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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을 위로 받는 특별한 공간

마치다 소노코의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과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등록 2023.11.27 08:57수정 2023.12.0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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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노인처럼 등 굽은 11월이 또 하나의 가을의 전설을 남기고 낙엽 따라 나풀나풀 세월 속으로 침잠해갑니다. 내 기억 속의 11월은 늘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늦은 오후의 처마 밑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스스 추워지는 날씨에 사람들은 총총히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가고, 어둠이 내린 골목에는 흐린 조명을 내건 편의점만 인적이 끈긴 골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늘 지나다니는 골목인데도 편의점은 선뜻 들어가기에는 좀 낯선 공간입니다. 그곳은 학생들이 늦은 귀갓길에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그런 공간으로 인식되어 집니다. 그렇다고 편의점을 전혀 이용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그곳에 가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말없이 만원에 4개인 캔맥주를 챙겨서 나올 수 있는 편의성 때문에 종종 이용하곤 했습니다.


우리 동네 편의점처럼 모든 편의점이 시든 꽃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이 시대를 근근이 버텨내는 줄 알았는데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과 <불편한 편의점>을 읽은 후로는 달라졌습니다. 편의점이 마치 쇠락해 가는 도시의 뒷골목과 적막한 소도읍을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네 사랑방 같은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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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표지 ⓒ 모모출판사

 
먼저 읽은 건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입니다. 제목이 재밌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일본 기타큐슈의 조용한 소도읍 모지항에 자리한 텐더니스 편의점은 언제나 시끌벅적합니다. 꽃미남 점장이 손님들에게 베푸는 섬세한 서비스와 주민들에게 나누는 친절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일본의 편의점은 그 지역의 구심체가 되고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합니다. 멋있고 친절한 점장에게 반한 부녀회원들은 날마다 편의점에 나와 봉사활동을 하고 함께 단체여행도 다닙니다. 적적하고 밋밋한 항구마을에서 한없이 무료하고 시들시들한 주민들에게 편의점이 삶의 활력을 찾아 줍니다.

누군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며 24시간 문을 열고 불을 밝히는 편의점은 '언제든 찾아오세요. 항상 여기에 있을 테니까요'라며 오늘도 손님을 맞으며 행복을 나눕니다.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이웃끼리의 깊고 따뜻한 정서적 유대감과 타인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상냥한 연대감입니다.

각 장별로 다른 테마와 인물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편의점이라는 장소의 장점을 살려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하지만 심각하지는 않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홀해지기 쉬운 꿈과 가족애, 우정, 사랑 등 소중한 것들을 되새기게 합니다.  


불편하지만 끌리는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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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표지 ⓒ 나무옆의자출판사

 
청파동 골목 모퉁이에 자리 잡은 <불편한 편의점>은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보다 2년 먼저 오픈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후미진 뒷골목에서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서울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던 독고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독특한 개성과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해 서로 티격태격하며 별난 관계를 형성해갑니다. 오해와 대립, 충돌과 반전, 이해와 공감은 자주 폭소를 자아내고 어느 순간 울컥 눈시울이 붉어지게 합니다. 그렇게 골목길의 작은 편의점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가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 웃음을 나누는 특별한 공간이 됩니다.

'24시간 내내 불 켜진 그곳이 방범초소인 양 내 삶을 호위하길 원했다'는 편의점 주인 염 여사의 말처럼 골목길의 작은 편의점은 고난과 단절을 넘어 주인과 점원, 손님 모두에게 희망의 초소가 됩니다. 여덟 개로 이루어진 에피소드마다 중심인물이 바뀌는 서술 방식과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단번에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2편으로 이어지는 불편한 편의점의 중심인물은 1편의 독고를 닮은 근배가 중심이 됩니다.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고난의 계절을 통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근배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편의점을 찾는 손님과 동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입니다.

취업에 계속 낙방하는 취준생 동료 소진, 코로나 거리두기로 장사가 안돼 매일 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혼술을 하며 전전긍긍하는 정육식당 최 사장, 원격 수업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열악한 집안 환경과 엄마 아빠의 잦은 다툼에 상처받는 고등학생 민규, 근배가 이들에게 보이는 관심은 호의를 지닌 진심으로 연결되어 상대에게 전달됩니다. 심지어 그는 건달기와 허세로 가득한 사장 민식의 마음까지 움직입니다.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재난은 그들에게 시련과 고민을 안겼고, 새로운 모색을 요구했으며, 제쳐두었던 일들을 돌아보게 했고, 진짜 삶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아픔을 나누며 변화하고, 일어서고 꿈을 꿉니다.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다시 함께 웃기 위해 애씁니다.

편의점이 우리에게 전하는 위로

불편한데도 자꾸 끌리는 이상한 편의점 이야기는 코로나로 인해 여전히 우울하고 불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로 다정한 위로를 건넵니다. 구성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관계를 키워드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모두 타인을 가만히 살피고 옆에 머물러주는 배려심, 조용한 응원 같은 긍정적인 교류의 중요성을 전합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삶은 관계이자 소통이며, 행복은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다는 한결같은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국세통계포털 통계자료실에 따르면 2022년 9월말 기준 전국의 편의점 개수는 약 5만 1,3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일본은 약 5만 8,000여 개라고 하니 밀집도로 따지면 우리보다 적은 편입니다. 팬데믹으로 줄었던 점포가 증가하는 추세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최근 동네마다 늘어나는 대형 마트와 창고형 물류센터에 밀려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전국의 곳곳에 점점이 박혀 일상에 지친 서민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쉼터가 되고, 학생들이 수다를 떨며 간식거리를 즐길 수 있는 편의점이 꿋꿋이 제자리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아늑함과 친근함으로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있길 소망해 봅니다.

불편한 편의점 (40만부 기념 벚꽃 에디션)

김호연 (지은이),
나무옆의자, 2021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마치다 소노코 (지은이), 황국영 (옮긴이),
모모, 2023


#편의점 #베스트셀러 #김호연 #마치다소노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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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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