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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위해 담배 맛을 대신 본 딸, 그 특별한 이유

[인터뷰] <돌봄의 온도>를 쓴 작가이자 요양보호사 이은주

등록 2023.10.25 11:55수정 2023.10.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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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증가, 고령화와 더불어 가족과의 연대가 느슨해지는 오늘날 가족돌봄의 문제는 '재앙' 혹은 '재난'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재정적 부담과 무관심 속에서 아픈 가족을 책임지게 된 누군가는 자신의 꿈도, 사회 활동도 포기한 채 고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돌본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일은 괜찮은 일일까. 돌봄이 재앙이나 재난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은주 작가는 먼저 자신을 돌보라고 말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때라야 비로소 '지속가능한 돌봄', '질 좋은 돌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수시로 들여다보고 알아차리는 일이 필요하다. 다른 가족들에게 돌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일도 중요하다. 사회적으로는 돌보는 사람에 대한 처우개선과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개인과 사회의 노력이 합해졌을 때 비로소 '돌봄'은 한 개인의 불행에서 벗어나 사회의 자산으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전작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를 통해 요양보호사의 일상을 보여준 이은주 작가가 신작 <돌봄의 온도>를 통해 '함께하는 돌봄'에 대해 전했다. "돌봄이 재앙이나 재난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물음을 갖고 지난 9월 이은주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상상해 보세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생기는 화학작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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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세이 <돌봄의 온도>를 쓴 이은주 작가. ⓒ 이은주

 
그의 이력은 다채롭다. 일본어 번역가이자 요양보호사, 에세이스트이자 최근엔 강연자로도 활동 중이다. 어르신의 집을 방문해 생활 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방문요양 일도 진행 중이다. 요양보호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 일본 유학파 출신이 돌봄 노동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잘 하기 어렵습니다. 돌봄 노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20대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식당에서 홀서빙을 했어요. 저녁 바쁜 시간이 끝나면 직원들이 다 함께 식사를 해요. 그곳 여주인인 오카미상이 뜨거운 스튜를 떠주면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의 식성을 다 알고 있는 거예요. 레이코는 당근을 싫어하니까 당근을 빼주고, 요시카와는 감자를 좋아하니까 감자를 더 주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런 경험들이 제가 돌봄을 할 때 '개별적인 돌봄'을 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준 것 같아요.

결정적인 계기는 없어요. 왜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고 먼저 판단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곳에는 다양한 감정이 숨어있잖아요.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감동하는 부분도 달라지지요. 인생도, 직업도 어떤 변곡점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 다르거든요. 청소 일 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하루 종일 하고 나면 고개가 뻣뻣해서 들 수도 없어요. 하지만 그런 고된 노동현실 속에 하루하루를 사는 노동자가 있어서 이 사회가 굴러가지요. 우연한 기회에 요양보호사 강의를 들으며 너무 멋진 롤모델을 만났고,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서 있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됐네요."


- '개별적인 돌봄'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책 <돌봄의 온도>에서 어머니께 전자담배를 사 드리려고 담배 맛을 보는 장면도 그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아픈 이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외국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엄마와 단둘이 생활하는 아들이 침상에 있는 엄마에게 술을 가져다주는 장면이었죠. 환하게 웃는 그들의 얼굴을 보니 죽기 전까지 취향을 지켜주는 일이 멋지게 보였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만 연구해 왔는데 이젠 덜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냥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다 생을 마감하는 거예요. 돌본다는 이유 아래 모든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돌봄 받는 분들은 질병으로 인한 통증에 하루라도 안 아픈 날이 없지요. 하루 한때 가장 즐거운 일을 하면서 웃을 수 있다면,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긍정적인 돌봄 사례가 될 거예요. 그런 성공 사례를 공유하면서 연대하면 좋겠어요. 배우 오다기리 조가 주연한 영화 <메종 드 히미코>가 제가 생각하는 요양원의 모델이에요. 각자 자유롭게 옷을 입는다. 웃고 떠든다. 사랑한다."

