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그룹 CEO 인선 시장에 맡겨라

민영화 기업 CEO 자리 정권 전리품 아냐... 언제까지 포스코와 KT 잔혹사 반복할 것인가

등록 2023.09.25 14:51수정 2023.09.2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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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척도를 가늠하는 여러 지표 가운데 하나가 시장에 대한 인식이다. 기업을 어떻게 규제하는지를 보면 민주화 정도를 알 수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해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누구도 중국을 민주화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기업지배구조 등 많은 분야에서 국가권력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금융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술혁신기업 1위 알리바바 그룹 CEO 마윈을 한칼에 날렸다. 자국 기업만 칼질하는 게 아니다. 롯데백화점은 경제보복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중국 시장을 떠났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후진적 행태다.

시장을 거스른 중국식 사회주의는 위험하다. 그렇다고 시장 자본주의가 만능이라는 말은 아니다. 독일은 무한 경쟁을 정당화하는 시장 자본주의를 공동체를 파괴하는 '야수 자본주의'라며 경계한다. 효율만 따지는 시장 자본주의와 인간의 얼굴을 한 유럽 사회주의, 국가권력이 장악한 중국 사회주의 가운데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세계 교역규모 10위 대한민국은 시장경제를 통해 달성됐다. 그렇다 해도 공동체 유지를 위한 최소한 통제는 필요하다. 문제는 민간기업 CEO 자리까지 정권 전리품으로 인식하는 발상이다. 우리 정치에서 대기업을 압박해 정치자금을 뜯는 관행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민영화 기업 CEO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도는 여전하다. 글로벌 경제체제에 반하는 후진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흔히 포스코와 KT를 '주인 없는 회사'라고 한다. 민영화 이후 포스코와 KT는 급격히 성장했다. 특정한 주주가 지배권을 행사하는 대신 유연함과 CEO 전문성을 토대로 이룬 성과다.

그럼에도 CEO 인선 때마다 집권여당은 갖가지 명분을 앞세워 자기 사람 심는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 KT는 얼마 전 김영섭 새 CEO를 인선하면서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유력한 후보였던 당시 구현모 회장의 급작스런 사퇴는 논란을 촉발했다. 이어 인선 자문단이 추천한 윤경림 후보마저 자진(?) 사퇴했다. 표면적 이유는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 반대였지만 정권 입김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여당은 "도덕적 해이" "이익 카르텔"이라며 압박했고, 이런 상황에서 '전문성'을 앞세우는 KT 출신 도전은 무모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을 거스른 대가로 KT는 6개월 동안 비상 경영과 주가 폭락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11월로 다가온 포스코그룹 회장 인선에 관심이 집중되는 건 KT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을까하는 전망 때문이다. 현 최정우 회장 임기는 2024년 3월이다. 최 회장 또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패싱 논란에 휩싸이면서 중도 사퇴할 것이란 관측이 떠나지 않았다. 최 회장이 대통령 해외순방에 잇따라 배제되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해졌다.

언론은 대통령실 의중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며 정치권의 개입과 후유증을 걱정했다. 다행히 최 회장은 임기를 완주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주주들은 경영성과만 기준 삼는다면 3연임도 못할 게 없다고 한다. 최 회장은 임기동안 포스코그룹을 철강 중심 기업에서 이차전지와 에너지, 식량까지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기업시민' 경영 철학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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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서울 포스코센터 ⓒ 이희훈

 


포스코그룹은 그동안 '회장 연임→새 정부 출범→중도 퇴진'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2000년 민영화 이후 임기를 채운 역대 회장은 한 명도 없다. 이구택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1년 만에 임기를 1년 2개월여 남기고 사퇴했다. 정준양 전 회장도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뒤 물러났다. 권오준 전 회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진 사퇴했다. CEO 교체 기준이 경영성과가 아닌 외부 요인이라는 건 우리 사회가 아직 진정한 민주화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경제계가 포스코그룹 지배구조 변화를 윤석열 정부 민주화 지표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스코그룹은 최근 실적과 주가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경영성과는 주식시장 평가에서 확인된다. 지난 18일 기준 포스코홀딩스 시가총액은 50조 9965억 원으로 코스피 5위다. 또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퓨처엠, 포스코DX, 포스코엠텍, 포스코스틸리온 등 6개 상장사 시가총액은 107조 3815억 원에 이른다.​ ​​

2018년 7월 기준 포스코그룹 상장사 시가총액은 35조 원이었다. 지난 5년 동안 포스코그룹 주식가치는 무려 3배 넘게 올랐다. 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한 이유는 경영성과와 함께 철강, 이차전지, 수소, 광산, 에너지, 건설, 식량까지 글로벌 기업으로서 성장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KT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포스코 주식 가치는 KT보다 10배 높다. 또 KT가 내수 기반 공공재 성격이라면 포스코는 철강과 에너지, 이차전지, 식량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이다. 포스코그룹 CEO는 세계 시장 흐름을 읽어내는 역량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정치권 입김에서 벗어나 포스코그룹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인사가 적임자다.

CEO 자리는 정권의 전리품이 아니기에 주주와 시장에 맡겨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최근 KT CEO 교체 과정에서 검찰 수사를 언급하며 "KT 다음은 포스코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시장 우려를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포스코 지배구조에 간섭하려는 시도는 회사 주식을 40% 소유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기업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1월부터 포스코그룹 차기 CEO 인선 작업이 본격화된다. 만약 정부가 포스코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면 후유증은 간단치 않다. 파이낸셜타임즈 경고가 현실이 되는 한국 경제는 암담하다. 중국 공산당이 마윈을 쳐낸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시장 우려를 고려하면 자칫 권위주의 정권을 소환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누가 적합한 포스코그룹 CEO인지는 시장과 주주들이 더 잘 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세일즈맨을 자처하며 해외순방 외교에서 줄곧 긍정적인 시그널을 발신했다. 투명한 지배구조 보장은 핵심이다. 대한민국은 자신들 입맛대로 언제든 기업 CEO까지 갈아치우는 중국 공산당과는 달라야 하는 게 상식이다. 민주화는 구호로만 달성되지 않는다.

- 임병식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전 국회 부대변인)
#포스코그룹 CEO #KT 김영섭 대표 체제 #알리바바 마윈 #기업 지배구조 #주인없는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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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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