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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사상검증에 동참한 의원들, 해명도 반성도 없다

[이슈] 이상헌·허은아·류호정 등 마녀사냥에 힘 실어놓고도 "입장 변화 없다"라거나 침묵

등록 2023.12.05 10:34수정 2023.12.0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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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홍보 영상 중 한 장면. ⓒ 넥슨

 
게임업계 '사상검증'에 동조했던 국회의원들이 침묵하고 있다. 의혹의 전제가 되는 주요 사실 관계가 틀렸음이 드러나고 있지만, 아무런 사과나 해명도 없는 상황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이 나서서 혐오에 힘을 실어줬고, 이로 인한 명백한 마녀사냥의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양새이다.

앞서 게임 회사 넥슨은 자사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 '엔젤릭버스터'의 리메이크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 그런데 해당 영상 속 캐릭터가 엄지와 검지를 접는 소위 '집게손' 프레임이 삽입된 것으로 나오면서 일부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음모론'이 제기됐다. 페미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가 남성을 조롱할 목적으로 해당 이미지를 고의로 몰래 삽입했다는 취지이다.

의혹에 불이 붙으면서 해당 영상은 비공개 처리되고, 넥슨과 해당 영상을 제작한 스튜디오 뿌리 측이 사과문을 올렸지만 일부 누리꾼들의 공격은 계속됐다. 급기야 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주범으로 지목되고, 그의 과거 트윗 일부가 정황 증거로 제기됐다. 정작 <경향신문> 등의 취재 결과 해당 콘티를 작성한 것은 다른 남성 일러스트레이터였다. '몰랐다'는 넥슨 측 해명과 달리 사전 검수 작업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이른바 '신상 털기'를 포함한 온라인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다(관련 기사: 신상 털린 넥슨 '집게손' 사상검증 피해자, 온라인스토킹에 고소 검토). 하지만 사건 초기부터 의혹에 힘을 실어줬던 주요 정당의 국회의원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상헌 민주당 의원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 → "입장 변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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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이상헌 소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1.3.15 ⓒ 연합뉴스

 
e스포츠 및 게임 콘텐츠 관련 의정활동을 여럿 해온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월 29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뿌리' 사태는 진영과 사상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청업체의 직원이 원청업체의 의지에 반하여 원청업체에 피해가 갈 만한 행동을 독단적으로 했다"라며 "게임사의 호들갑?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한 이상 상품을 만든 제조사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수정을 하는 게 당연하다"라며 "그게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라고도 꼬집었다.

특히 "이 문제의 악질적인 점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데 있다"라며 '의도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그들만의 혐오 표현을 숨겨 넣는 데 희열을 느낀다"라며 '일베(일간베스트)'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게임업계와 우리 게이머들에게 너무나 큰 피해가 생긴다"라며 "어떻게 하면 제도적으로 개선을 할 수 있을지 전문가 분들과 여러 게임사들과 논의하고 있다. 어떤 피해 사례가 있었는지, 예방할 수 있을지 연구용역도 추진해 보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목된 여성 애니메이터가 해당 장면을 작업하지도 않았고, 원청업체인 넥슨이 여러 차례 검수를 실시하였으며, 스튜디오 뿌리 측과 실제 작업을 한 당사자도 관련 의도가 없었음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상헌 의원실은 4일 <오마이뉴스>에 "입장 변화는 없다"라고 알렸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표현의 자유 들먹이는 게 기가 차다" → 회신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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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아 국민의힘(비례대표) 의원이 10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 유성호

 

허은아 의원 역시 앞서 본인의 페이스북에 "자칭 '자유의 허신상'으로서 여기서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는 것이 기가 차다"라며 "일을 하러 왔으면 일을 해야지, 왜 업장에서 사회 운동을 하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역시나 해당 애니메이터가 집게손 장면을 의도적으로 넣었다고 전제한 뒤 비난의 화살을 쏜 것이다.

그는 "최근 이러한 문제에 대해 기업 하는 분들의 걱정이 상당하다. 일터를 파괴하는 주범이라고까지 말한다"라며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이런 저급한 방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이렇게 대다수 시민들의 인식은 바뀌었는데 여전히 앵무새같이 '정치적 올바름'을 운운한다"라며 "저는 이를 '정치적 착한 척'이라고 부른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저는 앞으로도 이 기만을 깨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허은아 국회의원실에 추후 입장 변화가 있는지 두 차례 물었으나, 해당 의원실은 <오마이뉴스>에 '추후 답변하겠다'라고만 밝힌 뒤 회신하지 않았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이번 건은 기존과 좀 달라" → 답변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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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6.13 ⓒ 연합뉴스

 
민주노총 산하 화섬노조에서 활동했던 게임 회사 노동자 출신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 게임업계 '사상검증'과 이에 따른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에 대해 비판적인 류 의원이었지만, 지난 11월 29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했을 당시 "이번 건 같은 경우에는 기존과 좀 다르기는 하다"라며 사실상 의도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힘을 실었다.

