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살아 숨쉬는 민간인 학살지, 역사교육 현장으로 가꿔야"

창원마산 진전면 여양리 2002년 태풍 루사 때 유해 드러나... 창원유족회, 교육장 활용 요구

등록 2023.11.01 12:27수정 2023.11.01 13:20
0
원고료로 응원
a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나무에 매달아 놓은 '발굴지' 리본이 빛이 바래져 있다. ⓒ 윤성효

  
a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김영희 유해발굴 자원봉사자가 폐광 앞에서 막걸리를 따르고 절을 한 뒤 붓고 있다. ⓒ 윤성효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였던 숯가마와 폐광, 돌무지(너덜겅)가 살아 숨쉬는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는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의 유해 발굴 현장을 '역사 교육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회장 노치수)는 이곳을 인권교육 현장으로 조성하도록 관계 기관에 건의하고, 김영희 유해발굴 자원봉사자가 경남도교육청, 창원특례시청 관계자 등과 10월 31일 현장 답사를 했다.

여항산 자락에 있는 이곳에서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중순경, 진주형무소 재소자이거나 국민보도연맹원의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군방첩대와 경찰이 진주에 있던 민간인들을 이곳까지 끌고 와 집단으로 사살했다. 

이곳이 집단 학살지였다는 사실은 2002년 여름 태풍(루사)으로 숯가마 등에서 유해 일부가 휩쓸려 내려오면서 알려졌고, 2004년 5~6월 사이 발굴을 통해 숯가마 36구, 폐광 23구, 돌무지 104구 등 총 163구의 유해와 유품 119점이 나온 것이다. 이곳에서 나온 유해, 유품은 현재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 컨테이너 속 임시 안치소에 보관되어 있다.

피학살의 주인공은 진주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폐광에서 나온 옷 속에 들어 있었던 나무도장에 한자로 '태인(泰仁)'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이는 본적지가 진주인 정태인씨로 밝혀졌다.

<진주연극사>(조웅대 저)에 보면 정태인은 1936년 진주제2공립학교(현 봉래초교)에 입학했고, 고려예술연극회라는 극단을 조직헤 제1회 영남계술제(개천예술제)에 참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권고했던 인권교육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제격인 것이다. 학살지를 발굴했던 고 이상길 교수(경남대)도 교육 현장으로 활용해 달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여양리 발굴 현장은 현재 숯가마, 폐광, 너덜겅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발굴 전후 세워놓았던 안내표지판은 낡은 상태이고, 오르는 길목에는 김영희 유해발굴 자원봉사자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권 교육을 하면서 설치해 놓은 안전줄이 설치되어 있다.
  
a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 윤성효

  
a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2002년 유해 발굴 뒤 설치해 놓았던 안내판의 글자가 흐려져 있다. ⓒ 윤성효

 
현재 이곳은 2002년 발굴 때 세워 놓은 안내판의 글자가 거의 지워져 있고, 수풀이 우거져 있어 누가 안내를 하지 않으면 역사 현장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또 찾는 사람들의 안내 역할을 하기 위해 쳐 놓은 줄도 일부 삭아 있거나 끊어져 있다.

이곳은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발굴지는 8000여 평 규모로 옛 마산시(현 창원시) 소유로 되어 있고, 숯가마·폐광·너덜겅이 거의 그대로 있는 데다 서부경남의 중심지에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민간인 학살지 가운데 경북 경산 코발트, 경기도 고양 금정굴 등이 현재 현장 답사지로 활용되고 있다. 대부분 발굴지는 초원으로 묻혀버리거나 사유지에 있어 인권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김영희씨는 "진실의 역사 현장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하고, 민간인 학살지를 통해 교훈을 남길 뿐만 아니라 다시는 이러한 참혹한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런 차원에서 여양리 현장은 여러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 대부분 발굴 현장은 거의 흙으로 되어 있어 초원으로 변해버리고, 사유지이기에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며 "그러나 여양리 현장은 창원시 소유인데다 숯가마 등 발굴지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지역의 민간인 학살지는 150여 곳이고, 이 가운데 진주는 27곳, 창원 13곳 등이다.

김영희씨는 "보도연맹원으로 학살된 민간인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았던 지역이 진주로, 그 숫자만 해도 2000여 명에 이른다. 여양리는 진주지역 보도연맹원이 학살된 장소다"며 "경남은 괭이바다를 비롯해 수장이 많았기에 육지에서 발굴지는 보존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양리 발굴지에서는 유품 가운데 MG-50 중기관총 탄피 2개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영희씨는 "이런 탄피는 전국 어느 발굴지에서도 나오지 않았고, 유일하게 여양리에서만 나온 것"이라며 "차후 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영희씨는 "여양리 매장지는 깊은 산에 있다. 당시 진주형무소에 있던 정치범, 보도연맹원, 일반인을 끌고 와서 집단 학살했던 것이고, 오랫동안 은폐되어 있었으며 무덤도 찾을 수 없었다"라며 "그런데 태풍 루사가 유해를 찾게 해주었다. 영혼들이 '내 여기 있으니 찾아달라'고 자연을 빌어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여양지 학살지는 초·중·고 교사들이 현장답사 하고 있다"라며 "이곳은 진실화해위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나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이 발굴을 한 게 아니라 경남대 박물관에서 고 이상길 교수의 개인 연구비로 민간인 차원의 발굴이 이루어졌다는 게 특징이고 이는 전국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집단학살지를 보존 관리할 의무가 우리에 있다. 관계 기관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창원유족회는 이곳에 우선 안내판을 새로 설치하고 발굴지로 올라가는 길에 관련 시설(데크)을 하며 주차장 조성부터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순규 창원시의회 부의장은 "역사 흔적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더구나 교육 현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여양리 발굴지에 대해서는 우선 안내판을 새로 세울 필요가 있으며, 장차 교육 현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창원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청했다.
 
a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 윤성효

  
a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 윤성효

  
a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김영희 유해발굴 자원봉사자가 돌무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a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군용품 MG50이 나온 흔적과 폐광. ⓒ 윤성효

  
a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김영희 발굴단장이 매장지로 오르는 길에 줄로 표시를 해놓았다. ⓒ 윤성효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여양리 #창원유족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