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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장관님, '사법의 오류'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주장] 사형제 유지와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은 신중해야

등록 2023.11.08 15:22수정 2023.11.0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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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0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법무부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사형제도라든가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0명을 연쇄살인하고 수감된 상태에서 전혀 반성 안 하는 그런 사람들이 10~20년 뒤에 나와서 다시 활보하는 법치국가는 전 세계에 지금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일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비경제부처 심사에 출석해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사형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위와 같이 답했다.

법무부 역시 지난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하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흉악 범죄자에 대한 완전한 사회적 격리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물론, 흉악범죄에 대한 법 집행이 엄중하고 무거워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사형제'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구형과 선고, 집행을 담당하는 법무부와 재판부의 신중함과 엄중함 또한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사형' 

사형은 잘못된 수사나 판결로 인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해도 다른 징역형 선고와는 다르게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될 수 없는 극단적 처벌이다. 그래서 사형을 구형하는 검찰이나 사형을 선고하는 법원, 집행하는 법무부 모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형집행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법의 집행이 잘못되어 무죄를 선고했지만 회복될 기회를 가지지 못한 피해자가 적지 않다.

1948년 8월 15일부터 1993년 7월 27일까지 사형이 확정된 법무부 사형수(이후 감형된 사형수 포함)는 모두 706명이다. 이 중 진실화해위원회 등에서 조사하고, 법원의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사형수는 조봉암, 오경무, 이수근, 김규남, 전영관, 김용득, 전영봉, 최철교, 심문규, 박기래, 이철, 강종헌, 김정인, 김상회, 진항식과 소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여정남,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원, 이수병 등 모두 23명이다(물론 위 피해자 중 다행히 추후 감형을 통해 사형집행을 면한 이도 있다. 또한 이보다 더 많은 무죄 사형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위의 내용처럼 사형의 구형, 선고, 집행이 잘못된 사례는 사형 선고가 확정된 전체 인원의 약 3% 수준이다. 이것을 적은 숫자라 할 수 있는가? 3%의 피해자는 적어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회복될 수 없는 피해를 당한 당사자이다. 적어도 3%의 확률로 사법의 결정에 커다란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주장하는 것에도 커다란 위험이 있다. 적지 않은 법률가들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해 인권침해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위 사형 확정 피해자 중 박기래, 이철, 강종헌 등은 다행히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물론 생명을 잃지는 않았으나 이 역시 사법기관과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안타까운 피해를 보았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헌법상 인간 존엄의 가치를 침해하고 형사정책적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형벌 제도'라며 비판했고, 법원행정처 역시 지난 8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제에 비해 기본권 침해가 덜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사법부의 뒤늦은 사과, 그러나 

사법부는 잘못된 사형선고 등과 집행으로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여러 번 사과를 표명한 바 있다.  

먼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조병규)는 지난 10월 30일 고 오경무씨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당시 시대적 상황 하에서 가족의 정에 이끌려 한 행위로 (인해) 가족 전부에게 가혹한 결과가 발생하게 된 점에 대해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라고 사과했다.

또한 소위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받았던 윤성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박정제) 역시 재심 선고 공판에서 '과거 수사 기관의 부실행위로 잘못된 판결이 내려졌다'며 '오랜 기간 옥고를 겪으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께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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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대의 사형 집행 기록 ⓒ 변상철

 
그러나 피해 유족은 사법부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피해자가 되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지난 10월 30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형수 피해자 고 오경무씨의 동생 오정심씨는 선고 직후 "너무나 아까운 저의 오빠가 형벌에 의해 (사형당했다).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지금은 돌아가시고 아무도 안 계신다. 나 혼자 받아들이기에 너무도 서럽고 벅차다"는 말을 하며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람은 완전할 수 없다. 사건을 수사하고, 법을 집행, 구형하고,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 집행하며 사형장에서 레버나 버튼을 누르는 것 역시 사람이다.

과거 사법의 잘못을 현재의 사법부가 사죄하는 것은 사법의 역사성과 법의 안정성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잘못된 판결로 인한 오류를 다시 시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인간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모든 것에는 신과 같은 완벽함이 존재할 수 없기에, 오류의 실체를 인정하고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남겨둬야 한다. 

무조건적 사형 집행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분명히 존재하는 사법의 오류'를 애써 외면하는 책임 방기식 발상이다. 이중간첩으로 처벌받은 고 심문씨의 재심 재판부가 고백했던 마지막 문구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195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걸어온 격동의 현대사 과정에서 시대적 갈등과 분단의 아픔을 오롯이 개인사(個人史)로 담아 이 사건 공소제기에까지 이른 피고인에게, 비록 그 시기(時期)가 우리의 사법체계(司法體系)가 완전히 정착, 성숙되기 전이었다고 하더라도 인권보장과 법치주의 수호라는 사법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한 채 참절(慘絶)의 개인적 희생을 강요한 결과에 대하여, 현재에 있어 같은 사법작용(司法作用)에 관여하는 재판부로서 참으로 죄송함과 안타까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뒤늦게나마 피고인이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일 수 있음을 선언하는 이 재심판결이 유명을 달리 한 피고인과 그로 인해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온 유족들의 명예를 일부라도 회복시키고 그를 통하여 고인의 영면과 유족들의 위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서울중앙지법 제21형사부 2011재고합14 심문규 재심 판결문 중
덧붙이는 글 글쓴이 변상철 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 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 #FIGHTINGCH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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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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