓰촨칭화공대는 중국백주학원, 이빈 박물관은 2층 전체를 우량예 전시물로 채우고 '중국주도(中國酒都)'라는 큼직한 글씨를 새기고 있다. 우량예가 차지하는 비중은 워낙 크다. 2022년 9월 기준 매출액은 557억 위안(10조817억 원), 순이익은 209억 위안(3조7830억 원)이다. 이빈시 재정 수입의 65~70%를 우량예가 차지한다. 울산이 현대 도시이듯 이빈은 우량예 도시다.
우량예는 밀과 쌀, 옥수수, 수수, 찹쌀 등 다섯 종류 곡물로 술을 빚는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바이주다. 1995년 파나마 국제박람회에서 주류 부문 금상을 수상하며 마오타이와 함께 중국을 대표한다. 우량예그룹은 바이주에서 그치지 않고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우량예신에너지투자회사를 설립하고 신에너지 분야에 진출했다. 2018년에는 치루이(奇瑞)자동차 산하 카이이(凱翼)자동차 지분 51%를 매입, 최대 주주가 됐다. 이빈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우량예 도시에서 이차전지 도시로 명찰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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