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김구림 전의 최고작은 '예기치 못한 사건'

한국 실험 미술의 선구자 김구림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내년 2월 12일까지 열려

등록 2023.09.21 15:37수정 2023.10.06 15:24
0
원고료로 응원
a

김구림 I '음과 양' 시리즈(비디오) 2013 신작. 87세 노장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첨단을 달린다. 역시 전위작가다 ⓒ 김형순

 
한국 실험 미술의 선구자이자 무용, 연극, 영화, 음악 등을 결합한 총체 예술의 대부인 김구림(1936년생) 작가, 그의 70여 년 작업을 총망라한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제6~7관에서 내년 2월 12일까지 열린다. 초기 미술에서 후기 '음과 양' 연작까지 비디오아트, 설치, 판화, 퍼포먼스, 회화, 아카이브 등 290점을 선보인다.

한국미술의 3대 스타 작가 하면, 김환기도 있지만 '백남준, 김구림, 이우환'이 떠오른다. 그의 작품은 한국 작가 중 테이트모던에 가장 많이 소장돼 있다. 2012년에는 이 미술관에 초대를 받아 '잭슨 폴록, 이브 클라인, 쿠사마, 앤디 워홀' 거장들과 함께 전시가 열렸다.


2022년 6월 15일 자 <뉴욕타임스>, 김구림 특집에서, "그는 85세에도 권위 있는 유럽아트재단(TEFAF)의 소장 작가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여기 인터뷰에서 김구림은 "삶의 반대되는 요소는 어디에나 있다. 나는 혼돈의 시대, 욕망을 그리고 싶었고, 혼돈은 내가 평생 경험한 모든 모순에서 비롯된다"라고 소회도 밝혔다.
 
a

김구림 I "음과 양(자동차)" 2023년 신작. 금칠한 대형 자동차가 두 동강 나 있다. 인간의 탐욕을 꼬집다. 과연 물질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나 묻다. 뒤는 작가가 젊어서 영향을 받은 <라이프(1969)>지 수북이 쌓인 쓰레기를 보고 충격을 받아 1970년 <공간>지에 발표한 포토 콜라주 "불가해의 예술"이다 ⓒ 김형순

 
김구림을 세계적 작가로 만든 것은 역시 책이었다. 그는 경주 '계림예대'에 입학해,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도 꽤 받았으나 교수들에게 질문을 하도 많이 해 미움도 샀다. 그는 대학 강의가 시원치 않자 자퇴했다. 그 대신 그의 창작을 불태우는 자극제는 바로 책이었다.

책 좋아하는 김구림은 헌책방을 자주 들렀다. 그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시대,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관에서 흘러나온 <타임> 지와 <라이프> 지를 접한다. 거기서 전위무용가 '머스 커닝햄'도 알게 된다. 고압선 주위를 빙빙 돌아도 거리의 무용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또 그는 바닥에 물감을 뿌리는 '잭슨 폴록'을 만나 온몸으로 그리는 회화 방식도 터득했다.

김구림은 6년 후배인 홍대 4학년이었던 정찬승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당시 당찬 신세대로 모든 미술 사조에 호기심으로 넘쳤다. 그가 김구림을 쫓아다닌 건 대학에서 들을 수 없는 폭넓은 미술정보를 그에게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구림이 그에게 시키는 귀찮은 부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인연으로 그는 김구림의 '실험영화' 등에 주인공이 되었다.
 
a

김구림 작가가 60년대부터 아낀 후배 작가 "정찬승(1942~94)", 그가 국내 최초의 실험영화 ‘24분의 1초의 의미’(1969)를 촬영하면서 김구림 작가와 콘디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다 ⓒ 김구림

 
김구림 작가 누구인가? 그는 경북 상주 출생으로 그의 고조부, 증조부, 조부까지 한의사였다. <한의학 사전>에 그들의 이름이 나온단다. 그의 부친은 선친들과 다르게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예술가 기질이 많았단다. 부전자전인가.

당시 김구림은 막내 외동아들로 태어나 갖은 사랑을 다 받는 금수저였다. 고무신 시대에 '맞춤 구두'를 신고 외국제 장난감은 아이들이 부러운 대상이 되었고, 어린애가 시계를 차고, 이런 그는 하고 싶은 것은 꼭 하는 기질, 그래서 못 말리는 전위예술가가 된 것인가.

