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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대책, '일하는 엄마'만 위한 해법이어선 안 된다

[주장] 싱가포르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본 외국인 가사노동자 인력 수급 계획

등록 2023.11.08 17:18수정 2023.11.0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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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면 싱가포르 시내 곳곳에서 휴일을 맞아 외출한 가사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 김보민

 
늘 피고용인 입장에서 근로계약서를 쓰다가 난생처음 고용인 입장에서 근로계약서에 날인한 적이 있다. 피고용인의 세금과 보험료를 납부했고 매월 17일 급여를 지급했으며 명절 보너스 및 추가 휴가를 제공했다. 싱가포르에서 인도네시아가 고향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했을 때 일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추진하면서 싱가포르의 가사 외국인 고용 사례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에선 다섯 중 한 가구가 헬퍼(Helper)라 부르는 가사 노동자를를 고용해 육아와 살림을 맡긴다.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 여성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약 25만 명이며 이들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인근 국가 출신이다(참고로 싱가포르 인구는 560만 명으로,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여성을 가사 노동자로 채용할 경우, 세금 및 보험료, 급여, 식비 및 기타 부대 비용 등으로 월 100만 원가량의 고정 지출이 발생한다. 한국은 내국인 입주 가사노동자 급여가 350만 원~450만 원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고, 미국은 가사노동자의 시간당 급여가 25달러(한화로 약 3만 3천 원) 수준으로 주당 10시간 근무할 경우 한 달 급여가 135만 원 정도이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헬퍼를 고용하지 않는다면 싱가포르의 가장 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다소 씁쓸한 이야기가 공공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노동력'이라 불리는 한 사람이 사회 구성원으로 유입되는 것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두고 전문가를 비롯한 대부분은 그들의 낮은 임금이 가진 장점에 집중한다. 사용자 입장에서 비용이 저렴한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 한 사람이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많을 텐데 유독 비용만 강조되는 것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몇 해 전 농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여성 노동자가 숙소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숙소는 농장 바로 옆에 설치된 비닐하우스였고, 장시간 노동 후 안정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곳에서 생활했다. 노동자의 근로 현장이 농장 혹은 공장이어서 이들의 생활 여건이 열악했던 것일까? 한국의 '사용자'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다문화를 형성하는 주체로 혹은 기존 한국 사회에 흡수되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120만 명(공식 통계상 84만)의 외국인 노동자가 전국 각지의 산업 현장과 농장에서 일을 하고 생활하지만, 대부분은 계약 기간 동안 저임금 노동력만 제공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민 정책을 통해 한국이라는 사회에 흡수되는 인력은 극소수이다. 이미 외국인 노동자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력일 뿐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돌봄 영역의 노동자 역시 그 틀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즉,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저임금, 노동력 착취, 인권침해 등의 문제가 돌봄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일 뿐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돌봄 영역의 노동이야말로 가족과 육아 및 교육 관계자들도 감당하기에도 벅찬 일인데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저임금'으로 외주화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일까.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어디에 머물게 해야 할까

노웅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한 민업체는 외국인 인력의 숙소로 고시원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를 보면 해당 업체는 "일하는 지역과 가장 가까운 고시원으로 숙소 배정", "해당 고시원들은 모두 3.3m(1평) 이상으로 실생활 시설뿐 아니라 기본적인 밥과 김치, 라면 등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소식이 알려진 뒤 논란이 일자, 최근 환노위 국정감사 자리에 나온 고용부 장관은 "서울시와 고용부, 업체가 논의해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가사노동자들을 위한 기숙사를 마련하겠다는 기사도 접했다. 하지만 땅값 높기로 유명한 서울 한복판에 그들의 기숙사를 마련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고, 만약 서울 외곽에 있는 기숙사를 이용하며 서울로 출퇴근을 하게 된다는 말이라면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맞벌이 부부에게 적합한 육아 지원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더불어 주식이 밥과 김치가 아닌 그들에게 밥과 김치를 무료로 제공하는 고시원을 제공하는 것은 최선의 선택일까? 

