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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자기 자신과 싸우는 정신질환자의 삶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읽고 나를 돌아봤다

등록 2023.12.24 17:29수정 2023.12.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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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이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힘든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새로운 작가들을 알아가고 다양한 책을 읽는 기쁨은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이다.


어떤 책은 기존에는 알지 못했던 지식과 교양을 주고, 어떤 책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어떤 책은 삶에 대한 통찰을, 어떤 책은 통렬한 비판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독자들을 훈계하고 깨우친다.

의사 엄마인 김현아의 책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를 읽었다. 정신질환자들의 자살에 대한 디테일한 내용, 정신질환을 가진 딸의 7년간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책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고 중간중간 읽기 불편한 내용도 있었다. 

수십 번의 자해, 7번이 넘는 입원, 제집처럼 드나드는 응급실, 취직은커녕 일상생활조차 힘든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딸의 삶과 그 딸의 부모로서의 삶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삶을 지속해 올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편견'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남이 잘 모르지만 나 자신은 알고 있는, 하지만 겉으로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았았던 내 모습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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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표지 사진 ⓒ 창비

 
의사에 대한 편견


의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돈과 능력, 지위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기와 질투의 시선으로 그들을 볼 때가 종종 있었다. 부모를 잘 만나서 교육을 잘 받고, 삶의 큰 스트레스나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삶의 출발선 자체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들은 지금도 가끔 불쑥 튀어나온다. 

최소 억대 연봉 이상의 급여를 받으며 풍요로운 생활을 할 것 같은 의사들이 특정 의료분야에만 몰려 소아과나 외과, 산부인과 같은 곳들이 외면받는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돈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전공분야를 선택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고 국가가 강제할 수 없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는 부부 모두가 의사이다. 그의 딸들은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늘 따돌림을 받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정신질환이 있다. 부모의 삶은 힘듦의 연속이었다. 흔히 떠올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여유 있는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생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긴박하고 불확실하며 불안 가득한 모습이었다.

저자는 '우리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라고 한다. 부부의 직업이 의사라는 점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력을 갖고 있고, 지인 의사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등 직업적인 이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더 열악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부분이 있다고.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정신질환을 가진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삶은 그 자체가 낙인이고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 딸의 동의를 구하고 책을 기록했다. 정신질환자(가족)의 삶이 이렇게나 힘들지만 그래도 힘들 내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리고 다른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또한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의사 엄마의 삶을 책으로 살짝 엿보는 것만으로 숨이 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함을 느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느낀 불편함의 크기는 의사들에 대한 나의 편견의 크기와 비례하며 점점 더 커져갔다.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

조현병, 싸이코 패스 같은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른 살인, 강력범죄 기사에는 항상 '정신질환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연이은 언론보도를 통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단단하게 형성되고 있음을 느낀다. 

양극성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개 위험인물로 간주된다. 그들은 단순히 일상생활이 힘든 정도가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든 큰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치부된다. 질환의 종류나 발병 정도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심플하게 '위험인물'로 뭉뚱그려진 취급을 받는다.

육체의 질병과는 달리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장애인 등록자체가 쉽지 않을뿐더러 정신질환이 있음을 노출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 치료를 받고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정신질환을 가진 자'라는 사회적인 낙인이 찍힌 채 남들과 동일한 형태의 삶을 사는 게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강력 범죄에 항상 따르는 '정신질환'같은 꼬리표를 보면서 어떻게든 이들을 조심하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모습을 돌아본다.

하지만 보도자료나 뉴스를 조금만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다.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질환이 없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보다 결코 크지 않다는 것을. 

또한 표면적으로 파악된 정신질환자의 수치는 전부가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스스로 노출을 꺼리는 등의 이유로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21년 발표한 '정신질환자의 의료이용 현황 및 단계별 특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를 제외하고 정신질환 및 정신과적 문제로 의료서비스를 받은 환자 수는 2009년 206만 7천 명에서 2019년 311만 6천 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일반의료기관의 정신질환 진료 사례까지 포함한 수치지만 정신시설 입소자 등이 제외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정신질환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기준 전체 정신질환자(311만 6천 명) 대비 정신장애 범죄자(7천763명) 비율을 계산해 보면 0.2%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같은 해 총인구수(5천178만 명) 대비 전체 범죄자(158만 6천 명) 비율인 3.1%에 한참 못 미친다. 중증 정신질환자(67만 5천 명)와 비교했을 때도 정신장애 범죄자(7천763명) 비중은 1.2%로 전체 범죄자 비율(3.1%) 보다 훨씬 낮다.  - 연합뉴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를 읽으며 실제 위협이 되는 위험한 정신질환자들도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와의 싸움'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끝도 없는 우울, 조증, 무기력감, 나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이런 마음들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하루종일 자기자신과 싸우고 또 싸우는 것이 이들의 삶이라고.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아픈 비극은 환자의 자살이 아니라고 한다.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닌, 평생을 환자와 함께하며 고통의 시간을 견뎌온 유가족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살해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이들에 대해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케어가 더욱 절실함을 느낀다. 지금과 같이 '나는 질환이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기조차 버거운 삶이라면,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모순된 것이 아닐까.

나 자신에 대한 편견

평소 다른 사람을 대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나 정도면 무난하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주위에 힘든 사람들을 보며 까끔 아파할 줄도 알고,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때로 누군가를 돕기도 했다. 장애를 가진 지인들을 대하면서 친절히 대해주는 정도로 나 자신에 대해 평균 이상의 점수를 부여한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장애인들, 특히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이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꾸준하고 깊이 있는 관심을 갖기 않으면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고는 있는지, 우리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작은 관심부터 가져야 할 것 같다.

누군가가 더 많은 돈을 벌고 성장하기 위해 땀 흘리며 살아갈 때 누군가는 오늘 하루도 스스로를 해하지 않으려는 목표를 지키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일 수도, 사랑하는 부모님과 자녀일 수도,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정신질환자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뉴스가 보도되지만 '질병'이라는 측면에서 이들 또한 돌봄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연대하기 위해서는 저들과 같은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며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함을 느낀다. 이들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차별이 사라질 때, 스스로 환자임을 드러내지조차 못하는 이들이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나갈 수 있음을 믿는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개제합니다
#정신질환 #환자 #의사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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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짝꿍,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 음식, 읽고 쓰며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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