- 타인을 돌보는 일과 어머니를 돌보는 일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요,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직접 돌보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려움의 차이라기보다는 경중에 차이가 있어요. 현대의학은 사망에 이르는 단계를 세 단계로 나눠요. 1단계가 외출을 못 하는 단계(사회적 사망) 2단계가 침상을 못 벗어나는 단계 3단계가 밥을 못 먹는 단계(관을 통한 식사)입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건 감정적으로 아주 힘들어요.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드니까요.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직접 돌보기로 한 이유는 절대로 요양원에 가지 않겠다는 당신 의사를 존중했기 때문이에요."

- 어머니뿐 아니라 남동생과 조카들을 돌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족돌봄으로 인생에서 포기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후회하지는 않는지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어보면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는데 화자는 사람이 덜 지나간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내용이 나와요. 아픈 엄마, 조카들, 그리고 손자를 돌보면서 저 자신도 모르게 내적 성장이 이뤄진 것 같아요. 사람을 탐구하기 위해 책을 읽었고, 가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호기심이 많은 저로서는 제 인생이 단 한 번밖에 없는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어쩌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쓸지도 모르겠어요."

- <돌봄의 온도>을 읽고 나니, 돌봄이 단순히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것이라는 의미로 여겨졌습니다.

"돌봄은 하기 전에는 두려운 법이에요. 하지만 돌보는 동안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사이에 상호 작용이 일어납니다. 돌봄에도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생기는 화학작용을. 그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서 우정을 쌓는 돌봄, 가족과 가족이 서로 자주 만나 소통할 시간을 주는 기회로서의 돌봄을 보면 어떨까요?

지속가능한 가족돌봄을 하려면 자기돌봄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저 같은 경우 인지증 단계에 들어선 엄마를 돌보며 점점 고립되어 가는 걸 느꼈어요. 고립된 돌봄은 좋은 돌봄일 수가 없어요. 질 좋은 돌봄, 사람 중심의 돌봄이 되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돌봄의 온도>는 엄마를 돌보며 점점 고립되어 가는 자신을 기록함으로써 돌보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도모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여전히 요양보호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좋아하는 일로 경제적인 활동이 가능해서입니다. 무엇보다 어르신을 돌보러 가는 길이 설레요. 지금 5년째 같은 뮤즈(저는 할아버지를 제우스, 할머니를 뮤즈라고 부릅니다)를 돌보는데 얼굴도 성정도 돌아가신 할머니와 닮으셨어요. 그래서 3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방문해서는 인사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곤 그날 무얼 할지 계획을 세워요. 물을 먼저 끓일지, 목욕부터 할지, 산책부터 하고 목욕은 나중에 할지, 병원 동행을 할지. '잘 돌보면 건강해진다'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 거예요. 왜 이 일이 중요한지, 왜 이 일이 매력 있는지. 단지 문제가 있다면 많은 요구와 책임이 있는 반면 권리와 임금에 대해서는 최저라는 사실뿐입니다. 그것은 바꾸면 되겠지요. 일의 내용과는 상관없어요."

- 작가님도 언젠가 돌봄의 대상이 되실 텐데, 어떤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가요.

"타인의 개입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가능하면 스스로 일상생활을 해내고 싶어요. 그렇지만 저도 돌봄을 받아야 할 때가 오면 돌봄을 기꺼이 받도록 노력할 거예요. 생의 주기에 맞게 지팡이를 짚고, 요실금 팬티 입기를 연습하고요. 다시 한번 아기가 되는 것처럼 기저귀를 누군가의 손에 의해 차야 할 때가 오는 거죠. 나를 돌보는 사람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몸은 물론 마음도 말이지요. 그리고 한 사람이 오랫동안 나를 돌봤으면 좋겠어요. 그럼 나는 돌봄 받는 능력을 키워서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겠어요. 물론 저도 기쁠 거예요. 상호 돌봄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다가온 초고령사회... "노인돌봄문제의 답은 '돌봄 민주화'"

