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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된 변기, 부여에 있습니다

국립부여박물관 호자 전시... 7세기 백제시대 왕이 사용하던 이동식 소변기

등록 2023.09.28 15:27수정 2023.09.2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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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예술 작품으로 인정 받는 변기는 2개가 있다. 하나는 그 유명한 뒤샹의 '샘 Fountain'이라는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호자 虎子'라는 작품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뒤샹은 1917년 상점에서 산 남성용 변기에 R. Mutt 라는 사인을 한뒤 뉴욕의 한 전시회에 출품 했다. 상식을 벗어난 이 작품의 전시는 거절 되었지만 이 파격적인 스캔들은 '예술은 무엇인가?' 에 대한 논쟁의 불을 지폈고, '샘'은 피카소나 앤디 워홀의 작품을 누르고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뒤샹의 '샘'이후 예술의 세계에서 작품과 상품의 경계는 무너졌고, 미학의 근본 질문은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가 아니라 '무엇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로 전환되었다. (The contemporary aesthetic question is not 'What is beautiful?' but 'What can be said to be art?' - Thierry de Duve -)

그런데, 작품과 상품이 원래부터 구분되는 것이었던가? 예술과 생활이 원래 구분되는 것이었던가? 작품과 상품, 생활과 예술의 구분은 아마도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뒤샹의 '샘'이 작품과 상품의 경계를 허물고 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면 이는 작품과 상품과 일상용품을 원래의 위치로 환원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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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자 ⓒ 윤재홍

 
이제,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호자'를 보자. 고개를 약간 돌린채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호랑이 모양의 이 물건은 남자용 변기다. 7세기 백제시대 왕이 사용하던 이동식 소변기라고 하는데, 부여 군수리에서 발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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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여성용 변기 ⓒ 윤재홍

 
'호자'앞에 있는 이 그릇은 무엇일까? 여자용 소변기다. 남녀의 차이를 이보다 더 깔끔하게 설명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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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자 - 앞에서 본 모습 ⓒ 윤재홍

 
백제시대에 호자를 만든 사람은 작품이라는 생각도 상품이라는 생각도 없이 그저 누군가를 위한 생활용품을 만든것 뿐이었을 것이다.

부여에 있는 기념품점에 가면 호자 복제품을 상품으로 판다. 뒤샹은 상점에 있는 변기를 전시실로 들고가 작품으로 만들었고, 부여에 있는 누군가는 전시실에 있는 변기를 상품으로 만들어 기념품점에서 팔고있다. 기념품점에서 팔린 상품이 또 다른 작품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작품이 상품이 되고 상품이 작품이 되는 이 혼란 속에서 작품과 상품의 경계는 어디일까?

클래식 예술과 대중 예술간의 경계를 허물어 온 뒤샹, 그리고 뒤샹의 뒤를 이은 현대 팝 아티스트들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고전 미술과 대중 미술간의 거리는 먼듯 하다. 작품에 대한 난해한 해석, 작가들의 명성에 압도당한 중압감, 작품에 심오한 뜻이 있으리라는 기대감 … 등이 작품 감상의 장애물일지 모른다. 난해한 해석, 중압감, 기대감 없이도 볼 수 있는 백제시대의 코믹한 '호자와 그 짝꿍'을 보면서 생활용품 속에 녹아있는 옛사람들의 미적 감수성을 느껴보기 바란다.
 
#부여 #국립부여박물관 #호자 #뒤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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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단지 해설사(영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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