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아랍 "우리는 테러와 전쟁의 피해자다"

중동에 가해자는 없고 오직 피해자만 존재한다

등록 2023.11.28 10:43수정 2023.11.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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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평화를 말하는 자는 죽는다."

중동의 역사는 이 한마디의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야의 전문가인 성일광 고려대학교 중동·이슬람센터 교수가 방송에서 이 말을 하면서 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문장이기도 하다. 중동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1981년),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1995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분쟁을 다룬 자세한 내용은 중동의 역사와 종교를 전공한 학자들이 이미 방송과 신문에서 수없이 설명을 했기 때문에 기자는 그것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기자는 그동안 직접 대화를 나눠봤던 중동·아랍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사로 전달하고 싶다. 지금부터는 기자가 중동·아랍 지역의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들을 요약해서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 글을 이어나가 보겠다. 그곳에 사는 일반 시민들의 생각을 다루는 기사이기 때문에 그들이 소속된 국가의 정부가 갖고 있는 입장과는 다른 부분이 있음을 미리 밝히는 바다.

우선 등장인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겠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에 사는 종교적인 유대인 A씨, 이스라엘 시민권을 갖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아랍인 B씨,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에 살고 있는 시리아 국적의 아랍인 C씨, 요르단의 국적을 갖고 요르단 암만에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계 아랍인 D씨.

A씨는 30대의 전업 주부인 동시에 가끔 프리랜서 모델로도 활동하는 종교적인 유대교 신자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에 모로코 지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그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일으키는 테러 때문에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여러 번 일어났고 그래서 매우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의 SNS 계정으로 수많은 아랍인들이 댓글 테러를 하는 방식의 집단적인 린치를 가했고 그것은 자신에게 매우 충격적이고 무서운 일이었다고 밝혔다. "무슬림들의 주장과 언론 보도 때문에 외국인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괴롭히는 나쁜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A씨는 "하지만 테러의 피해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B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B씨는 이스라엘의 병원에서 일하는 이스라엘 국적의 30대 아랍인이다. 지난달 9일, 하마스의 공격 직후에 그녀와 연락이 닿았는데 "이스라엘은 지금 전쟁 중이다. 이 범죄자들(하마스 대원들)은 이스라엘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 아시아인 남자도 죽였다. 그리고 부상을 당한 아시아인 남자도 있었는데 우리가 그를 치료했다"고 밝혔다.

하마스 대원들의 공격이 비단 이스라엘의 유대인뿐만 아니라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자행되었음을 알린 것이다. 추가적으로 "그들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시아인들까지 공격하는 걸 보고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그들은 범죄자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동시에 이스라엘인이라는 정체성도 갖고 있는 B씨는 하마스의 테러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것에 분개했다.


한편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생각을 물어봤다. 우선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에 살고 있는 20대 아랍인 C씨의 이야기다. 기자가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공군의 공습으로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왔다. 이스라엘은 나의 삶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아마도 C씨가 말한 그 공습은 이란이 지원하는 시리아 민병대를 타격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실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들이 자행한 테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다소 민감한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에 대해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더 끔찍한 행동을 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답변했다.

다음은 요르단 국적을 갖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살고 있는 19세의 팔레스타인계 아랍인 학생 D씨다. 그녀는 "팔레스타인의 땅에서 이스라엘은 사라져야 한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빼앗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조부모님이 겪은 일에 대해 설명했다. D씨의 할아버지는 이스라엘이 일으킨 중동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팔레스타인을 떠났고 요르단에 잠시 정착했다가 레바논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가 레바논을 침공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결국 레바논을 떠나 다시 요르단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D씨의 외할머니는 이스라엘이 일으킨 중동전쟁으로 인해 이라크로 피신했다가 이라크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레바논으로 피신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고 그 바람에 결국 요르단으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중동·아랍 지역의 이스라엘인 그리고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아랍 국가의 아랍인과 대화하면서 발견한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중동에 평화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책임이 전적으로 상대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에 이런 갈등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는 피해자"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중동에서는 지금도 온갖 테러와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정작 가해자는 아무도 없다. 오직 피해자만 존재한다. 적어도 그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들은 전적으로 피해자이며, 상대는 우리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끔찍한 악당인 셈이다. 이런 기억을 가진 피해자들로 가득한 중동에서 평화를 외치는 것은 대단한 용기일 것이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하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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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역사문화학을 전공한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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