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마저 유머로 들리게 하는, 시 쓰기의 비밀

일곱번째 정담북클럽- 강형철 시인의 <가장 가벼운 웃음>

등록 2023.11.17 15:56수정 2023.11.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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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다른 독서회들과 활동 내용을 공유하고자 2022년 결성한 군산북클럽네트워크는 2023년 하반기부터 군산대학교 국립대학육성사업 지원을 받아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정담북클럽의 '오픈북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16주간 이어지는 정담북클럽에는 독서회 회원이 아니어도, 해당 책을 읽지 않았어도 누구나 개별적으로 참석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독서회 차원으로 참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일곱 번째 정담북클럽의 진행을 맡은 산들독서회는 산들도서관에서 운영한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모임이다. 코로나19 기간에 개관 이후, 군산시 남쪽의 옥구읍에 위치한 산들도서관은 인근의 옥서면 주민들까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독서와 문화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책을 읽다가 고개만 들어도 눈앞에 탁 트인 논밭이 펼쳐지는 풍광은 시내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발걸음까지 이끌고 있다. 산들독서회는 산들도서관의 대표적인 자발적인 주민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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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북클럽 강형철 시인과 "가장 가벼운 웃음"을 읽다. ⓒ 김규영

  
산들독서회는 평소 수요일 오전 10시에 모임을 연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저녁에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을 고려하여 산들이 진행하는 정담북클럽은 모두 오전 시간에 배치했다. 흐릿한 11월의 오전은 시를 이야기하기 좋았으니, 산들은 올해 시선집 "가장 가벼운 웃음"(강형철, 2023, 봄날의산책)을 선보인 강형철 시인을 모시고 시는 무엇이고, 어떻게 쓰는 것인지를 물어 보았다.


생활 속에서 길어올리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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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북클럽 웹자보 ⓒ 김규영

 
산들독서회의 진행을 맡은 강은혜님이 '돌아온 시인'이라고 정겹게 소개한대로.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살아왔던 강형철 시인은 숭의여대 문창과 교수직을 정년으로 마친 3년 전부터 고향인 군산 시민의 생활로 돌아왔다.

그는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는지, 어떻게 시를 공부했는지, 당시 상황은 어떠했는지, 자분자분 자신의 인생역정을 풀어냈다. 그에게 시는 먼 곳에서 느닷없이 날아와 꽂히는 영감이 아니다. 그의 시는 생활 속에서 자신의 마음에 닿는 것으로부터 태어난다.

은행원이 되어 고된 농사로 지친 부모의 짐을 덜어줄 줄 알았던 장남이 난데없이 시인이 되겠다며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때, 시인의 아버지는 아들이 방 안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중얼중얼 욕을 하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강 시인이 꼼짝없이 자기 방에 갇혀 듣고 있던 욕을 참기 힘들어 그대로 받아 적기 시작한 것이 '아버지의 사랑말씀'이라는 연작시의 시작이다.

강 시인은 아버지의 욕을 받아쓰다 보니, 그 안에 가락과 리듬이 있고, 유머가 있는 것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속으로 원망하면서 듣고 있었던 아버지의 말씀이 이해되고 아버지 본인을 향한 이해가 생기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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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북클럽 '아버지의 사랑말씀 1' 의 일부: ("해망동일기" 강형철) ⓒ 김규영

   
개인적인 차원의 글을 담은 일기가 동시대 사람들에게도 공유되는 공적 언어가 되었을 때 이걸 '문학'이라고 부른다고 시인은 말했다. 판소리 적벽가 중 '군사설움'이라는 대목이 있다. 전쟁터에 끌려온 병사들이 넋두리를 늘어놓는 눈물겨운 사설이다. 그중에 눈물을 그치지 않는 병사가 하나 있어 사연을 들어보니, 찬장에 숨겨둔 누룽지가 이제 비를 맞으니 먹을 수 없게 되어 서럽다고 하더란다.

시인은 우리가 쓰는 시가 감정소비에 그치는 '누룽지'인 것은 아닌지, 그 가능성을 늘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인 자신도 치열했던 1980년대에 민중, 역사에 대해 눈을 뜨고,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조금씩 인식의 한계가 확장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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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북클럽 강형철 시인의 시집들과 참고도서들 ⓒ 김규영

 
챙겨온 책들을 보여주기도 전에 시인의 입에서는 공부하면 좋을 여러 책과 저자들의 이름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독서회 책사세 회원 분은 자신도 몇 년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간 수박 겉핥기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시인의 말씀에 감동받았다며 마음에서 우러나온 강연에 감사를 표했다.


'쉽게 잘 읽히는 강 시인의 시와 달리 읽기 어려운 시는 왜 어려운가' 하는 질문과 시선집의 제목 '웃음'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한 작가의 답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시를 자세히 읽으며 나눌 시간이 없어 참여자들의 아쉬움을 남겼다.

자리를 정리한 후에도 몇몇 참여자들은 시와 문학에 대한 강의를 추가로 요청했다. 책읽기와 책토론에서 그치지 않고 글을 쓰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세상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야 한다는 시인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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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북클럽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강형철 시인을 모시고 산들의 진행하는 정담북클럽의 모습 ⓒ 김규영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무지개독서회 대표이며, 인문도시센터와 함께 정담북클럽을 공동주관하는 이야기그릇담의 대표입니다. 군산 해망로에 위치한 인문학창고 정담은 2018년 군산대학교 인문산학협력센터와 LINC+사업단, 그리고 군산문화협동조합 로컬아이가 함께 위탁운영 중인 공간입니다.
#정담북클럽 #강형철 #산들 #이야기그릇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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