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꿈을 꾼 죄, 섬 제주 사람의 죽음

장편 소설 <제주도우다>의 저자, 현기영 작가와의 대화

등록 2023.09.04 16:01수정 2023.09.0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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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순이삼촌>으로 제주4.3항쟁을 세상 밖으로 꺼낸 현기영 작가. 그가 새 장편소설 <제주도우다>의 출간을 기념하며 서울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했다.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이사장 백경진)과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회장 문원섭, 박진우)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서울시 청소년·청년연합회와 공동으로 주관한 작가와의 대화는 지난 9월 3일(일) '청년이 묻고, 현기영이 답하다'라는 주제로 서울 종로구의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강당에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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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작가와의 대담 9월 3일(일) 노무현센터에서 진행된 청년이 묻고 현기영이 답하는 이야기 마당 관계자들 ⓒ 박진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제주도우다>는 <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의 필생의 역작이며, 4.3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82세의 작가가 <순이삼촌>을 낸 지 45년 만에 이룬 문학적 성취가 놀랍습니다"라고 격찬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행사장은 젊은이들을 비롯해 제주4.3항쟁과 현기영 작가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제주도우다>의 초입은 정조대왕(1790~1796)시기 제주의 흉년(凶年)과 기근(飢饉)으로 주민들이 죽어갈 때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Noblesse Oblige)을 실현하기 위한 제주민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섬의 사상과 문화를 표현하면서 시작한다.

또, 섬 제주 공동체를 토대로 하여 항일투쟁기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전쟁의 죽음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1945년 해방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를 표현한다. 해방된 조국에서의 희망을 준비하는 과정과 미소 냉전체제의 편입을 거부한 섬 사람들을 표현한 대하소설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시기를 조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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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작가와의 대담 9월 3일(일) 노무현센터에서 진행된 청년이 묻고 현기영이 답하는 이야기마당에서 낭송하는 현기영 작가 ⓒ 박진우

   
작가는 태평양전쟁의 종료로 등장한 '해방'을 이렇게 표현했다.

"등교할 때마다 등을 짓누르던 그 무거운 짐이 사라진 것이다. 다섯장 뗏장의 무게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랍고 기뻤다. 압박과 해방! 온몸을, 등을 짓누르던 그 무게가 압박이고, 그것이 사라져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볍고 홀가분해진 지금의 상태가 바로 해방(제1권 233쪽)"

죽음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제일 먼저 학교를 짓는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공부한다. 특히 제주민들의 가치를 독립국가가 아닌 "국가 속의 자치 공동체(2권 166쪽)"로 표현한다. 현 작가는 "제주인은 집단으로 사고하고, 집단으로 행동하는 것이 익숙하거든(2권 167쪽)"이라며,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2권 172쪽)"라는 문장을 통해 공동체의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기미년(1919) 만세투쟁 28주년인 1947년 3월 1일 외친 구호는 남과 북의 "단독정부 반대"와 자주적인 독립을 위한 "미·소 양군철수"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시 강제 공출을 강행하여 제주민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갔던 "친일파 처단"과 "강제공출 반대"(2권 261쪽)도 있었다. 


그러나 제주민들이 꿈꾼 공동체를 제주 밖의 세력은 부정했다. 경무부장 조병옥은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볼온하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2권 296쪽)라고 말한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재건되고 나서 9일 날에 대한민국의 국군 통수권이 주한미군에게 넘겨진다. 그해 10월 17일 제주에는 포고령이 내려지고 중산간 지역은 불바다가 될 것임이 알려진다. 11월이 되어 학살이 시작되었다.

현 작가는 "불길이 엄청났주, 하늘과 땅, 천지 사방이 시뻘겅했어(3권, 185쪽)"라며 중산간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초토화작전을 설명한다. 당시 중산간 마을 137곳이 완전히 사라졌다.

소설은 당시 군인과 경찰로 구성된 공권력이 섬 제주민들을 어떻게 죽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4.3은 홀로코스트(Holocaust)이자 제노사이드(genocide)인 것이다. 국가가 인정한 전체 희생자 중에 10살 미만의 유아와 아이들 688명이 희생되었다(제주4.3사건추가진상조사보고서 88쪽). 16세 이상 45세 이하의 제주 남자들 50%가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제주4.3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3만 명의 죽임이며, 3만 개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4.3의 진실을 "우리가 자는 어둡고 좁은 방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 너무 크고 어두워서 그 실체를 잘 알 수 없는 것. 그게 4.3이야"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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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작가와의 대담 9월 3일(일) 노무현센터에서 진행된 청년이 묻고 현기영이 답하는 이야기 마당에서 서서 이야기 하는 현기영 작가 ⓒ 박진우

 
제주4.3의 가해자인 공권력이 가한 피해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소설에서도 가해자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의 주체인 국가와 가해기관, 가해책임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제주4.3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가해자에 대해서 공개하고 그들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길이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젊은이들이 마련한 '청년마당'과 '동백꽃만들기' 체험 등이 진행됐다. 또, 제주 출신 문희경 가수의 '옵서예' 축하 공연도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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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작가와의 대담 9월 3일(일) 노무현센터에서 진행된 청년이 묻고 현기영이 답하는 이야기 마당에서 제주출신 문희경 가수의 '옵서예' 공연 ⓒ 박진우

#제주도우다 #4.3항쟁 #4.3 #현기영 #순이삼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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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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