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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체육 시간에 다치면 소송... 과연 옳은가

[이슈] 학교 체육활동 '위험 감수'의 경계는 어디인가

등록 2023.10.27 18:47수정 2023.10.2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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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경기장 ⓒ pixabay

 
#1 체육 수업 중 공에 맞아 다친 학생의 학부모가 담당 교사에 대한 교육청 감사와 징계를 요청하고, 경찰 고소로 심리적 압박을 받아온 경기도 용인의 60대 고교 체육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2023년 9월 미디어 보도)

#2.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씨름 수업 중 다친 학생의 부모가 체육 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학부모는 치료비, 정신적 피해 보상 등 명목으로 교사에게 26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2023년 8월 경기도 교육감 기자간담회서 공개)

두 사례는 한국의 체육교사들이 당면한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학교에서 발생한 학생 안전사고는 대개 학교안전공제회의 치료비 보상 등으로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는 교사에게 소송을 걸거나 교육부 징계 압력 등을 가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사제관계의 거리감은 사라졌고, 교육 공급자와 수요자라는 시장주의적 관계 구도가 전면에 등장한 양상이다. 언론인 김훈은 점점 개인화되는 우리 사회 세태의 한 단면을 '내새끼 지상주의'라고 질타한 바 있는데, 체육수업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최근 조사해 발표한 학교내 안전사고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를 보면, 학부모의 악성민원이나 소송 피해 경험담 가운데 체육시간에 발생한 사고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주요 사례를 보자.

-축구대회 출전했다가 골대로 넘어지면서 이가 부러졌고 학부모가 거액을 요구했다.

-축구하다가 우연히 급소를 맞은 일로 몇 달에 걸쳐 비뇨기과를 다니고 있으니 선생님이 우리 아이 미래를 책임지라는 욕설 섞인 민원을 들었다.

-체육시간에 잘못 넘어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담임교사, 전담교사 모두 소송이 걸렸다.


-체육활동 시 다친 학생에 대해 교사에게 민원을 넣고 책임을 물어서 체육활동을 실기가 아닌 이론 위주로 하게 되었다.

-체육대회 때 손을 다친 것에 대해 무릎꿇고 사과하라고 하고, 소송하겠다고 협박했다.

-체육수업 중 공에 아이 손가락이 다쳤다. 인대가 늘어나 반깁스를 하게 되었고, 수업을 어떻게 했냐며 항의전화를 받았다.

-체육수업 중 학생이 골절되어 학부모가 담임에게 합의금을 요구하고 과실치상으로 형사고소했다.

-체육시간 교사가 뜀틀운동 준비 작업을 하고 있을 때, 학생이 뜀틀을 하다가 앞니가 깨졌다. 성인이 되었을 때 치료비까지 3천만원의 소송을 당한 동료교사을 봤다.

-체육시간에 뜀틀 넘다 다쳤다고 협박하고 거액을 요구해서 학교 선생님 전체가 돈을 걷어서 주었다.

-체육시간에 시범을 보이는 교사가 휘두른 것에 맞았다고 위로금을 요구해서 준 것을 보았다.

-체육전담교사 시절 체육시간에 학생이 혼자 달리기를 하다가 골절이 있었다. 학부모는 민원을 제기하였다. 체육하다 다치면 민원을 넣는다.

학부모 전화 민원, 소송 압박의 형태

전교조의 체육수업 안전사고 교사 설문 내용을 한국언론재단 빅카인즈의 형태소 분석을 통해, 5차례 이상 등장한 어휘 유형을 살펴보면, 체육활동을 하다 학생이 다칠 경우 학부모가 전화를 통해 민원이나 불만 표출을 통해 체육교사나 담임 선생을 압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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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간 안전사고 설문 주요 어휘(자료:전교조, 빅카인즈 형태소 분석) ⓒ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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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간 안전사고 설문 어휘 분석 워드 클라우드(자료:전교조, 빅카인즈 형태소 분석) ⓒ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체육교육은 공동체와 국가의 기초를 이루는 개인의 신체와 관련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가운데 가장 전투적인 사회인 스파르타의 아동 훈육은 전사를 기르기 위한 극단적인 형태이지만, 교육과 양육을 중시하고 청소년기 시가와 체육 교육의 균형을 강조한 아테네 사회 또한 신체적 단련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국가·정체>에서 철인정치의 적격 연령을 50살로 보고 있다. 20살 이후 철학공부를 위한 예비교육 10년, 변증술 단련 5년, 실무경험 15년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지성적인 활동을 강조하지만, 그 기초로 17살까지의 체육과 시가교육, 20살까지의 군복무 등 청소년기의 신체단련을 중시했다.

 김창금은 <한국 스포츠 미디어 담론구조의 변화>에서 2000년대 사설에서 학생들의 체력이 약화됐다는 약골담론이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며, 1960년대의 약골담론이 입시경쟁으로 인한 체력활동 기회 박탈로 인한 것이라면, 2000년대에는 체력이 부족하면 서양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진다는 시각이 등장한다고 지적한다. 

 미디어의 학생체력 약골담론은 정부 정책 차원에서 학교체육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으로 연결되고, 2010년을 전후해 학교체육진흥법 등 학교스포츠클럽 활동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도입된 것이 사실이다. 또 학교체육 강화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는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학교체육 활성화에 대한 요구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는 체육활동에서 빚어진 안전사고에 대해 교사들이 큰 압박감을 느끼고, 이런 까닭에 "실기보다는 이론으로 대체한다"는 설문 조사까지 나오는 상황은 구조적으로 공교육의 실패를 보여준다.

안전과 위험의 경계, 그 선택은?

 독일의 놀이 전문가 귄터 벨치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안전사고가 많이 나는 놀이터는 지루한 놀이터라는 점이다. 표준적인 놀이터에서 더 사고가 많이 난다.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독일은 법이 발달해 있고 규범이 많은 나라인데도 1년에 2명씩 아이가 놀이터에서 사고로 죽는다. 그렇다고 놀이터를 폐쇄하거나 안전하고 지루하게만 만들 것인가?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죽는다고 도로를 폐쇄하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한겨레신문)

 생명과 직결된 신체활동은 선택이 아니다. 학교 체육을 통해 평생 수행할 운동의 기초를 습득하는 것은 개별 교과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신체활동이 수반할 수밖에 없는 위험성보다 건강한 삶이 주는 편익은 더 크다. 온실 속의 화초와 야생의 잡초 사이는 뿌리부터 다르다.

 유튜브에서 '예도'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철학자는 한국 사회에서 빚어지는 여러 문제들을 두고,"모두 어린애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즉각적인 욕망의 충족이 자칫 미성숙한 상태에 사람들을 머무르게 한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학교에서 신체 단련을 위해 애쓰는 체육교사를 고발하고 소송을 하는 세태는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을 상정하는 계몽의 과제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미완이라는 것을 반증하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김창금, 한국 스포츠 미디어 담론구조의 변화, 글누림, 2021
플라톤, 박종현 역주, 국가·정체, 서광사. 2021
양선아,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논다, 어른들 세상으로 가두지 않으면'. 한겨레신문. 2016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학생안전사고 관련 교사 피해사례조사 서술형 모음. 2023
#학교 #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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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는 스포츠 현상을 비평하고,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모임입니다. 토론 불모지의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 다양한 가치와 합리적 비판이 경쟁하는 공론장 구실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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