베테랑 요양보호사인 이은주에게도 엄마의 엄마가 되는 일은 차원이 다른 고통과 고립을 수반했다. 엄마와의 고된 동행을 이어가며 그는 깨달았다. 지속가능한 돌봄을 위해선 일정한 마음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보다 중요한 건 공동돌봄이었다. 아무리 내 엄마라지만, 혼자서 돌보기엔 벅찰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부모돌봄을 함께 하자고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가족 내 돌봄 민주화를 실천했다. 조카손주인 9살 정명이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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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온도> 작가 이은주(오른쪽)와 그녀의 어머니. ⓒ 이은주


- 영 케어러(가족 등을 돌보는 청년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초고령사회를 준비할 때 앞으로 생길 영 케어러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저자 조기현이 엮은 책 <새파란 돌봄이 왔다>는 영 케어러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영 케어러들이 하루 평균 4시간 넘게 가사 노동을 했다는 문장에 저는 밑줄을 쳤어요. 다음은 이런 제안이 이어졌어요. '직장에서 돌봄 휴가를 쓰듯이 학교에도 돌봄 결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영 케어러에 대한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한국도 곧 이런 상황에 부닥치겠죠."

-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를 해야 할까요?

"우선 돌봄을 하는 영 케어러가 사회와 단절되지 않게 해야겠죠. 그러려면 영 케어러를 위한 돌봄 지침을 작성하고, 돌봄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합니다. 하루 3시간 이상은 돌봄에 시간을 쓰지 않도록 사회와 국가가 지원해야 합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마을 공동체에서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 케어러 존재 여부를 통장이나 부녀회 등에서 찾아 주민센터 복지과와 연결해 주면 좋겠죠. 예를 들면, 영 케어러는 '장기요양보험제도라는 게 있다'는 정보를 얻는 데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어요. 영 케어러가 이런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런 논의가 사회적으로 이뤄져야 하고요."

- 영 케어러도 돌봄 민주화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돌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성인이 어르신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모습부터 떠올리죠. 사실 어린이와 노인은 상호 돌봄이 가능하답니다. 오히려 노인과 어린이의 관계에서 정서적 지지가 더 쉽게 형성되죠. 그 예로 어른보다 어린이가 스마트폰 작동법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드리는 것이 훨씬 습득력이 뛰어납니다. 때로는 어른보다 어린이의 눈이 더 날카롭고, 진실하고, 다정하며, 사려 깊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린이가 과도한 돌봄을 홀로 떠맡지 않도록 울타리를 만들어 줄 어른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 <돌봄의 온도>에서 가족 내 돌봄 민주화를, 더 나아가 사회 안에서 돌봄 민주화를 말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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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돌봄의 온도> ⓒ 헤르츠나인

 
우리나라는 2025년이 되면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출산율은 작년 기준 0.78명으로 사상 최저치다.

<새파란 돌봄이 왔다>에서 저자 조기현은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인구는 점점 나이가 드는데 가족 돌봄에서 오로지 가족 책임만을 강조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리스크를 지게 될 것이라 말한다. 이대로 가다간 세대 간 격차와 세대 내 격차는 좁아지지 않을 것이며, 이는 결국 서로 공멸하는 길로 빠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 한국도 2년 뒤에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예정이죠. 이에 따라 노인을 돌보는 인력이 날로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에선 이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다고 보나요?

"한겨레의 '홍명교의 이상동몽' 코너 9월 23일 자를 보면 정부가 돌봄서비스의 영리화를 추진하고 공공돌봄 지원기관인 사회서비스원 예산 148억 원을 전액 삭감해 버렸다고 해요. 사회서비스 시장화는 기존 요양보호사들의 처지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새롭게 맞이할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도 추락시킬 것이라는 지적에 저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런 정책은 힘들게 완성해 온 공공돌봄의 질서마저도 위기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돌봄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 구성원이 전부 감당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그러면서 어떻게 출산율이 나아지길 바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초고령화 시대와 출산율 저하는 연결돼 있어요.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처럼 서비스·자본으로서의 돌봄만 강조한다면 세대 간의 연대와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면서 아무도 행복할 수가 없을 거예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개인 SNS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돌봄의 온도 - 엄마를 직접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지혜 지속가능한 가족돌봄의 회복탄력성

이은주 (지은이),
헤르츠나인, 2023


#이은주 #돌봄의온도 #요양보호사 #노인돌봄 #초고령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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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문석희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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