그는 "의도를 가지고 어떤 창작물에, 납품을 하는 어떤 영상물에 그런 손 모양을 넣었으면 명백한 조롱"이라며 "다 같이 만드는 창작물 안에 그렇게 조롱의 의미가 달린 그림을 넣으면 안 되는 거고 특히나 남성 소비자가 많은 서비스에 남성을 조롱하는 의미를 담은 그런 표현을 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임질 수 없는 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이후 그는 '넥슨의 대처 역시 과했다'라는 취지로 "처음에 한두 개 정도는 진짜 저 장면에 왜 저런 걸 넣었을까 싶은 게 있었는데, 한 중반 지나가면서부터는 정말 억지스러운 게 너무 많았다"라고 덧붙였다. 소비자를 향해서도 "이제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특정 애니메이터가 조롱의 의미를 담아 의도적으로 해당 장면을 넣었다'라는 전제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의 질의에 류호정 의원실은 류 의원에게 직접 입장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류 의원에게 문자를 남기고 전화 통화를 시도하였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정의당 "왜곡에 기초한 명백한 사이버 불링"

막상 정의당의 당론은 류 의원의 입장과는 상반된다. 11월 28일 발 빠르게 논평을 낸 데 이어(관련 기사: 또 불거진 게임계 사상검열... 진보정당들 "억지 남혐 마녀사냥"), 계속적으로 해당 이슈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경채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오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모두발언에서 "산업안전보건법 41조 2항"을 언급했다. "회사가 고객 등 제3자의 폭언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를 가진다"라며 "왜곡에 기초한 일부 게임 유저들의 명백한 사이버 불링"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법률상 회사는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오히려 회사는 노동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사상 검증과 단속을 시행한 것이 드러났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페미니즘 성향이 게임업계에서 어떻게 탄압받아 왔는지 여러 사례들을 언급하며 "명백한 법 위반이자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배신한 것이다. 회사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입하지만 그의 사상까지 구입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특별점검을 언급하며 "성실하고 철저한 조사가 되어야 하며, 해당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도 덧붙였다.

정의당은 김가영 부대변인 명의의 지난 1일 논평에서도 "애먼 여성 노동자가 페미니즘 사상검증의 희생양이 되는 데도 넥슨사는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강경 대응으로 모든 책임을 하청으로 넘겼다"라며 "줄줄이 몸 사리며 페미니즘 혐오에 편승하는 게임업계는 부화뇌동을 멈추고 자성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적극적으로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했다. 그는 "최소한의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않고 무고한 창작자를 함부로 낙인찍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언행을 공개적으로 반성해야 한다"(11월 30일)라고 지적한 데 이어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을 통한 페미니즘 마녀사냥의 해악이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정치권에도 중대한 책임이 있다"(12월 1일)라고 비판했다.

장 의원은 "온라인에서 페미니즘을 공격하기 위해 조장되는 억지 논란 자체도 문제이지만, 공적인 권위와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억지에 과도한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함으로 인해 결국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일은 그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어 왔다"라며 "자신의 정치적 언행이 사회에 가져오는 파급력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입을 닫고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인들이 자초지종도 확인하지 않고 기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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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 등 9개 시민단체가 11월 28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김화빈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손가락을 걸고넘어진 것 자체가 사실 과도하고 무리한 것인데, 페미니즘을 공격하기 위한 방식으로 형성된 담론을 정치권이 인정하고 찬성한 것"이라며 "사실상 그 정치인들도 반 페미니즘과 혐오를 수용하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어떤 특정 소수 집단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정당화해 주는데 정치인들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지금 하고 있다"라며 "한국 사회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라고도 꼬집었다.

<백래시 정치>의 저자이기도 한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일반 대중보다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게 정치인"이라며 "불이 붙고 있는 사건에 정치인들이 사건의 전말과 자초지종을 확인하지도 않고, 차분히 원인을 알아보고 불을 끌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기름을 끼얹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성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야당 소속 두 국회의원의 경우, 당 차원의 진상조사와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이고,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반드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인의 말은 공적인 책임과 신뢰를 갖는데,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고 폭력을 정당화했다"라며 "사실상 해당 행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주장이었다.
#사상검증 #페미니즘 #이상헌 #허은아 #류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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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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