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간호사 면허가 '장롱면허'가 되는 이유

간호사는 부족하지 않다, 일하는 간호사가 부족하다

등록 2023.12.19 12:08수정 2023.12.19 14:44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17일,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서울 도심 집회를 열었다. 총파업 찬반투표도 진행하며 집단 휴진 등 단체행동도 불사할 기세다. 최근 몇년간 의대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며 대학생과 직장인들도 의대 입학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너도 나도 의대 입시에 도전하면서 의대 입학 성적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극단적인 수준에 도달한 의대 선호 현상과 국내의 의사 부족 실태가 맞물리면서 결국 의대 입학 정원 확대라는 정부 발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의사들은 의료 인력 부족과 관련된 사회적 논의에서 언제나 이슈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기자는 대한의사협회의 파업이나 의대 입학 정원 확대가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의료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의료인 인력 증원과 관련된 논의에서 간호사는 항상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의사 없이 병원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듯 간호사 없이 병원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바다.

지난 3월 교육부는 내년 간호학과 입학정원 700명을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2019학년도부터 전국 간호대 입학정원을 매년 700명씩 증원해왔는데, 2025학년도 간호대 입학 정원은 1000명이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간호대 입학정원을 한시적으로 1000명씩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방의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가중되는 간호사 수급난을 해소하고 고령화에 따른 간호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간호대 입학 정원을 늘리면 의료인력 부족이 해소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어려워 보인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국내 간호사 면허보유자 가운데 52.6%만이 의료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의사의 현업 종사자 비율이 80%가 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면허 간호사 가운데 의료 기관에서 근무하는 임상간호사 비율은 평균적으로 약 70% 수준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은 임상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다른 회원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미국은 간호사 1명이 환자 5.3명, 일본은 7명을 담당하는데 한국은 간호사 1명이 환자 16명을 담당하고 있다. 간호인력 부족으로 간호사의 근무환경이 악화되고, 이를 버티지 못해 임상을 떠나는 간호사가 더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부가 간호대 입학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간호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a

간호사 ⓒ elements.envato

 
친척 중에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있다. 간만에 안부 인사를 전하기 위해 연락했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간호사의 근무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마침 세브란스병원이 소속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주 4일제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시점이었다.

하지만 내 친척은 그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답변했다. 그게 가능할 리 없다는 의견과 함께 "연차를 써서 휴일에 쉬겠지"라는 말을 했다. 병원에서 주 4일제를 보장받는 게 아니라 연차를 써서 한시적으로 주 4일제처럼 근무하는 구조일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일할 수 있는 간호사가 증원되지 않아서 인력이 부족할 텐데 주 4일제가 어떻게 정착하겠냐는 의견은 매우 타당하게 들렸다. 

경상북도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은 간호사의 급여가 낮아서 상경했다고 밝혔다. 2020년 12월부터 서울 소재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10명이 넘는 간호학과 동기들이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근무하는 동기들은 자신을 포함해 겨우 3명이라고 했다. 높은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이 근무하던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을 떠나 지방(비수도권)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기존에 근무하던 병원을 떠난 사람들은 아마도 지방의 일반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거나 간호사 면허를 장롱면허처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어렵게 공부해서 간호사가 되고도 그들이 병원을 떠나는 이유는 고된 근무 강도와 낮은 급여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고된 근무 강도와 낮은 급여를 개선해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간호사의 근무 강도를 완화하려면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이 더 많은 간호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간호사의 낮은 급여가 개선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간호대 입학 정원을 아무리 확대하더라도 간호사 부족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한국은 임상 간호사 수는 적지만 간호대 졸업생 수는 인구 10만 명당 4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인 32명보다 오히려 많다. 이런 상황에서 간호대 입학 정원을 늘리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 일하는 간호사는 없고 단지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의 숫자만 늘어날 뿐이다. 

추가로 간호사의 지역별 쏠림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 인구 1000명당 임상간호사 수가 전국 평균치를 밑도는 시도는 경기·인천·강원·충청남도·충청북도·경상남도·경상북도·제주·울산·세종 등 10곳이다. 서울과 지방 광역시들을 제외한 지역들은 예외없이 간호사 숫자가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료 환경의 차이는 시민들의 대도시 쏠림 현상을 더 심화할 것이고, 지역 소멸을 가속하는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단지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들의 숫자만 늘리는 무의미한 정책이 아니라 일하는 간호사의 숫자를 늘릴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존재는 일하는 간호사, 환자를 돌봐주는 간호사다.
#간호사 #간호대 #간호학과 #대학병원 #종합병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학교에서 역사문화학을 전공한 시민기자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3. 3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4. 4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