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은 '학급문집'으로

'글쓰기 교육'을 중시한 이오덕 선생님 20주기를 추모하며

등록 2023.09.01 10:08수정 2023.09.0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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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교육 발전을 위한 정책토론회> 모습 8월 24(목) 국회 의원회관 제7 간담회실에서 <글쓰기 교육 발전을 위한 정책>의 하나로 <학급문집>의 중요성을 다루었는데 정책 토론회 좌장을 맡은 심성보 교수(부산교대)가 정책토론회 모두 발언을 하는 모습. ⓒ 하성환


올해로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20주기가 됩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어른들을 흉내 내는 '글짓기' 교육, 기존 백일장을 혹독하게 비판했습니다. 잘 쓴 글을 모방하며 글재주가 뛰어난 아이들을 가려내 상을 주는 교육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글재주로 멋을 부리는 글을 '죽은 글', '병든 글'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글들은 아이들을 가식적인 어른으로 길러낸다고 보았습니다.

순전히 아이들 자신의 눈으로 삶과 자연을 바라보고 입말 그대로 글말이 나오길 강조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당대 한국 교육을 '세상에서 가장 나쁜 교육', '죽음의 교육'이라고 질타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의 진솔한 삶이 드러난 '글쓰기 교육'을 통해서 세상을 변혁하려 꿈꾼 교육자였습니다.

어린이 시 쓰기 운동을 펼친 결과, 어린이 시를 모아 펴낸 책 <일하는 아이들>(1978)은 젊은 교사들과 문학인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후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교육에 매료된 교사들이 하나둘 모여 1983년 한국 글쓰기교육연구회를 탄생시켰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 공개단체로서 한국 글쓰기교육연구회는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와 쌍벽을 이루며 80년대 교육 운동을 주도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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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교육 발전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기조발제하는 이주영 선생님 <어린이 문화연대> 대표 이주영 선생님이 글쓰기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학급문집>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발표하는 모습. ⓒ 하성환

 
지난주 목요일(8/24) 이오덕 선생님이 떠나신 지 20주기를 기려 '추모 겸 글쓰기 교육 정책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 제7 간담회실에서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기조 발제를 한 이주영 선생님은 역사적으로 우리말글이 지닌 생명력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1919년 3.1혁명 이후 신문과 잡지, 그리고 문학 작품들이 한글로 보급되면서 큰 전기를 맞았다고 강조했습니다. 20년대 방정환 선생이 만든 <어린이> 잡지를 비롯해 수많은 한글 잡지들이 발간되면서 우리말과 우리글(한글)이 대중에게 널리 확산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결과 일제의 조선어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로 작용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주영 선생님은 방정환과 이오덕의 교육 사상과 교육 방법론을 우리 학교 교육에 적용하고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문집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학교 교육에서는 단연 '학급문집'을 만들어 봄으로써 아이들의 삶을 가꾸어 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린이 문화운동에 큰 획을 그은 이주영 선생님과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임길택 선생님을 우리는 또한 기억합니다. 1979년 당시 임길택 선생님은 강원도 정선군 사북초등학교 교사로서 한국 글쓰기교육연구회 창립 회원이었습니다. 그는 이오덕 선생님이 엮어 펴낸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1979)를 접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글쓰기 교육'을 실천함으로써 탄광촌 아이들의 삶을 진솔하게 일구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아이들 시와 생활글을 엮은 학급문집 <나도 광부가 되겠지>(1980)를 펴냅니다.

임길택 선생님이 탄광촌 어린이들의 시와 생활글을 엮어 펴낸 학급문집은 예전 형식주의 글쓰기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글쓰기의 과정에 교사가 도움을 주는 인지 구성주의 관점을 유지하되 아이들의 삶과 글쓰기가 탄광촌이라는 사회 문화적 맥락과 연결돼 있음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회 구성주의 글쓰기 교육은 비고츠키 교육이론에 기초한 것으로 아이들이 쓴 시와 생활글이 탄광촌이라는 사회문화적 배경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아이들의 글 속에 탄광촌 어른들의 삶과 희망, 그리고 좌절이 진솔하게 표현돼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쓴 시와 생활글은 탄광촌이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나온 사회문화 공동체의 산물로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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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문집>의 교육적 가치를 실천해온 이영근 선생님 발표 장면 아이들에게 유익한 교육과정의 하나로 <학급문집>을 발간하며 글쓰기 교육을 실천해온 이영근 선생님이 <학급문집>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 하성환

 
따라서 21세기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은 학급문집을 지향해야 합니다. 정규 교육과정 속에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학급문집 만들기를 포함하는 것도 좋은 '글쓰기 교육' 정책일 것입니다. 디지털 학급문집을 만들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나아가 학급문집 아카이브를 구축하면 글쓰기 교육의 소중한 도서관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조심스럽게 제언하고 싶은 부분은 이오덕 선생님이 평소 강조했던 우리말 사용입니다. "강아지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말로 글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언어 민중주의'라고 별칭 했습니다.

글쓴이가 생각건대 이오덕 선생님이 강조한 글말은 '현실음'을 중시했던 현실주의 언어관에 기초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장면(이상음)만 표준어가 아니라 사글세(현실음), 짜장면(현실음)도 표준어가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임화를 존경했던 김수영의 표현대로 민중이 쓰는 언어 위에 문학이란 집을 짓고자 했던 이오덕 선생님은 임화의 현실주의 언어관을 계승한 언어사상가로 볼 수 있습니다.
#이오덕 #글쓰기 교육 #학급문집 #이주영 #임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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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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