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는 장애를 겪으며 사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자립과 의존, 이분법적 시각을 벗어나자

등록 2023.11.27 10:50수정 2023.11.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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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난 3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남대문경찰서가 지난 16일 업무방해·기차교통방해·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청구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이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존재하기가 아니라 소유하기를 부추기는 세상 앞에서, 잘 산다는 것(Well-Being)이 소유만을 기준으로 삼을 때 장애를 겪으며 사는 이야기를 숙고하고, 공유하는 자리는 빈약하다.

며칠 전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필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공공기관의 장애인편의시설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로 숙고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았다. 오히려 죄가 되고, 죄인이 되는 뉴스였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다. 필자에게는 이렇게 들린다.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를 겪으며 살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은 누구나 감옥에 구속될 위험이 있다.'

파울 페르하에허(Paul Verhaeghe)는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에서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능력주의는 우리를 괴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경쟁력이 자본이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 더 많은 돈, 더 많은 편리함, 더 매력적인 몸,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립이 행복이라는 신자유주의 서사가 그렇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능력주의가 우리 삶을 지배할 때 장애를 겪는 사람의 신체적 취약성과 삶의 의존성은 환대받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신체적으로 취약하며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미완성의 불완전한 인간이다.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의 젖이 부족해서 동네 아주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다. 또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갑자기 급한 일이 있을 때면, 나와 여동생을 이웃집에 맡겼고 우리는 그 집에서 먹고 잤다.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이 내 책가방을 들고 다녔고, 어떤 친구는 내 도시락도 챙겨 왔다.

어느새 중년이 된 지금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친구들은 돌아가며 내 등 뒤에서 휠체어를 민다. 혹시나 짐이 될까 봐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친구들이 있어 유적지도 가고 산에도 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아플 때, 이웃에 사는 지인과 함께 병원에 가 의사의 진단과 처방전을 받는다. 친구와 지인의 손길이 있어 내 삶은 왜소해지지 않았고, 고립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삶의 지평은 넓어졌다. 상호의존은 내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내 삶의 조건이다.


야스토미 아유무(Yasutomi, Ayumu)는 자신의 저서 <단단한 삶>에서 자립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의존하는 대상이 늘어날 때 사람은 더욱 자립한다."

자립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사람들의 상호 의존적인 신체적‧정신적 특성이 자립과 대립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립과 의존을 이분법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 결과 인간의 신체적 특징, 즉 취약성과 의존성은 낙인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3조에는 자립생활 훈련이 명시되어 있다. 학부모도 학생들의 일상생활 자립 교육을 요구한다. 특수학교에서도 장애를 겪는 학생들의 자립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엔 의존하는 삶을 약함으로 보는, 그 약함에 대한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약함이다. 루소의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늙는 것에 무력하고, 질병을 경험하며 필멸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약함을 삶의 뿌리로 인정하면 육체적‧정신적 취약성을 드러내면서 장애를 겪으며 사는 삶, 상호의존하는 삶도 잘 사는 삶의 관점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특수교육은 학생들이 겪는 '장애'에 초점을 맞추면서 개인의 신체적 기능 향상, 사회 적응 훈련, 행동의 변화, 단순 반복훈련을 통한 직업 교육 등에 집중해왔다. 장애를 겪는 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도 이러한 의료적 관점에 기반해서 자녀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언어치료, 놀이치료, 심리치료, 작업치료(감각통합), 재활치료, 음악치료……. 지금까지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다 받으러 다니며 아이의 정신적‧육체적 기능이 좋아지기를 바랐다. 말도 하고, 마음이 안정돼 문제 행동도 사라지고, 정교한 손놀림을 할 수 있도록 소근육의 기능도 향상되고, 대근육을 사용하는 운동 능력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상호 소통이 가능한 아이로 성장하길 바랐다. 비록 누워만 있다 오고, 짜증만 부리다 오고, 잠을 자다 오는 한이 있어도 치료실만은 빠지지 않고 부지런히 다니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류승연, 2018: 50)."

 
이제 교육은 잘 사는 삶에 대한 획일화된 관점에서 벗어날 때다. 교육이 삶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면, 장애를 겪으며 사는 이야기를 삭제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장애를 겪으며 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교육이 무력감에서 해방되는 길이고, 장애를 겪으며 사는 학생들을 존엄하게 대우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는 교육에서 장애를 겪는 학생들에게 치료서비스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신체적 취약성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을 지지한다는 주장은 더욱더 아니다. 단지, 삶의 뿌리를 이루는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취약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가 '신체적‧정신적 취약성'을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혐오하거나 거부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낙인의 연결고리가 된다. 우리가 상호의존하는 삶을 인정하지 않을 때 신체적, 정신적 낙인은 결국 우리 모두를 향하게 될 것이다. 장애를 겪으며 사는 이야기의 공유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 '인간 존엄성 구현을 위한 특수교육 방안'을 특수교육 관련자 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관심을 갖고 접근할 수 있도록 제목과 내용을 재구성하여 다시 쓴 글입니다.
#장애 #교육 #웰빙 #차별 #의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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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 교사이며,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탑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말을 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장애를 겪으며 사는 내 삶과 교육 현장을 연결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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