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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꿈은 뭐였어?" 엄마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

아침 마당을 보라고 딸에게 전화한 엄마... 왜인지 울컥해졌다

등록 2023.11.29 16:57수정 2023.11.3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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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화요일 오전 아홉 시쯤 전화가 걸려와 눈을 떴다. 엄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재빨리 받았다. TV를 틀어 지금 바로 '아침마당'을 켜 보라는 것. TV를 켜고 채널을 돌렸다.


여기엔 민병진 영화감독과 어린 아들이 손님으로 앉아 있었다. '꼬마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보인다. 엄마 왈, 영화감독 아들이 엄마를 잃고 시를 썼는데 그게 너무 슬프다는 내용이었다. 엄마와 통화를 할 쯤에는 이미 그 시가 지나간 터라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엄마는 생각나는 대로 시의 구절을 읊으며 감정이입을 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 아들의 시'가 나에게 전화를 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통화는 처음이라, "엄마 아침마당 안 보는데 어떻게 봤어?"라고 물었다. 그냥 우연히. 연속극이 아닌 어쩌다 보게 된 시사 교양 방송에 감동을 받은 엄마.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단어 '시'와 '영화감독'. 어색했을 법한데 엄마는 '시' '영화감독' 이란 어휘를 사용해 내게 전달해 주었다.

게다가 딸에게 '시'의 한 구절을 읊어주었다. '시'를 접해 본 적 없는, 평생 일밖에 모르던 엄마에게도 감성이란 게 있었던 걸까. 그저 놀라웠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벅차기도 하고.              

첫눈 온다고 들떠 전화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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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이 온다고 엄마가 전화를 해왔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지난번엔 늦은 밤 첫눈이 내린다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었다. 첫눈이 내린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여긴 눈이 안 오는데'하면서 엄마랑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는 소녀처럼 흩날리는 첫눈에도 들떠있었다. 그때의 엄마모습도 처음이었는데, 그래서 미안하고 고마웠다. 엄마도 서정적 감정이 있는 사람인 걸. 알아주지 못해 무시하고 외면해서 미안했고,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살아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TV를 보다가 어린 소년의  '시'를 듣고 딸에게 전화를 주다니, 엄마에게도 혹시 꿈이란 게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꿈은 뭐였어?"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 가족 위해 일하는 엄마 말고. 엄마가 많이 배웠다면 하고 싶었던 것. '꿈' 이 무언지 모를까 길게 설명하면서. 아무개 엄마는 가수가 꿈이었대.라는 예를 들면서. 쓸데없는 내 말을 한참 듣고 나서 엄마는 말씀하셨다. 내 꿈은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거"라고 말이다.

"아이 그런 거 말고~" 직업으로 말하라고 다그치다 보니 갑자기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꿈이 직업일 필요가 있을까. 거창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고지식한 세상틀에 갇혀있는 건 나였다.       

학생 때 내 꿈은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었다. 선생님이 '자선사업가'로 바꿔놓긴 했지만.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꿈이 될 수 있다. 부모에 기대는 캥거루족이 2000년 46%에서 2020년 53% 로 늘었다는 통계. 며칠 전 뉴스에 나온 사연, 손주를 봐달라는 아들내외의 말을 거절하고 싶다는 시모. 손주 보는 대신 한글학교를 가고 싶어 눈물 흘렸다는 팔순 할머니 얘기도 들었다.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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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자료사진). ⓒ 픽사베이

 
유튜브에선 노인들의 고충을 모르는 자식들을 향해 거칠게 쏘아붙인 '니 새끼 니가 봐'라는 아마추어 래퍼의 힙합이 화제가 됐다. "자신들의 아이는 자신들이 키우는 게 가장 좋다"는 전문가의 의견에도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당연한 듯하면서도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니,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엄마 다운 꿈이다. 꿈을 이루셨으니 언제나 후회 없는 삶이셨다. 최선을 다한 삶. 그런 강인하신 엄마가 너무 슬펐다는 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글. 어떤 글인지 몹시 궁금했다. 글 쓰는 작가라면 대부분은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감동을 주는 글.      

얼마 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내 글은 감동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글은 써본 적도 없고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했다. 감성에세이가 아닌 생활기사라 그렇다며 뜨악해했다. 생활기사라도 감동은 있지 않은가 반문한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 해도 '감동'이란 단어가 계속 신경 쓰였다. 틀린 말이 아니어서, 감동이 제일 어려운 것이므로. 어쩌면 글의 진정한 목적은 '감동'인지 모른다는 꿈을 꿔본다.      

엄마도 엄마의 삶을 살길 

오래전, 엄마가 장부책 한 면 전체에 끄적여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알아볼 수 없는 글. "지금 내 마음을 글로 남기고 싶어 네가 나중에라도 알아주렴"이라며 엄마는 너무 속상해서 감정을 글로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 내용은 제대로 알 수 없는 글이지만 마구 휘갈려쓴 '글씨'만으로도 당시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속상했다. 먹먹했다. 무언가를 쓰고 싶어 했던 마음만으로도 울컥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한글을 몰라 쓸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 엄마도 배웠다면 어쩌면 시를 쓰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엄마도 환경이 좋았다면 극장에서 영화 한편쯤은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신은 영화를 본 적 없지만 내가 영화를 볼 수 있게 용돈을 주셨다. 덕분에 나는 매주 혼자서 영화 한편씩을 봤다. 나처럼 영화를 자주 볼 친구가 없어서. 엄마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만원을 달라 하면 이만 원을 주신 분이다. 항상 원하는 돈보다 더 주신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봤다. 왜 항상 더 주시냐고. 답은 간단하셨다. 모자라면 혹 나쁜 짓을 할까 봐. 엄마는 힘드셨지만 나는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살 수 있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 
            
너도 나도 자아 찾기가 유행인 시대. 자식 잘되는 게 목표이자 꿈이라고 말씀하시는 엄마. 그런 거 말고 다른 거 없느냐고 물어도 엄마는 '그게 나'라고 한다. 모든 삶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엄마에게도 분명 소녀의 꿈이 있었으리라. 첫눈이 왔다고 전화를 주시고, 슬픈 시를 듣고 감정을 공유하는 감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엄마, 이제 엄마도 엄마 삶을 살아. 그 누구도 아닌 엄마 자신을 위해서. 늦었지만. 아니 이제라도 앞으로 남은 삶은 꼭 그렇게 살아."

그렇게 당부하곤 통화를 끊었다. 지금 창밖엔 흰 눈이 흩날린다. 눈이 온다고 다시 전화를 걸고 싶지만.             

통화를 끊자마자 엄마가 슬펐다는 어린 소년 의 '시'를 찾아보았다. 엄마가 느꼈을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옮겨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비는 매일 운다 / 나도 슬플 때는 / 얼굴에서 비가 내린다 
그러면 / 비도 슬퍼서 눈물이 내리는 걸까?
비야 / 너도 슬퍼서 눈물이 나는 거니?
하지만 / 비야 너와 나는 / 어차피 웃음이 찾아올 거야
너도 힘내! 
(민시우, '슬픈 비' 중)
#시 #감성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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