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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최대 인상" 자랑한 정부, 이번에도 중위소득 증가율 인위적 '조정'

[단독-회의록 입수] 4인 가족 기준 6.98% 인상 → 6.09%로 변경... 보건복지부 "경제성장률 등 고려"

등록 2023.09.20 19:48수정 2023.09.2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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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중증장애인생산품 국회 박람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


정부가 지난 7월 29일 발표한 내년도 '기준중위소득' 결정 과정에서 재정 여건을 이유로 기본 산정 원칙을 지키지 않고 낮은 증가율을 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본중위소득 산정 원칙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으로 정해져 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인위적 조정은 "역대최대 인상"이라 자찬한 이번 결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19일 제71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 심의·의결을 거쳐 2026년까지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선정 기준을 각각 기준중위소득의 35%, 50% 수준까지 올리기로 한 3차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남아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단계적으로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역대 최대 수준 인상" 자찬했지만

이날 발표에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28일 제70차 중생보위를 열어 내년도 기준중위소득(4인가구 기준)을 올해(540만 964원)보다 6.09% 오른 572만 9913원으로 결정했다.

<오마이뉴스>가 확보한 중생보위 회의록에 따르면, 내년 중위소득은 6.98% 오른 '577만원'이 기본 산정 원칙이었다. 하지만 중생보위는 기본 산정된 6.98%보다 0.89%p 낮은 '6.09% 인상안'으로 조정 결정하면서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인상했다"고 자평했다.

기준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13개 부처 73개 복지 사업의 수급자 선정 기준으로 활용돼, 기준중위소득과 각 급여 기준선에 따라 빈곤·돌봄 위기 가구가 한 달에 받을 수 있는 생계비도 달라진다.

기준중위소득 산정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중생보위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최근 3개년도 가구소득 평균 증가율'을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근래 들어 평균 증가율이 그대로 반영된 적은 2022년 결정 때뿐이었다. 


6.09% 조정안 채택에는 '재정 여건'을 주장한 일부 위원들의 의견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은 7월 20일 69차 회의에서 "경제성장률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지는 상황에서 기준중위소득이 7% 가까이 증가하는 경우 이에 따른 세금 부담 증가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년도 기준중위소득 최종증가율을 5.65% 수준으로 조정하고 대신 생계급여 선정 기준을 상향하는 것이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관계자는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할 때 기본 산정 원칙대로 기준중위소득 증가율을 반영하는 것이 조금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최종 결정 과정에 반영됐다"고 밝혔다. 그는 "증가율이 6%를 넘은 전례가 없을 뿐더러 생계급여 선정 기준이 30%에서 32%로 올랐기 때문에 이는 기준중위소득 6.66% 인상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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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 열린 제70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 회의자료 일부. 기존 산정 원칙을 반영한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을 올해 대비 6.98% 인상하는 다수안은 기본증가율(4.34%)과 추가증가율(2.53%)을 곱해 산정한 값이다. 중생보위는 재정 여건을 이유로 다수안을 파기하고 기본 산정 원칙보다 낮은 6.09% 인상안을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으로 최종 결정했다. ⓒ 중앙생활보장위원회

 

내부에서도 우려 "자의적 판단 아닌 객관적 근거로 결정해야"

회의록에는 우려를 표하는 내부 목소리도 담겼다. 중생보위 위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연직 6명과 전문가·공익위원 등 위촉직 10명으로 구성된다.

일부 위원들은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이 기본 산정 원칙보다 낮게 결정된 것을 두고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과의 격차가 남아 있게 된다", "향후 기준중위소득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뿐만 아니라 "자의적인 판단이 아닌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근거로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해야 한다", "특정 사유를 근거로 기본증가율을 조정하는 것은 기준중위소득 산정방식을 운영하는 취지에서 벗어난다", "(산정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물가 상승 및 경제성장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기본증가율을 조정하는 것이 관행화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중생보위에서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고 부양의무자 기준 등 어떤 쟁점들이 논의되는지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 회의록이 공개된 사례는 무려 19년 전인 2004년의 일이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7월 31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내년 기준중위소득의 결정 과정을 담고 있는 중생보위 회의록을 보건복지부에 요청했다. 보건복지부는 8월 29일 비공개 결정을 내렸지만, <오마이뉴스>의 이의신청에 9월 12일 제69·70차 중생보위 회의록 및 회의자료(각 7월 20일, 28일 회의)를 보내왔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예전보다 상황이 나아졌다지만 (지난해에 결정한) 올해 기준중위소득을 제외하면 2021년 이후 기본 산식이 지켜진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며 "정부는 경기가 어려워 재정 여건이 하락할 것이라는 마이너스 예측만 할 뿐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내년에도 다시 정부의 몽니가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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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 열린 제70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 회의록 일부. 중생보위는 내년도 기준중위소득(4인 가구 기준)을 올해(540만 964원)보다 6.09% 오른 572만 9913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재정 여건을 이유로 6.98% 인상이라는 다수안을 파기하고 기본 산정 원칙보다 낮은 6.09% 인상안을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으로 최종 결정한 결과다. ⓒ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중생보위, 회의록·속기록 공개하고 방청권 보장해야"

시민단체와 빈곤 당사자들은 기준중위소득 기준을 현실화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완화가 아닌 폐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때 가족에게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으로 의료급여와 생계급여 일부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과 '장애인과가난한이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은 "(보건복지부가) 역대급으로 자찬한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지 기준선은 실제보다 3년 정도 뒤처져 있다"며 "부양의무자의 소득이나 재산 변화 때문에 수급자마저 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당사자들의 불안감을 고려해 오는 3차 종합계획에는 반드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가 반영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향후 해당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지난 6월 중생보위 안건, 회의자료, 속기록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현재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강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중생보위가 빈곤층의 최후의 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음에도 회의를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기초생활수급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가 없는 상황이다. 중생보위 회의록 및 속기록을 공개하고 수급 당사자들의 방청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생보위 #보건복지부 #기준중위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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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보고 듣고 쓰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복건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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