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이어달리기 중인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

[기획] 한노보연 20년, 그간 무엇을 말해왔나 ①-2

등록 2023.11.06 11:47수정 2023.11.06 11:47
0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 출범 이전부터 우리는 대우조선(현 한화오션) 근골격계 집단요양 투쟁에 함께 하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강화된 노동 유연화 및 노동 강도가 노동자를 골병과 죽음의 현장으로 내몰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근골격계 직업병의 '인정과 치료'에 한정하는 것을 넘어 집단적 작업환경과 강한 노동강도의 문제로 드러내며,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출범했다.

출범 20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현장에 기반한 '연구'의 중요성과 현장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현장을 바꾸는 실천 투쟁으로써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 그렇기에 때로는 노동강도 평가사업으로, 때로는 위험성평가와 함께 20년을 이어달리고 있는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의 역사와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이 시작되다

2002년 거제도 옥포 매립지에 허리, 어깨, 팔, 다리가 아픈 노동자들이 함께 모였다. 이들은 회사의 압력과 회유에도 지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함께한 76명의 대우조선 조합원이다. 이들은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집단 산재 요양 신청에 들어갔고, 전원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이후 2002년 7월엔 한라공조 11명, 카스코 등 경남 2개 지부 32명, 11월에는 대우상용차 27명이 집단 산재 요양에 들어갔다. 2003년엔 삼호중공업 33명, 두원정공 21명, 대한이연 10명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을 시작했다. 이후 풀무원, 철도, 지하철,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은 업종과 지역을 넘으며 현장을 바꾸고 노동강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연구소는 근골격계 직업병 공동연구단에서 이들을 만나고 조직, 견인하였다.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 투쟁은 '일하면 아픈 게 당연한 것', '나이 들면 아픈 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았던 노동자에게, 근골격계질환이 일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직업병이라는 것, 산업재해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더불어 나이, 키, 몸무게, 취미생활 등 개인적 요인이나 중량물 취급, 불안정한 작업 자세, 반복 작업 등 개별적(인간공학적) 작업요인뿐 아니라 노동강도, 노동조건, 노동시간, 직무스트레스 등과 같은 집단적 작업요인이 질환의 원인임을 깨닫게 한 투쟁이었다.

더불어 노동자들은 현장 조직화와 현장 개선의 소중한 경험을 함께 만들게 되었다. 당시 집단 요양의 목표를 단순히 요양 승인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요양자만이 아니라 현장 조합원 전체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현장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전국적으로 확대된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은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이하 유해요인조사)라는 세계 최초의 예방제도를 끌어냈고, 2003년 하반기에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보건조치), 산업보건규칙 제9장을 신설함으로써 제도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유해요인조사의 빠른 법제화 이면에는,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이 실질적인 '구조조정 저지,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으로 더는 확대하지 못하도록, (자본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생산성과 인력 문제를 건드리지 못 하게 하는 수단으로써 발 빠르게 제도화를 활용한 자본의 대응이 있었다.

사측의 탄압과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산재 승인 이후의 문제(인원 보충, 집단교섭 등)까지 해결해야 하는 노동조합의 부담스러운 현실도 함께 존재했다. 그랬기에 유해요인조사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다른 제도와 비교했을 때 처음부터 노동조합의 참여와 개입을 보장하고 있으나, 전체 업종으로의 적용 확대를 막기 위한 '노동부 11개 근골격계 부담작업 고시'가 포함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a

여전히 만연한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고 일터를 바꾸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갑을오토텍(현 케이비오토텍) 위험성평가 조합원 토론모습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제대로 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위한 원칙

2004년 최초로 정기 유해요인조사가 시작되었다. 금속노조를 포함한 많은 제조업 현장에서 연구소에 유해요인조사 시행을 요청했다. 하지만 연구소는 제대로 된 유해요인조사가 되기 위해서 1) 노동조합이 주도하고 중심이 되는 조사사업 2) 유해요인조사 관련 조합원 교육 시간 보장 3) 유해요인 조사 주체는 노동조합이 선정한 조합원(실천단 또는 실행위원)이며, 이들의 조사 참여와 활동 시간 보장 4) 집단적인 작업요인인 노동강도 평가 포함 5) 확인된 요인에 대한 작업환경개선 추진 등 기본적인 원칙을 제안했다.

