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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작은 도서관 예산 삭감-폐관 논란....주민이 진짜 원하는 것은?

등록 2023.11.13 15:40수정 2023.11.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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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자료사진). ⓒ unsplash

 
나는 서울의 한 구립 도서관에서 독서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 동아리 외에도 지역 맘카페에서 회원을 모아 개인적으로도 독서 모임을 하고 있기도 하다.


독서 동아리에 나오는 분들은 대개 도서관을 부지런히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임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곳곳의 도서관 소식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그중 한 회원이 모임 때마다 종종 자기가 활동하는 다른 독서 동아리 이야기를 했다. 그 동아리는 작은 도서관 소속 독서 동아리인데, 특히 도서관에서 책 구입비를 지원해 줘서 좋다고 했다. 그래서 모임 때 주제로 삼았던 책을 한 권씩 받을 수 있다고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도서관 곳곳 줄어드는 예산

아마 인원수가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같았는데, 그는 그러면서 나한테도 그 모임에 나오라고 넌지시 권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만났을 때 그가 말하기를, 작년까지 도서관에서 지원해 주던 책 구입비가 올 2월부터 끊겼다고 했다. '예산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웃으면서 더는 책을 못 받는다고 별 일 아닌 듯 말했지만, 나는 뭔가 편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동아리 모임과 관련해 도서관으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운영하는 구립 도서관 소속 독서 동아리도 도서관으로부터 활동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3월, 그 금액이 각 동아리당 10만원 가량씩 다 줄어들게 되었다는 통보를 들었다. 도서관 측 또한 '예산이 줄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책 구입비가 끊겼다는 이야기를 한 회원은 작은 도서관의 독서 동아리이고, 나는 구립 도서관 독서 동아리라 각기 소속은 다르지만, 우리 둘 다 같은 일을 겪은 셈이었다. '예산 부족' 말이다.

과연 우리 동네 도서관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게 과연 우리 동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달, 종종 방문하는 온라인 학부모 사이트에 서울 강남구 대치도서관이 임대차 계약 만료를 이유로 11월 말 폐관한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황당하다는 반응들이 줄을 이었다. 한 댓글에서는 '강남구는 학령기 학생 수가 전국에서 제일 많은 지역일 텐데 아이들을 위한 문화공간, 프로그램 등이 너무 없다'고 한탄하며 '이런 환경에서, 그나마 있던 도서관마저 폐쇄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다른 이는 댓글로 '복잡한 학원 거리에 운동시설이나 놀이기구 대신 도서관을 거주지 근처에 많이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렇게 폐관할 거라면 얼마 전에 리모델링은 왜 한 거냐'라는 날 선 지적도 있었다. 그 가운데 이 사건을 서울시의 도서관 정책 방향과 관련지어 보는 시각도 있었다. 서울시가 작은 도서관 예산을 없앤다는 기사가 올해 초에 있었는데, 대치도서관의 폐관 결정이 그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는 거였다. 또 다른 댓글에서도 역시 최근 지역 기반 공공도서관 예산을 축소하거나 폐쇄하는 분위기인 듯하다며 서울 마포구 역시 공공 도서관 폐쇄 문제로 시끄럽다고 전했다.

알고보니 전국적인 문제... 이게 다 별개의 일일까

다른 도서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번 찾아보았다. 과연 위의 댓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올해 초 마포구는 작은 도서관 예산을 전액 삭감해 논란에 휩싸였었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은 비단 서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경기 고양시도 작은 도서관에 대한 지원을 1/8로 줄였단다. 이 때문에 격주이던 도서관 휴관일이 매주로 늘어났다. 또 최근에는 대화마을 공립 작은 도서관 5개를 2024년 1월 폐관할 예정이라고 주민들에게 통보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러한 사태의 흐름에 대해 해당 지역 맘카페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불꽃놀이와 같은 행사보다 도서관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도서관에 대한 지원은 줄이면서 독서대전과 같은 홍보용 행사는 웬 말이냐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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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에서 '도서관 예산'을 검색하면 나오는 글들. 지역 카페를 중심으로 우려가 번지고 있다. ⓒ 화면

 
경기도 반대쪽인 용인시 역시 사립공공도서관인 느티나무 도서관에 대한 도비 지원을 삭감하여 주민들의 아쉬움을 샀다. 서울 경기 외에 대구시도 올해 작은 도서관에 대한 예산 전액 삭감을 감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위에 언급된 강남구, 마포구, 고양시, 용인시, 대구시의 단체장들은 모두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이게 우연일까. 인과를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건 위험한 일이겠지만, 현 정부의 도서관 정책 방향이 각 시구의 이런 결정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 도서관에 대한 예산이 줄어드는 대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자체행정 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4월 강남구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스트레스 프리존'과 킥보드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는 공간 등 11개 시설을 설치하며 약 7억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시설물에 대한 주민 반응은 엇갈리는 실정이다. 내가 방문하는 온라인 학부모 커뮤니티에서는 이게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며 이런 것보다는 도서관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언뜻 생각하기에 입시 공부에만 관심이 높을 것 같은 학부모와 강남구 주민들조차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도서관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쪽은 오히려 행정 당국이었다.

도서관 지원을 줄일 때 흔히 내세우는 근거는 '독서 인구의 감소'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이탈이 심해 보인다. 통계청이 운영하는 'e-나라지표'에 따르면, 2004년 20-29세의 독서 인구 비율이 82.1%이던 것이 2021년에는 57.7%로 거의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그러나 오히려 이럴 때야말로 젊은 층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만 하고 도서관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변명으로 삼지 말고 도서관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젊은 세대가 종이책을 지루하게 여긴다면 전자책, 오디오북, 영상 등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활용해서 그들이 책과 친해 질 기회를 더 열심히 궁리해야 하는 게 옳은 방향일 것이다.

이미 주민들은 행동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도서관을 드나들며 다른 여러 독서 동아리의 활동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이러한 동아리들의 활동은 기대 이상이었다. 독서 토론에서부터 독후 연극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며 도서관과 주민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이러한 활동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 주민들이 스스로 하는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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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치도서관 공지사항에 올라온 공지글. ⓒ 화면갈무리

 
다시 앞서 말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대치도서관은 살아남았다. 대치도서관을 구한 것도 이러한 주민들의 열성이었다. 주민들의 항의와 민원으로 결국 강남구청은 대치도서관 폐관 결정을 철회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도서관 지원에 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을 듯하다.

고리타분하지만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 독서는 생각을 키우는 최선이자 최고의 방식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다.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미래는 어찌될까? 상상만 해도 암울할 따름이다. 지금이라도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당국에서 이 시점에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주민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좀 더 잘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도서관 #도서관지원중단 #도서관예산삭감 #대치도서관 #독서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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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 진심을 다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내 몸과 정신을 적시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이런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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