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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해안, 울창한 숲까지... 다재다능한 자연유산

캐나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미국 워싱턴주의 올림픽 국립공원

등록 2023.09.20 16:15수정 2023.09.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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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센트 호수를 둘러싼 숲길 크레센트 호수공원의 숲은 가지가 축 늘어진 키 큰 전나무와 키 작은 양치식물이 이끼와 함께 엉켜있는 무척이나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 CHUNG JONGIN

 
마운트 레이니어 국립공원에서 북서쪽으로 4시간, 약 300km를 운전하면 캐나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올림픽 반도가 나오고 그곳에 위치한 올림픽 국립공원에 도달할 수 있다.

레이니어와 함께 워싱턴주의 대표적인 국립공원이지만 공원 초입부터 레이니어산과는 사뭇 달랐다. 레이니어산의 숲이 곧게 뻗은 침엽수림이라면 올림픽 공원의 숲은 다소 무질서해 보이는 잎이 넓은 단풍나무와 전나무를 이끼와 양치류 식물이 뒤덮고 있어 원시 우림에 가까운 풍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제주도의 두 배나 되는 올림픽 국립공원은 다양한 모습을 지닌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빙하와 만년설이 있는 고산지대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온대림, 파도에 떠밀려 온 누워 있는 고목과 서 있는 고목이 엉클어져 있다.

말 그대로 날것 그대로의 해변, 그리고 초승달을 닮은 넓은 호수 등이 있어, 방문자들은 각자 취향대로 산을 오르고 물놀이를 즐긴다. 울창한 숲에서 산책도 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다재다능한 자연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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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국립공원 최고봉인 올림포스산 허리케인릿지를 너머 계곡에 하얀 눈을 담고 있는 올림포스산 ⓒ CHUNG JONGIN

 
우리는 8월의 마지막 주말을 올림픽 국립공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첫 선택지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 공원 중앙에 솟아 있는 최고봉인 올림포스산(2,428m)과 올림픽 산맥의 파노라마 풍경을 볼 수 있는 해발 1,767m에 있는 허리케인릿지(Hurricane Ridge)를 택했다.

주차하는 차량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소식에 숙박지가 있는 포트 에인젤레스(Port Angeles)에서 새벽같이 길을 나섰다. 경사가 심한 약 29km의 산길을 굽이굽이 돌며 올라가니 넓은 주차장이 나왔는데, 주차장 곳곳에 임시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고 방문자센터는 장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알고 보니 지난 5월 발생한 화재로 폐쇄된 상태였다.

산에서 반나절 이상을 보낼 생각으로 클라헤인릿지(Klahhane Ridge) 트레일을 거쳐 허리케인릿지에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에인젤레스산(Mount Angeles: 1,967m)을 가기로 했다. 에인젤레스산은 한라산과 높이가 비슷하나 워낙 높은 곳에서 시작하니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썬라이즈 포인트(Sunrise Point)까지 4km 정도의 넓은 산길을 지나 경사면에 조성된 능선길로 접어들었다. 앞에는 겹겹이 포개진 산봉우리가 보이고 뒤돌아보면 허리케인릿지를 너머 계곡에 하얀 눈을 담고 있는 올림포스산이 보였다.


노출된 능선과 야생화로 가득한 숲을 번갈아 걸어 큰 내리막길로 내려오니 갈림길이 나왔다. 갈림길 오른쪽에 "TRAIL"이라는 표지판이 있어 우리는 갈등 없이 그쪽을 택했다. 길은 계속 내려만 갔다. 정상을 가야 하는데 내리막길이라니. 불안했다. 그래도 앞뒤에 젊은 일행이 있어 다소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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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 수 없는 바위산 새가 되어야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 CHUNG JO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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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젤레스 호수로 가는 산길 안전 문제로 출입이 금지되어 갈 수가 없었다. ⓒ CHUNG JONGIN

 
드디어 시작된 오름길은 지그재그 산길의 연속이었다. 무려 13번의 지그재그 길을 숨 가쁘게 마치고 제법 평평한 곳에 올라서니 더 이상 갈 길이 없었다.