연구소가 함께한 대표적인 현장인 두원정공 노동조합은 IMF 이후 강화된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해 작업장 라인 개선, 인력충원, 정기적인 실천단 활동 보장 등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냈으며, 이후 조합원과 함께 민주노조를 굳건히 다지는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정기 유해요인조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 전국 차원의 현장 교육사업을 배치하여 유해요인조사의 의미와 목표 마련, 노동조합의 원칙 선정, 노동조합의 준비 등을 제안했다. 더불어 여러 상황과 조건으로 인해 현장 내에서 준비가 힘든 사업장의 경우, 지역 공동조사단 구성을 통한 공동 조사 추진과 공동 대응을 제안하였다.

대표적인 지역이 마산·창원과 대전·충청으로, 연구소도 지역조사단으로 함께 활동하였다. 2007년의 포항 공동조사단 이후에도 지역 공동조사단은 노동자 스스로 현장의 문제를 확인하고, 단위사업장을 넘어 지역 노동 주체들의 공동의 힘으로 노동강도를 완화하고자 실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형식적인 유해요인조사를 넘어서기 위한 대응과 모색

연구소는 3차 정기 유해요인조사 기간인 2010년부터, 이전 유해요인조사에서 도출한 개선과제가 얼마나 이행되었는지, 조합원은 만족하고 있는지, 개선하지 못한 공정이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확인하고 진단한 후, 이번 정기조사의 목표를 설정하여 목표에 맞는 조사와 개선대책을 마련하여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제안했다.

하지만 금속 등 제조업 사업장에서 정기 유해요인조사가 거듭될수록, 초기 노동자들이 가졌던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의 의미가 상실된 채 점차 관행적 제도로 퇴색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고 2016년 유해요인조사의 투쟁역량 강화와 공동 대응 대오를 구축하기 위해, 2015년 전국의 노동안전보건단체와 금속노조가 함께 '2016년 근골유해요인조사 제대로 하기 TFT'(이하 TFT) 를 구성하였다. 총 11차례 TFT 회의를 진행하면서 근골격계 집단요양 투쟁, 산재보험 개혁 투쟁을 추진했고, 금속노조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실태조사를 함께 진행하였다.

더불어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지침서와 현장 기획 선전물을 제작하여 현장에 배포하였다. 하지만 파악한 실태를 넘어서기 위한 2016년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공동사업은 연구소나 지부와 지회 등 참여 주체들의 상황과 현안에 밀려 제대로 시도할 수 없게 되었고, 의미 있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2016년, TFT를 통한 공동 대응 활동이 추진되지 못했으나, 연구소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두원정공, 충남지부 갑을오토텍, 대전 충북지부 대한이연 세 지회에서 유해요인조사 및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게 하는 모범사례를 만들고자 했다. 지부와 지회의 노사관계로 인해 공동 대응을 추진하기 어려웠고, 다른 투쟁 현안으로 인해 제대로 실행할 수 없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연구소 내 현장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기획과 시스템 구축 및 역량 강화가 필요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상임활동가 역량 강화 및 현장 노동자의 쉬운 진행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와 위험성평가 매뉴얼을 기획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19년,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매뉴얼과 현장 조사 시트를 완성하여 발간했다.

앞으로의 과제

제조업 사업장 중심으로 진행해왔던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는 점차 학습지노조, 발전산업노조, 학교 급식실 현장으로 확대되었다. 연구소도 금속제조업 사업장 이외의 다른 업종과 현장으로 유해요인조사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2019년엔 연구소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에서, 연구소가 발간한 매뉴얼을 활용하여 도드람푸드 근골격계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2020년에는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 노동자들과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했다.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단체급식 조리실 노동환경 실태조사(2021), 경기 이천시 학교 급식실 연구조사(2022), 건설 본층, 타워크레인분과, 형틀, 배선전기 노동자 노동강도 평가(2019~2022) 등 노동강도 평가 사업도 노동조합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여전히 일터에서는 근골격계질환이 가장 만연하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는 여전히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 및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필요성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의미한 기제이다. 노동자의 집단적인 건강권 문제와 원인을 해결하는 방안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 많은 현장과 업종에서 노동자가 주체로 진행하는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와 실질적 현장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제대로 유해요인조사를 하는 것과 더불어, 연구소는 최근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의 실현과 안착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를 안착화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한 정책 제언을 준비 중이다.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의 몸에 맞도록 현장을 바꾸고 노동강도를 개선하는 데 노동자 스스로 주체가 되는 직업병 개선 활동을 함께 해나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이숙견님이 작성하였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0-11월호 합본호에도 실립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근골격계질환
댓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2. 2 "어버이날 오지 말라고 해야..." 삼중고 시달리는 농민
  3. 3 오스트리아 현지인 집에 갔는데... 엄청난 걸 봤습니다
  4. 4 "김건희 특검하면, 반나절 만에 다 까발려질 것"
  5. 5 '아디다스 신발 2700원'?... 이거 사기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