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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릴 문자'가 만들어진 땅

[불가리아] 제국의 꿈은 어디로

등록 2023.10.06 16:40수정 2023.10.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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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이번에 향하는 도시는 불가리아의 소피아입니다. 해가 지고 있는 국경, 다시 유럽연합의 깃발이 보였습니다. 그것에 왠지 안도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소피아에 도착한 것은 이미 어두운 저녁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전차 한 대가 겨우 불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길을 지나 숙소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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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바시 모스크 ⓒ Widerstand


다음날 둘러본 소피아 시내의 모습은 흥미로운 점이 많았습니다. 발칸 반도가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섞여 있는 곳인지는 알았습니다. 하지만 국경 하나를 건너 달라진 풍경을 막상 마주하자 신기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도시 곳곳에는 오래된 성당이 있었습니다. 불가리아는 정교회의 세력이 큰 곳이죠. 소피아의 길을 걷다가 불가리아 노동조합 연맹의 시위를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치다가도 성당 앞을 지날 때면 짧은 기도를 올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곳곳에 또 모스크가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튀르키예와 접경하고 있다보니, 이민자를 중심으로 무슬림도 많이 정착한 모양이었습니다. 모스크 앞의 식당에서 오랜만에 튀르키예 음식을 먹어 보았습니다. 문화가 섞이는 현장이란 이런 것일까요.

넓은 광장과 공원, 낡은 건물들과 박물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지하철역 옆에는 소피아의 옛 도시 유적이 발굴 중에 있었습니다. 소피아와 불가리아의 깊은 역사를 눈 앞에서 마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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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페트카 성당 ⓒ Widerstand


불가리아는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사실 중세에는 발칸 반도가 대부분 불가리아의 영토였던 때도 있었을 정도였죠.

불가리아인들은 원래 지금의 우크라이나 땅에 살던 민족입니다. 원래 그곳에서 '불가르 칸국'을 꾸리고 있던 이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남하한 것이지요. 발칸 반도에 정착한 불가리아인들은 681년 불가리아 제1제국을 수립합니다.

불가리아 제1제국은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한때는 이슬람 세력의 위협을 받던 동로마 제국을 지원해 '유럽의 구원자'라 불렸을 정도죠. 9세기에는 프랑크 왕국과 국경을 맞댈 정도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 불가리아가 슬라브 문명에 남긴 영향력도 막대합니다. 당장 지금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에 사용하고 있는 문자인 '키릴 문자'도 불가리아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키릴 문자의 원형은 동로마 제국의 키릴로스 형제가 만든 '글라골 문자'입니다. 슬라브인들에게 기독교를 선교하기 위해 만든 문자였죠. 불가리아의 시몬 1세가 이 글라골 문자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것이 현재 키릴 문자의 원형입니다.

그러니 지금 불가리아도 당연히 키릴 문자를 사용합니다. 키릴 문자가 만들어진 땅이라는 자부심도 상당하죠. 유로화에 키릴 문자가 들어가 있는 것도 불가리아가 유럽연합 회원국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아직 불가리아는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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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릴 문자를 만든 키릴로스 형제의 동상 ⓒ Widerstand


11세기 불가리아는 동로마 제국에 정복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100여 년 만에 다시 독립을 되찾죠. 불가리아 제2제국이 성립되었습니다. 제1제국 시절보다는 작았지만, 불가리아는 이번에도 발칸 반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13세기에 접어들며 불가리아의 분열이 시작되었죠. 동쪽에서는 동로마가, 서쪽에서는 헝가리가 성장했습니다. 몽골의 침입도 받아야 했죠. 결국 불가리아는 분열했고, 여러 영주들이 땅을 나눠 갖게 됩니다. 이 시기부터 발칸 반도의 주도권은 세르비아로 넘어가죠.

