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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교사의 죽음, '악성 민원'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교권보호위 열리지 않고, 교장 등 학교 관리자 역할엔 의문... 진상 철저히 가려야

등록 2023.09.12 11:35수정 2023.11.0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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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보라매공원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숨진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0일 대전 서구 H 초등학교 정문 주변에 근조 화환 40여 개가 배달되었다. 화환에 걸려 있는 리본의 글귀는 수신인이 학교장 K씨임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K씨는 2022년 3월 이 학교로 옮겨오기 전에 2016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유성구 G 초등학교 교장이었다. 지난 7일 숨진 A 교사가 근무했던 그 학교다.

'교권보호위원회 안 열어준 무책임한 교장'
'교사 죽음 방관한 교장'
'관리자는 학부모만 관리하느냐?'
'우리는 △△초에서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잠이 오냐?'


현장 교사들은 왜 근조화환을 보냈을까

K씨는 2014년 9월 1일 교감으로 승진한 후 2년 만인 2016년 9월 1일 교장 공모에 합격하여 G 초등학교에 왔다. 즉, 숨진 A씨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고소 등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2019년에 K씨는 공모 교장이었다. 그는 2020년 9월 1일 공모 교장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승진했다.

교장 공모제는 개별 학교가 해당 학교의 요구와 특성을 반영하여 교장 후보자를 공개 모집하고, 공정하고 민주적인 심사 절차를 거쳐 교장 임용 후보자를 선발하는 제도다. 학교운영위원회와 교육청의 심사와 추천 등을 거쳐 선발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교장 임기 연장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숨진 A씨가 생전 초등교사노조에 제보한 교권 침해 내용 등을 바탕으로 볼 때, 공모 교장이었던 K씨가 '소속 교원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관련 기사 : '교사 사망' 대전 A초 교장·교감, 교권침해 '방관' 논란). 공모 교장인 만큼 구성원들을 더 존중하고 신경써야 하지만 그런 역할을 사실상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인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로 내몰리고 교권보호위원회는 안 열려


A교사가 생전 초등교사노조에 제보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2019년 1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런데 당시 반 학생 몇몇이 지도에 응하지 않거나, 같은 반 학생과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에 힘들어하던 A 교사는 도리어 학교폭력 가해자로 내몰렸다.

2019년 12월, 자신의 아이를 다수가 보는 앞에서 혼내고 손을 잡고 교장실에 들어가면서 주변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줬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신고한 것이다. 며칠 후 열린 학교폭력대책위원회는 학생에게 심리 상담과 조언이 필요하다고 '피해자 보호 처분'을 내렸다.

위원회는 A 교사에 대해선 경찰에서 수사 중이라며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지만, 교사가 받은 충격과 고통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또, A 교사가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왜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요구를 거부했는지, 당시 교장 K씨의 얘기를 듣기 위해 다방면으로 수소문하고 현 근무지 학교에도 전화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만, 11일 K씨는 < TJB 대전방송 > 취재진에게 "사실 확인 관계가 확실하게 나오면 말씀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또, 현재 교장으로 승진한 당시 G 초등학교 교감은 해당 방송사 인터뷰에서 "확실히 기억이 없고, 또 업무 담당자도 그렇게 (교권보호위) 요청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하고..."라고 주장했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했던 선생님

2019년 당시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정서학대') 혐의로 피소된 A씨는 혼자서 변호사를 선임해 기나긴 싸움을 벌여야 했다. 동료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탄원서를 작성하는 등 도움을 준 덕분에 10개월 정도 지난 2020년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학부모의 민원은 그치지 않았고, A씨는 극심한 고통 속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지난 5일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7일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대전 초등교사의 죽음을 악성 민원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민원은 발생하기 마련이고, 어느 곳에나 '진상 고객'은 있다. 소속 직원이 고의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가 아닌 한 관리자는 직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관리자는 학부모만 관리하느냐?'는 근조화환의 문구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설동호 대전교육감은 소속 교원의 죽음을 두고 '애통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여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대전 교육 가족 모두에게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 또한 당시 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지 않았는지, K씨를 비롯한 학교 관리자들의 책임은 없는지 철저히 진상을 가려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엄중하게 조치해야 한다. 그것이 고인에 대한 인간적 도리이고,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교육 가족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태도가 아닐까.
#대전초등교사 #악성민원 #교권보호위원회 #근조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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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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