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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하는 진보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선거연합정당으로 진보정치 혁신과 성장의 길 열어야

등록 2023.12.01 14:17수정 2023.12.0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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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은 지난 6일, 7기 5차 전국위원회를 열고 사실상 진보 4당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선거연합정당 추진을 결정했다. 이와 함께 이정미 대표를 비롯한 7기 집행부는 사퇴하고 선거연합신당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외국에서는 선거연합정당의 다양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으나 한국 정치에서는 첫 시도이다. 또한, 정당법과 선거법이 전면적으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오해와 왜곡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비례위성정당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비례위성정당은 국민에게 받은 지지보다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비례정당을 따로 만들어 준연동형 선거제 개혁을 무력화하는 반개혁이다.

선거연합정당은 당장 하나의 당이 될 수 없지만, 노선과 지지기반의 유사성, 정세 전망과 시대적 과제에 대한 동의에 기초하여 구성한다. 비례와 지역구 후보는 같은 당으로 출마하고, 국민들에게는 경쟁력 있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사표를 줄이고, 국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때문에 정치개혁이기도 하다.

이 글을 통해 아직은 선거연합정당 제안을 생소하게 느끼는 정의당과 진보정당 당원들, 노동자와 시민들의 이해와 기대가 높아지길 바란다.

힘없고 착한 척하는 놈과 그냥 나쁜 놈의 담합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11월 내내 이어지고 있다. 이은영 지부장 단식농성도 한 달을 채웠다. 2년 전 별도의 기관을 만들어 고용 승계하기로 합의했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9년 이후 입사자 약 700명에 대해 공개경쟁 채용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선언했으나, 추진 과정에서부터 흔들렸고 제대로 마무리하지도 못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오히려 노동자를 탄압하기도 하고, 모르는 일처럼 방치해 피만 말리고 있다.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기득권 양당은 이런 방식으로 담합한다.


한쪽은 하고 싶었지만 힘없어 못한 착한 척하는 놈 코스프레, 한쪽은 아예 노골적으로 나쁜 놈이 되어 기득권의 이익을 지켜낸다. 이렇게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소수자 권리, 민생에 관한 의제들이 지워져 왔다.

주목해야 할 제3지대는 민주노동당과 그 후예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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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비대위와 진보정당 원로의 간담회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전 대표(오른쪽)와 강기갑 전 대표가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2023.11.28 ⓒ 연합뉴스

 
기득권 양당 체제가 만들어 낸 공백과 모순들은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요구를 낳았다. 지난 2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7%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제3지대를 낙관할 수 있는 근거로는 차고 넘친다. 실제로도 선거 때마다 제3지대 도전자들은 있었다. 자유민주연합, 국민통합21, 창조한국당, 국민의당 등은 한때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 대선 직후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당을 이끌고 국민의힘에 들어간 것처럼, 모두 기득권 양당의 일부로 되돌아가 버렸다.

최근 제3지대에 등장하는 정치인들도 기득권 양당을 전전해 온 인물들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조짐에도 비판의 말 한 마디 보태지 않는 이들의 태도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노동자들의 기본권과 생존을 위해 싸울 생각이 없다. 돌아갈 기회만 엿보는 가짜 제3지대, 1.5지대에 불과한 것이다. 기득권 양당 잔여 세력들에게 어떤 다른 결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해야 할 제3지대 흐름은 민주노동당과 그 뒤를 잇는 진보신당-노동당-녹색당-통합진보당-정의당-진보당 등 진보정당들이다. 아직 세력은 미미하지만 기득권 양당과 명확히 구분되는 독립적인 노선과 세력 형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혁신도 재창당 없었던 정의당 1년 6개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4개월 앞둔 현재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이 대안으로 각광받지 못하고 있다. 당마다 각기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정의당은 1년 6개월이나 추진한 '혁신 재창당'의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의 연이은 참패 이후 열린 11차 당대회에서는 '대안사회 모델을 제시하는 정당,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정당, 노동에 기반한 사회연대정당' 등 8가지 방향에 기초한 재창당 결의안을 채택하였으나, 구체적인 실행은 사실상 유보되어 있다.

'혁신 재창당'을 최우선 과제로 부여받고 출발한 이정미 대표는 재창당위원회와 신당추진사업단을 연달아 설치하였으나, 당내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관리하는데 그쳤다. 공통의 방향과 내용을 만들어내는 리더십은 없었고, 제자리를 맴돌다 퇴장하였다. 다만, 지난 6일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사실상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선거연합정당 추진 방안 채택을 주도한 것은 의미 있다.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논의를 일단락하고, 이제라도 재창당과 총선 준비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한 결정이었다.

협동 통해 진보정치 재구성

사실 선거연합정당 추진 제안은 이미 4월에 제출되어 있었다.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있다가 초읽기에 몰린 다급한 상황에서 꺼내진 것이다. 정의당 혁신그룹이자 사회운동조직인 '전환'이 제출한 '마주침의 정치를 복원하며, 협동하는 진보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재창당 입장이 그것이다. 이 입장은 정의당이 진보정당들의 협동을 통해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주도할 것을 촉구한다.