작가가 되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다. 중고시절 그림을 잘 그렸지만, 화가가 되려 하진 않았다. 외과 의사가 되려고 개구리 등 잡아 해부도 했으나 비린내를 못 견뎌 포기하고, 발명가·과학자가 되겠다고 집에 기계며 유성기, 시계, 동네 차 등을 떼다가 조립도 해보고 별짓을 다 했단다.


그게 안 되자 영화감독도 시도했다. 그러나 혼자 하는 걸 좋아해 그만둔다. 이번엔 소설가, 18살 때 '세계문학전집'을 다 뗐다. 그러나 번역이 안 되면 세계적 작가가 힘들다고 생각해 포기하고, 이번엔 작곡가 그러나 외국을 나가야만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게 쉽지 않다 보고, 번역도 필요 없고, 누구의 간섭도 안 받고 나 혼자 할 수 있는 그림을 택했단다.

그의 작업 70년
 
a

김구림 I "전자아트(Electric Art)-A" 패널에 플라스틱, 전구. 1968. 옵아트와 전자아트의 결합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김구림은 1959년 대구 공회당화랑에서 첫 전시 후, 1963년 사회 부조리에 분노해 앙그리를 창립, 1964년에는 붓 없이 그리는 회화인 '태양의 죽음'을 발표했다. 1968년 전자아트를, 1969년 ST(Space/Time)협회와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에 참여했다. 김차섭과 함께한 '메일아트', 그리고 '보디페인팅', '실험영화'도 제작했다.

1970년 예술국가를 목표로 '제4집단'을 결성했고 '기성문화장례식'도 치렀다. 제1회 '국제현대음악제'에서 '피아노 위에 정사(백남준 곡)'를 연출했고, '현상에서 흔적으로'도 발표했다.

당시에 그는 '미친 미술가'로 불렸고, 한국에서 외면당하자 활동 무대를 일본으로 옮겼다. 한국과 달리 1974년 '도쿄 국제판화대회'에서 시간성을 시각화한 '걸레'로 호평을 받았고, 영상으로 만든 이 작품이 스위스 로잔 '제2회 국제임팩비디오전'에 초대됐다. 1975년 파리 '비디오오픈전'에 백남준과 함께 출품했다. 그해 국내 최초로 판화공방을 열었다.

그는 80년대 프랑스·독일로 진출했으나 성격에 맞지 않자, 1984년 어렵게 학생비자를 얻어 뉴욕으로 가 '아트 스튜던트 리그(ASLN)'에 입학했다. 교내전에서 1등도 했다. 1992년 백남준과 2인전, 2000년 귀국전,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 2016년 국립과천미술관에서 대지미술 재현 그리고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김구림'전이 개최되었다.
 
a

MMCA 서울관(교육관)에 기자들과 함께 참석한 김구림 작가의 표정이 어둡다 ⓒ 김형순

 
하지만 이번 국립미술관 전시에 안타깝게도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 전시되지 못했다. 지난달 24일 MMCA 서울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건강이 급악화돼 인공심장 이식수술을 받고 나왔다. 87세의 노장으로 그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미안하지만 이번 전시에는 전위적 작품은 없습니다. 내가 과거에 하고자 했던 작업을 재현하고자 했는데, 40여 년 지난 지금도 그 전시를 못 하게 될지 미처 몰랐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난 이 전람회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파격적인 그런 작품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너무 죄송합니다. 내가 작가라고 얼굴 내밀기가 부끄럽습니다."

그가 가장 전시하고픈 작품은 뭔가? 아래 보는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이다. 당시 경복궁에 있었던 국립현대미술관(전 조선총독부) 광목천으로 감싸 바닥에 돌로 묶는 설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당시 30시간 만에 철거됐고 그래서 이번에 재현하려 한 것이다. 작가는 이건 미술관을 염하는 작업으로 낡은 한국미술을 거듭나게 하려는 퍼포먼스였다는 것이다.

사건이 최고의 작품
 
a

김구림 I "현상에서 흔적으로" 1970년 6월, 현대미술관(경복궁) 묶는 장면.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작(900만원 정가표시). 작가는 이 작품이 "한국실험미술" 순회전이 열리는 구겐하임미술관에서도 설치되길 원했다. 또 이 작품은 건물을 다 싸버리는 대지미술가 "크리스토(1935~2020)"와 다르다고 설명한다 ⓒ 김구림

 
사실 좋은 전시란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어폐가 있지만, 이번에 작가가 원하는 작품이 전시가 안 된 건 예기치 못한 사건이다. 그래서 이 사건이 이번 전시의 최고작이 되었다. 전위미술에서는 작품이 안 보여도 상관없다. 이 작품은 한국미술계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반대로 한국미술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에서 온 것이다.