싱가포르에서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후 가장 난감했던 문제가 바로 그들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집을 보러 다니다 헬퍼의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옛 공동주택을 찾아볼 수 있었다. 1978년부터 외국인 여성 인력을 수급해 온 싱가포르의 과거 흔적을 마주한 셈인데, 창문이 없어 창고처럼 보이는 방 하나와 변기와 세면대가 설치된 작은 화장실이 주방 끝에 그들의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살았던 집은 10년 정도 된 '콘도'라 부르는 공동주택이어서 가사노동자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방 옆에 창고가 있었는데 콘도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그 창고를 헬퍼의 방으로 사용했다. 말 그대로 창고였기에 바닥 마감이 되어 있지 않았고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난 그곳에 아이들 놀이 매트를 깔고, 그 위에 매트리스를 깔아 그의 침실을 마련했다. 창고에는 무거운 철문이 달려있어서 문을 여닫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이케아에서 커튼 봉과 커튼 하나를 사다가 달았다. 그렇게 인도네시아에서 온 가사노동자는 문도 하나 없이, 커튼으로 가리는 것이 전부인 창고에서 매일 밤, 잠을 청했다.

여성이 육아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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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와 이모는 헤어지는 날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아이는 지금도 가끔 이모가 보고 싶다고 한다. ⓒ 김보민

 
최근 <뉴욕타임스> 기사에 언급된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발언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중국 역시 출생률이 줄어들고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있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해법으로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즉, 여성들에게 직장에서 일을 하는 대신 가정으로 돌아가 밥 짓고 살림 살고 아이를 키우는 역할에 집중하라는 말이었다. 

이런 발언이 한국에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건가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지난 16년 동안 280조 원을 쏟아부었다는 한국의 저출생 대책이 헛수고가 된 이유에는 연일 임시방편만 도입하며 여성들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사회적 인식을 대대적으로 전환하지 못한 탓이 크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 둘을 낳고 10년을 워킹맘으로 살며 가장 행복하게 일과 육아를 병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코로나19로 인해 재택이 불가피했을 때였다. 코로나로 인해 실직하거나, 더 열악한 상황에서 일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송구한 이야기이지만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 좋았다. 

남편이 저녁을 준비하면, 나는 업무와 아이들 학교 공부가 동시에 진행되었던 식탁에서 아이들과 못다 한 종이접기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집안일과 육아, 일과 휴식을 같이 계획하고 적극적으로 분담했다. 새벽이나 밤늦도록 일을 하는 날도 부지기수였지만 아이들의 저녁을 챙겨주고, 숙제를 봐주고, 무엇을 하고 노는지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깊이 안정감이 흘렀다.

매해 규모 있는 저출생 대책 예산이 책정되고 시범사업이 운영됨과 동시에 가사와 돌봄 부담은 남녀 관계없이 나눌 수 있는 환경이 가정 내 마련되었더라면, 지금쯤 저출생이라는 큰 산을 넘어갈 체력은 마련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단순한 외주화로 가사 업무를 줄이는 것이 아닌, 남녀 모두 양육의 주체로 서고, 적극적인 양육 참여, 남녀 가릴 것 없이 필요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과 더불어 평등한 가사 분담 등의 인식 전환이 지난 십수 년 동안 이뤄졌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일하는 엄마'라는 말도 옛날에나 쓰던 말이다. 성별을 막론하고 누구나 경제 활동을 하고 육아를 책임지고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애쓴다. 지금부터 제시되는 저출생 대책은 '일하는 엄마'를 위한 해법이 아닌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이들의 미래를 내다보고 모두에게 적용해야 할 방안들이어야 한다.
#싱가포르 #가사노동자 #헬퍼 #저출산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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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에 자리 잡은 엄마, 글쟁이, 전직 마케터. 살고 싶은 세상을 찾아다니다 어디든지 잘 사는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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