총선에서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선거연합 방안도 제시하였다. 재창당에 관한 여러 의견들 중 가장 분명하게 대상을 호명하고, 구체적인 방식까지 명시한 것이었다. 이 제안은 당의 혼란을 조기에 수습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진보정당의 길을 포기하더라도, 자유주의 세력과 연합해야 한다는 망상의 대척점에 선 실천적 반론이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노동운동·기후운동의 참여자와 지지자를 핵심 지지층으로 혁신 재창당을 이루어야 한다는 구체적 대안도 담겨 있다. 무엇보다 정의당이 대표 진보정당으로서 진보정당운동의 위기와 사회운동의 침체를 함께 돌파하겠다는 책임을 다하는 제안이라는 점에서 주목했어야 했다.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냈다.

연대와 협동, 3기 진보정당운동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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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 회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의 권역별 병립형 선거제도 개악 시도를 규탄하며 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2023.11.30 ⓒ 유성호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정의당은 진보정당 선거연합 성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렇게 총선 승리의 길을 열어야 한다. 그렇다고 시야와 포부마저 총선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선거연합정당을 통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주도할 진보정당운동이 새로운 실천에 돌입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기득권 양당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영리함, 극단적인 불평등과 파멸적인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과감함도 보여야 한다. 이제 경쟁과 반목의 시대를 보내고, 연대와 협동의 3기 진보정당운동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하자.

이를 위해 선거연합은 '진보정치 재구성'의 새로운 방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 지난 20여 년간 진보정당운동은 통합과 분화를 반복해 왔다. 그 과정에서 각 세력들 간 이념적, 문화적 차이를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폭발했던 갈등은 불신과 감정적인 앙금을 남겨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들의 통합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평소에는 각자의 이념과 정체성에 따라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선거 등 정세적으로 중요한 국면에서는 힘을 모을 수 있는 진보4당 협동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민주노총 등 주요 사회운동조직과 전략적 연대를 복원하여, 진보정당의 현장성과 계급성을 강화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둘째, 선거연합을 통해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총선 이후 원내 공동기구를 구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거연합정당을 '진보진영 공동집권전략위원회'로 전환해 중앙당부터 지역위원회까지 공동 활동의 틀을 마련하자. 노란봉투법, 전세사기특별법 등 민생의제와 정치제도 개혁 등 현안에 대한 공동 대응 능력도 높여나가야 한다.

총선 이후 첫 사업으로 민주노총과 노동자, 시민이 참여하는 공동싱크탱크를 광역단위까지 구성하여, 공동의 사회 비전과 담론을 생산해 나가도록 하자. 또한, 민주노총 조합원은 진보정당 당원이 되고, 진보정당의 지역조직은 노동조합, 마을운동, 협동조합과 긴밀하게 연대하자. 2026년 지방선거 논의도 조기에 시작하자. 세 명 이상을 선출하는 기초의원 선거구 모두에 후보를 내고, 당선을 위해 전력하자. 지역운동을 재구성하여, 역량을 강화해 나가자. 진보 집권의 토대를 쌓아가자.

셋째, 선거연합을 통해 진보정당들의 내부 혁신을 추동하고, 그 힘으로 한국 정치의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 기득권 양당이 차례로 혁신위원회를 만들고, 차례로 실패하였다. 말부터 앞세우는 조급한 혁신위원장과 무능한 혁신위원, 기득권의 반발까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기득권 양당은 혁신조차 할 수 없는 세력임을 증명한 것이다.

진보정당 선거연합은 정의당과 진보4당이 각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적 자원을 나누며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정치세력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진성당원제에 기반한 당원민주주의를 선도했던 민주노동당처럼 선거연합정당의 시도는 기득권 양당의 혁신을 이끌어 낼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정의당부터 강도 높은 조직혁신에 나서야 한다. 원내 활동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지역위원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 지역위원회를 중심으로 시민과 만나고, 노동자와 연대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나 손잡을 수 있는 곳에 있는 사회운동정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거리에서 시민을 만나는 캠페인정당으로 혁신해야 한다.

선거연합, 성공이 보장된 길은 아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기준 국가당 8.8개의 진보정당이 활동하고 있다. 캐나다 신민주당과 호주 노동당만 단일 진보정당이고, 나머지 나라들은 다수 진보정당이 포진하고 있다. 이 두 나라를 제외하면 대부분 선거연합을 구성하고 있는데, 십수 개의 진보정당이 있는 나라들도 힘을 모으고 있다.

2014년 첫 집권에 성공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다 콜라우 시장은 녹색당, 포데모스 등 정당들과 긴축 반대 운동을 벌였던 '주택담보대출 피해자들을 위한 플랫폼' 등 주거권 운동이 연대한 '바로셀로나 엔 코무'라는 연합정당 소속이었다. 칠레의 경우 13개 진보정당이 선거연합 세 개를 구성하고 있는데, 그중 두 개의 선거연합이 다시 하나의 선거연합을 구성해 보리치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최근 최초로 진보 좌파정당이 집권한 콜롬비아는 '콜롬비아의 역사적인 약속'으로 19개 진보 정당이 연합한 결과였다.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 각자의 노선과 정책을 꽃피우며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활약해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시간은 진보 정당들이 한국 정치의 주변부로 밀려 나오는 시간이기도 했다. 더는 밀려 나올 곳도 없다. 이제 진보정당 운동의 미래와 노동자, 서민의 삶에 대한 책임감으로 결단할 때다. 주저하지 말고, 진보정당운동 혁신과 성장의 길을 열자.  

/ 전환 공동대표, 정의당 유성구 위원장
#선거연합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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