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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검찰 판단... 법정최고 벌금 받았던 장애인 결국 '무죄'

[단독] 약식기소 전동휠체어 충돌 중증장애인, 정식재판서 혐의 벗어... 법원 "주의의무 위반 단정 어려워"

등록 2023.11.22 12:22수정 2023.11.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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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 복건우

 
전동휠체어로 보행자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을 받은 중증장애인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을 유죄로 보고 정식재판도 없이 약식기소한 검찰의 판단을 법원이 뒤집은 것이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형사2단독(판사 유혜주)은 22일 오전 선고공판에서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중증장애인 A(68)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 후 2년여 만에 나온 1심 판결이다. 

이날 재판부는 "도로교통법 제2조 17호는 전동휠체어를 (차마(車馬)에서) 제외하고 있고 이러한 취지는 휠체어 없이 보행이 힘든 장애인들의 보행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피고인이 다른 보행자와의 관계에서 상대가 정상적으로 보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아야 할 주의의무를 넘어서 추가적인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과실치상죄에서 정하는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A씨)을 무죄로 판단하려면 이에 선행해 피고인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해 위와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며 "CCTV 영상에 의하면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 불로 바뀌고 피고인과 피해자(B씨)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피해자는 피고인의 보행 보조용 의자차(전동휠체어) 우측에 위치한 것으로 확인된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전방으로 앞서 진행할 것을 (피고인은) 예상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횡단보도 출발 지점에서 일직선이 아닌 왼쪽 대각선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피고인의 전동휠체어보다 빠른 속도로 횡단보도를 건넜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앞쪽에 위치하게 되면서 전동휠체어와 충격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충돌 위험을 인지하고 제동할 만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검찰, 법정최고형 약식기소·구형... A씨 측 "법원 판결 환영, 보행권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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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22일 오전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앞에서 '휠체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장애인이 범죄자가 될 수는 없다. 휠체어 충돌 사건 500만 원에 대한 정식재판 선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복건우

 
앞서 검찰은 A씨를 법정최고형(벌금 500만 원)으로 약식기소했으나 A씨는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요청했다. 이후 진행된 정식재판에서도 검찰은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벌금 500만 원은 과실치상 범죄에 처할 수 있는 최고형(형법 제266조 제1항)이다. 

약식기소는 사건을 벌금형의 유죄로 판단한 검사가 법원에 정식재판 없이 바로 판결해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 통상 법원은 검사의 약식기소대로 판결(약식명령)하는데, 피고인은 이에 불복해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A씨를 지원하는 전정환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판결 직후 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전동휠체어 보행만으로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장애인들은 휠체어 사용을 중단해야 하고 이들의 일상생활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법원의 무죄 판단을 환영한다. 이 사건을 디딤돌로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고 장애인 보행권이 보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을 방청한 A씨의 딸은 "긴 시간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오늘 무죄 판결을 받게 되어서 기쁘다. 이 판결을 토대로 다른 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A씨는 지난 2008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아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어려운 뇌병변장애인(기존 5급)이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10월 14일 오전 9시 30분께 경기 군포의 한 사거리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우측에서 같은 방향으로 걷던 비장애인 B(77)씨와 부딪혔다. B씨는 휠체어 바퀴에 발을 밟혀 전치 9주의 골절상을 입었다며 A씨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동휠체어 #안양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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