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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된 직원이 '사장'까지... 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 또 있나

박성제 전 MBC 사장의 - 공영방송 수난사

등록 2023.10.14 11:09수정 2023.10.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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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제의 책 표지 ⓒ 최우규

 
책 읽기 시작한 시간 오전 10시30분.
책 읽기 끝난 시간 오후 1시3분.

박성제 전 MBC 사장 책이 나왔다. <MBC를 날리면>(창비)이다.


눈치채셨지만, 제목은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서 따왔다. 윤 대통령은 2022년 9월 유엔 총회 참석차 방문한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냐"고 말했다. MBC 등 국내 100여개 언론사는 이를 "국회에서 이 XX(독자께 죄송하지만, 발음은 '새끼'로 들린다. 대통령실도 이 부분을 다투지는 않는다)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 쪽팔려서 어떻하냐"고 자막을 달아 보도했다.

보도가 나고 난리가 난 반나절 뒤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 뒤 전국민의 청력 테스트가 시작됐다. 전문가들도 한마디씩 거들고.

그래서인데, 대통령실 주장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 제목은 <MBC를 바이든>일 것이다.

이 글은 저자가 보내온 책을 읽고 쓴 것이다. 내가 사서 읽은 게 아니니, '협찬' 독후감이다(요즘은 이런 거 철저하게 따진다고 하니, 이렇게 기록해 둔다. 나중에 서점에 가서 살 것이다).

그러니까 2시간 30분이다. 220쪽 책을 읽는데 걸린 시간이다. 책을 들고는 후루룩 읽었다. 이러면 독후감은 끝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몇 글자 첨언(添言)하고자 한다.

'숨겨진 일'을 듣는 것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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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5일, 당시 한나라당의 언론장악 7대악법에 반대하며 파업중이었던 MBC노조 박성제 위원장(가운데)과 노조원들이 5일 오후 서울 남산 팔각정앞에서 '조중동 방송 안돼! 재벌방송 안돼!'가 적힌 풍선을 날리기 위해 올라가고 있다. ⓒ 권우성


우선 재미있다. 난 콘텐츠의 최고 덕목은 재미라고 본다. 제아무리 위대한 사상과 고매한 철학을 논해도 받아들이는 이가 졸면 끝이다. '무슨 무슨 포르노' 같이 맥락 없이 추구하면 안 되지만, 선을 지키는 재미는 중요하다. 그리고 선을 지키면서 재미있게 쓰기는 정말 어렵다.

그 점에서 이 책은 4분의 3지점까지 재미있다. MBC라는 콘텐츠 공룡의 수년, 마이크로한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MBC가 '엠병신(적절치 않은 단어가 거듭 등장해 송구하다. 장애인과 가족께 특히 그렇지만, 당시 상황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단어를 쓴다)'이라는 욕을 듣다가 신뢰도 1위에 등극하고, 적자에 시달리다가 흑자에 이르게 된 일을 속도감 있게 묘사한다. '쳇, 잘난 체야'라고 했다가, '그래, 그랬으니 그랬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 박성제는 방송기자다. 신문기자 출신인 내가 보는 방송기자의 장점은 묘사와 기술이 생생하다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본 양, 그리고 삼촌이 조카에게 "그때 말이야, 그놈들이…"라고 말하듯 들려준다. 방송 뉴스는 중학교 2학년이 한 번 듣고 이해해야 한다.

박성제의 글쓰기는 그 기본에 매우 충실하다. 근현대 서양 철학자 번역서 같지 않고, 어느 한 대목 두 번 읽지 않아도 된다. 그냥 눈이 가는 대로 읽으면 된다.

난 정말 좋은 책은 독자에게 어쩔 수 없이 줄을 긋게 한다고 믿는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책을 읽다가 몇몇 문장에 줄을 그었다.

박성제는 MB 정부 때 해직 기자가 됐고, 문재인 정부에서 복직돼 보도국장이 되고 사장이 됐다. 그 과정 자체가 드라마틱한데, 그걸 드라마틱하게 썼다. 위에서 '재미'를 언급한 부분이다.

그리고 국장과 사장을 하면서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을 진짜 만나면 좋은 친구로 만들기 위해 무슨 부침과 역경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진 일'이다. 그 수년의 난리 통에 MBC라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당사자에게 듣는 것만큼 재미난 콘텐츠는 없다. 미국에서 대통령이나 주요한 참모(aides)가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가 그래서다.

지상파 방송이 OTT와 유튜브에 밀리는 현실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고민도 책에 들어있다. 이는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 출판 등 콘텐츠 업계의 공통 고민이 아닐까싶다.

'심심할 수 있는 부분'에 담긴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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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제 전 MBC 사장 ⓒ 이희훈

 
아까 책의 4분의 3이 재미있다고 했다. 그럼 나머지 4분의 1은 재미없나. 난 재미있었다. 언론과 권력을 조금씩 경험했기 때문이다. 신문기자로 24년 살았고, 방송과 통신을 담당하던 청와대 홍보 기획비서관 생활을 1년쯤 했다. 어떻게 굴러가는지, 직간접으로 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심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부분은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 이기주의에 기초한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언론의 자유를 논하고 있다. 내 견해와 대체로 일치한다.

언론계 은어로 '야마'라고 있다. '주제, 테마, 가장 중요한 부분'을 뜻한다. 이 책에서 소위 '재미없을 수도 있는 부분'의 야마는 뭐냐. '좋은 언론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 좋은 언론은 언론인이 만든다'다. 권력 손을 탄 언론, 권력의 사랑을 갈구하는 언론은 좋은 언론이 못 된다. 역사가 증명한다. 내부자들이 깨어나 쟁취하지 않는다면.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말과 같다. 놀랍게도, 이 일이 잘 안된다. 그래서 '기레기'가 아니라 '언론인'이 더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언론을 떠난 주제에 이렇게 쓰면 꼰대다. 나는 그 꼴이다. 그런데 박성제는 스스로 '해직 언론인'의 길을 다시 걸을 것 같다. 퇴임했으니 해직은 아니고, 해직 때 당한 험한 일이 되풀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의 앞날에 잠깐의 가시밭길과 꽃길의 영광이 있기를 기대한다.

글에 나도 등장한다. 깜놀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저렇게 심각하게 말했나 싶다. 뭐, 할 수 없다. 이래서 기자는 믿으면 안 된다 (혹시 모르는 분이 오해할까 싶어선데, 나도 기자를 좀 했다).
#박성제 #MBC #수난사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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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기자로 23년 일했다.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기획, 연설기획비서관을 했다. 음반과 책을 모으다가 시간, 돈, 공간 등 역부족을 깨닫는 중이다. 2023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룬 책 <대통령의 마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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