'현상'과 '흔적'이라는 신개념도 당시로는 획기적이지만, 이 사건은 한국미술의 도약과 혁신을 상상하는 그만의 도전이었다. 전위작가로 그런 담대함은 당연지사다. 이 예사롭지 않은 해프닝이 일반신문이 아닌 <선데이서울>에 실렸다. 그런데 차후에 이 자료의 소중함을 알아차린 테이트모던은 이를 스페셜컬렉션했다. 지금 그걸 달라고 해도 안 준다.
 
a

실험영화 "24분의 1초의 의미(1969)" 감독 편집 : 김구림 / 출연: 정강자 정찬승 / 촬영 : 반대규 극본 : 최원형 / 각본과 이야기가 없다. 표지와 이 실험영화를 찍은 영사기. 이 작품은 "테이트모던(런던)"과 "구겐하임미술관(뉴욕)"과 "국립현대미술관" 세 곳의 소장품이다 ⓒ 김구림

 
지면상, 여기서는 김구림의 대표작 '24분의 1초의 의미'만 소개한다.

이 실험영화는 우리나라 산업 전환기의 작품으로 '신세계 앞 육교, 광화문 지하도, , 세운상가, 31 고가도로' 등 전례 없는 산업화로 변모하는 서울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급속한 도시화 속 과부화 현상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다음 해 일어난 '와우아파트' 붕괴를 예고했다.

스토리도 없고 단지 빛과 소리와 액션으로 모든 걸 이야기한다. 영화이면서도 퍼포먼스 요소가 많고 미술, 음악, 연극의 요소가 뒤섞여 있다. 그는 '보들레르'가 말한 '도시의 보행자' 시선으로 속도에 치여 방향을 잃은 현대인의 권태와 소외감 등 그 이면을 보여준다.

당대 보여준 총체극

또 지난 9월 7일 국립현대미술관 '다원공간'에서 열린 '총체극(1969년)'도 소개한다. 좌석은 관객들로 꽉 찼다. 1부 실험영화(2편)과 2부 실험극(3편 각각 15분)을 서울예대, 한양대, 성균관대 학생이 신세대 감각으로 연출했다. 기괴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a

지난 9월 7일 공개한 김구림 3개 무대작품(1969년) [1] "무제(무용)", [2] "대합창(음악)", [3] "모르는 사람들(연극)"이 공개되다. 위는 "무제"의 한 장면이다 ⓒ 김형순

 
실험영화 2편 중 1편은 이미 설명했고, 다른 실험영화 '문명, 돈, 여자(1969)'를 보자. 신문지로 벽지를 한, 허름한 방에 일을 구하지 못한 젊은 여자가 방안에서 무력하게 시간을 보낸다. 돈이 없어 외출도 못 하고, 겨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심심하니까 손톱에 매니큐어도 바르고 낮잠 잤다가 일어났다, 누웠다가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한다.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은 방에서 뭘 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고 했지만, 24시간을 이렇게 무력하게 보내는 당시 인간상·시대상을 정직하게 반영했다. 당시 여배우는 촬영에서 옷 벗는 장면은 다 '올누드' 처리임을 알았지만 이게 다 대중에게 공개되면 어쩌지 싶었는지 달아나버렸다. 이 미완성 영상을 다른 배우로 대체해 재구성했다.

끝으로 위 '무제'를 보자. 이 극은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보다 푸코가 말한' 인간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이는 작가가 6.25와 군에서 겪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고자 64년에 발표한 '태양의 죽음'과 연장선에 있다. 주검 같이 보이는 한 무리가 쓰려졌다 일어났다 하다. 이런 인간의 탄생과 죽음의 숙명이라는 한계상황의 은유이리라. 
덧붙이는 글 내년 1월 7일까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순회전에서는 참여 작가들이 순차적으로 퍼포먼스가 열리는데 김구림 작가는 '생성에서 소멸로'라는 제목으로 12월 1일~2일 열 예정이다. 그런데 김 작가가 건강 문제로 대신 그의 딸인 '김현진(Jess Beige KIM)' 양이 대신한다. 그녀는 런던 '골드스미스' 미대에서 퍼포먼스를 또 '영국왕립예술대학(RCA)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 '24분의 1초의 의미' 유튜브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ooptOMWcDIM
#김구림 #현상에서 흔적으로 #24분의 1초의 의미 #정찬승 #문명, 돈, 여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