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세시 풍속 '반보기'를 아시나요?

시집간 딸들이 친정엄마 만나는 집단 행사

등록 2023.09.27 15:38수정 2023.09.2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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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보기'를 아십니까? 아녀자들의 바깥 출입이 어려웠던 시절, 시집간 딸이 친정 어머니를 만나기가 어려웠던 때에 시댁에서 며느리에게 당일치기 특별 휴가를 주어 친정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경우가 있었다.

자동차 없이 걸어 다니던 시절인지라 하루 해가 너무 짧을 수밖에. 따라서 시댁과 친정의 중간 지점에 만남의 장소를 정하고 딸과 친정 어머니는 상봉을 한다. 서로가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과 선물을 나누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나눈다.


그러나, 걸어서 오고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친정 어머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반나절. 그래서 붙은 이름이 '반보기'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반보기는 단순히 시집간 딸이 친정 어머니를 만나는 개인적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장소에서 시집간 딸들과 친정 어머니들이 집단적으로 모이는 세시 풍속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부여에는 아주 특별한 반보기 전통이 있다. 660년 나당연합군의 침략으로 700여 년의 백제 역사는 기울어지고 의자왕과 왕족들, 귀족과 백성 13,000여 명이 당나라에 포로로 압송된다. 남은 백성들은 백마강변의 야트막한 산 마루턱에 올라 눈물을 흘리며 당나라로 압송되는 사람들을 전송했다.

심지어 백마강에 있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왕이 타고 있는 뱃머리에 몸을 부딪치며 이별을 슬퍼했다고 한다. 나당연합군의 총사령관 소정방은 이들의 마지막 이별을 배려하여 의자왕과 포로들이 칠일 동안 이곳에 머물며 이별의 회포를 풀 수 있도록 했다.

이곳을 왕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으로 유왕산(留王山)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음이 이어져 매년 이때쯤 되면 백제의 유민들이 유왕산에 모여 당나라로 끌려간 사람들을 추모했다고 한다.

백제 멸망 후 유민들이 모이던 추모의 장소와 추모의 의례는 세월이 흐르면서 (당나라 압송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을 대신하여) 시집간 딸과 친정 어머니의 애틋한 정서가 담긴 '반보기' 행사로 이어졌다. 반보기 행사가 있는 날에는 유왕산에 엄청난 인파가 모여 들었고,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까 이 모임은 일종의 축제가 되었다고 한다.


반보기 행사일은 매년 추석 이틀 뒤인 음력 8월 17일로 정해져 있었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사비성이 함락된 날이 음력 7월 18일이니까 사비성 함락 후 한 달쯤 뒤인 8월 17일 당나라 점령군이 철군을 했다고 보면 시기상으로 얼추 비슷해 보인다.

소정방이 사비성 중심에 있는 정림사 석탑에 자기의 전공을 기록한 날이 8월 15일이다. 나당연합군의 총사령관인 소정방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전공이 석탑에 새겨진 것을 확인한 뒤 이틀 후에 당나라로 귀국길에 올랐다고 보면 8월 17일 유왕산에 머물렀다는 것도 있음직해 보이는 정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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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왕산 추모제가 열리는 유왕산 정상 ⓒ 윤재홍

 
부여 유왕산 반보기 풍속은 194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 후 한동안 잊혀졌던 유왕산 반보기 행사는 최근에 백제문화제에서 '유왕산 추모제'를 제례 프로그램의 하나로 채택하면서 매년 백제문화제의 고정 프로그램으로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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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전 입장식 ⓒ 윤재홍

 
현재 부여에서는 '대백제전'이라는 이름으로 '제69회 백제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행사 기간은 2023.9.23~10.9까지다. 이 기간에 추석(양력 9.29, 음력 8.15)이 포함되어 있고 반보기일인 음력 8월 17일도 포함되어있다.

아쉬운 것은 대백제전 프로그램의 하나인 '유왕산 추모제'를 10월 6일에 배정했다는 점이다. 이왕이면 반보기일인 음력 8월 17일(양력 10월 1일)에 진행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부여 #반보기 #유왕산 추모제 #대백제전 #백제문화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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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단지 해설사(영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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