1396년, 분열되어 있던 불가리아 땅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불가리아가 다시 독립을 되찾는 것은 500여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계몽주의와 민족주의의 시대가 오면서, 불가리아도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오스만을 물리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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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 ⓒ Widerstand


1878년 불가리아는 '불가리아 공국'을 세웠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된 국가였죠. 하지만 서구 열강에 의해 공인받은 불가리아 공국의 영토는 소피아 인근 작은 땅에 그쳤습니다. 대부분의 불가리아인들이 불가리아 공국 외부에 거주하고 있었죠.

불가리아는 500년 전과 같은 제국을 부활시키기 위한 행보에 나섰죠. 오스만 제국과도 싸웠고, 마케도니아를 비롯한 주변국도 정복하려 했습니다. 한때는 러시아와도 적대하며 영토를 확장해 나갔죠.

1908년, 불가리아는 오스만 제국에서 완전히 독립해 '불가리아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1912년에는 발칸 반도의 국가를 연합해 오스만 제국과 싸우는 '1차 발칸 전쟁'을 주도했습니다. 불가리아는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도 불가리아의 영토 확장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땅을 가져가려다 발칸 반도의 다른 국가들과 '2차 발칸 전쟁'을 치르기도 했죠. 여기서 불가리아는 패전했습니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1918년에는 1차대전에까지 참전합니다.

불가리아는 이 시기 '발칸의 프로이센'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국력의 대부분을 군사력 증강에 투입했습니다. 그리고는 주변 국가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죠. 영토의 확장과 국토의 확보가 불가리아의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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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옛 공산당사 ⓒ Widerstand


하지만 제국의 꿈은 그리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가리아는 1차 세계대전에서도 패배했습니다. 인구의 4분의 1을 넘는 120만 명 규모의 군대를 투입했으나, 남은 것은 폐허와 난민 뿐이었습니다. 생산 가능 인구 상당수를 잃어버려 국가 경제도 큰 타격이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가리아는 2차대전에는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1차대전 시기의 상처를 다시 반복할 수는 없었겠죠.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적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 말기에는 공산주의 세력이 불가리아를 차지했습니다. 쿠데타가 벌어졌고, 당시 10살에 불과했던 불가리아 국왕 시메온 2세는 폐위되어 스페인으로 망명했습니다.

불가리아는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와 민주화도 순조롭게 이뤄냈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자유주의 세력이 결집하기 시작했죠. 1990년 공산당의 일당독재가 폐지되었고, 자유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치체제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쟁이나 유혈 사태 없이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한 것은 발칸 반도에서 불가리아가 유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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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2세 동상 ⓒ Widerstand


불가리아는 이후 친서방 정책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급격한 시장경제 전환으로 벌어졌던 혼란도 2000년대에는 안정되기 시작했죠. 2004년에는 NATO에 가입했고, 2007년에는 유럽연합에도 가입했습니다.

그 사이 망명했던 국왕 시메온 2세도 돌아와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2001년에는 그가 선거를 통해 총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퇴위한 군주가 돌아와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세계 유일의 사례를 남긴 것이죠.

불가리아가 가지고 있던, 제국의 꿈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팽창과 침략을 이어가던 불가리아 제국은 이제 없습니다. 중세로 돌아가 발칸을 장악한다는 몽상도 이제 이 땅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불가리아에 남은 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라진 제국의 꿈 따위보다, 주변국의 동료 시민과 함께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현실만이 불가리아에는 남았습니다.

불가리아의 국경을 넘으며 봤던 유럽연합의 깃발을 생각합니다. 유로화에 새겨져 있는 불가리아의 키릴 문자를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이, 언젠가 국경도, 언어도, 화폐도 뛰어 넘어 이웃 국가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상상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제국의 꿈이 사라진 뒤 불가리아가 향하는 연합과 연대의 길을, 이제는 더 주목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이 연합을 처음 만들어낸 서유럽의 행로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암시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세계일주 #세계여행 #불가리아 #소피아 #발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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