앞은 낭떠러지에 가까운 칼날 같은 바윗길로 막혀있고, 왼쪽은 새가 되어야 오를 수 있는 크고 거친 바위산이 버티고 있었으며, 오른쪽은 에인젤레스 호수(Lake Angeles)로 가는 산길이 보였으나 안전 문제로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

알고 보니 우리가 온 곳은 에인젤레스산이 아닌 클라헤인릿지 트레일 자체였다. 에인젤레스산으로 가려면 갈림길의 왼쪽을 택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해발 1,801m인 그곳에서 본 도도한 올림포스산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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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센트 호수 스톰킹산을 올라오면서 흘린 땀을 보답해 주는 맑은 코발트색 물빛의 크레센트 호수 ⓒ CHUNG JONGIN

 
다음날 우리가 간 곳은 수심이 200m에 직선거리가 20km나 되는 맑은 코발트색 물빛의 크레센트 호수였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물놀이가 아닌 호수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스톰킹산(Mount Storm King) 등반이었다.

스톰킹산으로 오르는 길은 올림픽 국립공원에서는 비교적 짧다고 할 수 있는 왕복 7.2km였으나 오르막길이 가파르게 이어지고 마지막 정상은 로프를 잡고 몸을 끌어올리는 힘든 코스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북한산에 익숙하다면 무난할 것으로 짐작되어 도전해 보기로 했다. 

트레일을 시작하려면 크레센트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숲길로 들어가야 했다. 대표적인 온대우림인 호 레인포레스트(Hoh Rainforest)를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내 눈에 크레센트 호수공원의 숲은 가지가 축 늘어진 키 큰 전나무와 키 작은 양치식물이 이끼와 함께 엉켜 있는 무척이나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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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톰킹산 정상 입구에 길게 늘어져 있는 로프 스톰킹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로프를 잡고 몸을 끌어올리는 힘든 코스다. ⓒ CHUNG JONGIN

 
스톰킹산은 초입부터 한국의 산과 많이 닮아 있었다. 가파른 산길은 거목의 뿌리와 큰 돌을 딛고 올라가야 했고 우거진 숲이 해를 가려주었다. 쉼 없는 오름길에 헐떡이며 700m 정도 올라가니 로프길 초입이 나왔다. 비탈길 옆에는 앞선 등산객들이 사용하고 놓고 간 장갑들이 흩어져 있었고 로프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로프를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경사가 심한 마른 흙길이 미끄러웠으나 긴장된 재미도 있었다. 로프가 끝나고 두 손과 두 발로 바위를 기어오르니 시야가 트이고 푸른빛의 강줄기와도 같은 호수가 눈 아래로 보였다. 올라오면서 흘린 땀의 보답이었다. 등산객들 간식을 탐낸 새들이 친구 하자며 달려들었다. 

산에서 내려오니 숲에는 이른 아침보다 많아진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 가족과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는 메리미어 폭포(Marymere Falls)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산행의 마무리로 그들과 합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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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알토 해변 리알토 해변에는 다양한 크기의 자갈과 솟어오른 바위 그리고 거센 파도가 있었다. ⓒ CHUNG JO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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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알토 해변 안쪽의 숲 거대한 크기의 하얀 고사목들이 살아있는 초록의 고목들과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 CHUNG JONGIN

 
힘겨운 산행으로 반나절을 보냈으니, 이제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온대우림인 호 레인포레스트 산책과 리알토 해변(Rialto Beach)을 산책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는데, 좀 더 편안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리알토 해변을 택했다. 

리알토 해변은 우리가 생각하던 일반 해변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지역이고 공원 내에 있어서 그런지 위락시설은 전무했고 바닷가를 걷는 사람들 역시 하이킹을 끝내고 온 우리처럼 등산화와 등산복 차림이었다.

해변 안쪽은 거대한 크기의 하얀 고사목들이 살아있는 초록의 고목들과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파도 놀이를 하며 검은빛 모래를 밟고 때로는 썰물로 드러난 바위에 올라서기도 하면서 왕복 5km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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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펠리컨 지는 해를 못 보고 떠나는 아쉬움을 하늘을 날고 있는 펠리컨이 위로해 주는 듯했다. ⓒ CHUNG JONGIN

 
석양이 멋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새가 날아왔다. 펠리컨이었다. 지는 해를 못 보고 떠나는 아쉬움을 하늘을 날고 있는 펠리컨이 위로해 주는 듯했다.
덧붙이는 글 올림픽 국랍공원은 트와일라잇(Twilight) 영화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영화는 오리건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 촬영되었다.
#올림픽 국립공원 #올림포스산 #허리케인릿지 #크레센트호수 #리알토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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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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