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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관 구순 왕언니의 인기 비결

운동으로 몸과 정신의 불을 잘 태우도록 돕는 노인들

등록 2023.09.20 09:17수정 2023.09.2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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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근원은 불'이라고 오래된 철학자가 말했다지요. 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통찰입니다. 불은 생명 운용 원리의 훌륭한 상징입니다.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영양소를 '열량'이라 합니다. '열'은 '불'입니다. '열량을 태운다'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몸은 음식을 태워서 에너지를 만듭니다. 수명은 몸 속의 불을 얼마나 깨끗하게 오랫동안 태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몸 속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을 '신진대사(新陳代謝)'라고 하죠.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대신 생긴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Metabolism'입니다. 어원으로는 Met(변화), bol(공)으로 풀이합니다.

몸속의 에너지 변환의 뜻이 내포되어있습니다. 어쨌든 품사로 '불'은 명사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동사로 읽어야 합니다. 이 불이 사람 안에 있어 타올라야 합니다. 그것도 가능한 한 찌꺼기 없이 안정적으로 오래 동안 타야합니다.

식물은 햇빛을 불쏘시개로 이용합니다. 사람에게는 뭐가 불쏘시개 역할을 할까요? '운동'입니다. 저희 노인복지관에서 90해가 넘도록 운동으로 불을 유지하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한번 소개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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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서로 돕는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갇혀 사는 우리. 사람 사이의 연결은 생존의 기본값입니다. ⓒ 조영재

 
노인복지관에서는 운동프로그램이 단연 인기입니다. 복지관 이용노인은 보통 건강한 편입니다. 이 분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이런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노인들은 다 건강하다!" 그만큼 운동을 열심히 한 덕이겠지요.

그 중에서 특별한 분이 계십니다. 2년 전 구순 잔치를 하셨습니다. 그 나이에도 우리 복지관 대부분의 운동수업을 섭렵하십니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종일 참여하십니다. 다들 놀라워합니다. 치아도 대부분 영구치 그대로입니다. 식사는 정해진 분량으로, 정해진 시간에 하십니다. 간식은 별로 즐기지 않죠. 몸매가 아주 아담합니다. 대사질환도 없고, 수술 받은 적도 없습니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은 허리통증입니다. 90년 넘게 세월이 허리를 짓눌렀으니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복지관의 다른 분들은 이 할머니를 왕언니로 여깁니다. 존경하며 따르지요. 우리 복지관의 롤모델이 된 지 이미 오랩니다. 이 왕언니를 따라 앞 다투어 운동수업을 듣습니다.


저희 왕언니는 '파워 인플루언서'입니다. 복지관의 살아 움직이는 건강모델이십니다. 분명 주위의 시선 때문에 더 열심히 운동에 매진하시는 게 보입니다. 매일 복지관에 출근도장을 찍는 구순의 왕언니를 중심으로 어떤 '에너지장'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자기장에 이끌려 더 많은 동생, 후배 노인들이 모여듭니다. 

코로나 시기에 많은 사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으니 더 많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댁에서 따라할 수 있도록 운동을 비롯해 양질의 콘텐츠를 영상으로 제작하여 비대면으로 서비스해드렸었지요. 하지만 효과성은? '글쎄요'입니다. 실제 코로나 기간, 노인복지관 운영이 중단되면서 많은 노인분들이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많았습니다.  

저는 구순의 왕언니를 보면서 대면적인 관계에는 비대면과는 다른 차원이 있음을 느낍니다. 사람은 불을 저마다 지니고 있습니다. 몸의 불 뿐만 아니라 정신의 불도 있습니다. 이 불들은 모이면 역동적이고 신비한 작용을 만들어 냅니다. '대면적 관계'에서 이 불은 더 쉽게 에너지장을 만들어냅니다.

'만물의 근원은 불이다 '라는 철학자의 일갈을 다시 떠올립니다. '운동'은 우리 몸의 불을 계속 지피고 유지합니다. 또 하나 이 불은 모여 관계를 맺을 때 묘한 시너지가 됩니다. 구순의 왕언니와 주변에 형성되고 있는 에너지장이 이 진실의 증거입니다.

매일매일 노인분들은 복지관에 모이십니다. 왜 이 분들은 모이실까요? 몸과 마음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또 잘 타오르도록 알게 모르게 서로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식사하시고, 또 먹은 열량만큼 운동으로 태워서 쌓아두지 않습니다. 타고 남은 재는 대소변으로 잘 내보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깨끗이 천천히 불을 태우며 잘 사는 노인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이 모이시니 더 잘 타오릅니다. 이 몸과 정신의 불을 잘 태우도록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계신 거죠.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갇힌 우리. 서로 연결과 서로 의존은 생존의 '기본값'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덧붙이는 글 부산환경연 10월 웹진 기고예정
#연대 #신진대사 #상호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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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동물, 식물 모두의 하나의 건강을 구합니다. 글과 그림으로 미력 이나마 지구에 세 들어 사는 모든 식구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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