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대성당에 있는 이슬람 양식의 히랄다 탑
김연순
방으로 들어와 빠르게 둘러보며 스캔했다. 침대와 거실, 주방과 세탁실이 있다. 그런데 1박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한 숙소가 기대에 비해서 너무 부실했다. 토스터기는 녹이 슬어 있어 거기에 빵을 넣어 굽고 싶지 않았다. 무선 주전자는 더러워서 물을 끓이기가 싫었다. 프라이팬이 여러 개 있었지만 코팅이 다 벗겨져 있어 제일 작은 것 하나만 사용이 가능했다. 수건도 달랑 네 장이었다. 에어비앤비, 엄청 기대하며 들어왔는데 완전 대실망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 무렵 세비야의 비슷한 조건을 갖춘 숙소들은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도 워낙 비쌌기에 어쩔 수 없다. 세비야에서 지내는 7일 동안 마트에서 장 봐다가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빠르게 정신승리 모드로 진입했다.
일단 그동안 캐리어 한편에 고이 모시고 다닌 라면을 꺼냈다.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 세 개를 넣어 팔팔 끓였다.
"우리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그러니까 둘이서 라면 세 개는 먹어줘야 해."
누구랄 것도 없이 이때만큼은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했다. 그렇다. 세비야까지 왔으니 그럴 수 있는 거다. 반찬으로 볶은 김치와 진미채도 꺼냈는데 이건 뭐, 입에 들어가는 대로 뭐든지 다 맛있다. 정신없이 젓가락질하고 국물까지 떠먹으니 속이 뜨끈하며 포만감이 쑤욱 올라온다.
단지 배불러서 오는 포만감이 아니다. 이제 더 바랄 게 없다 싶으면서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뭐든지 이해가 되면서 마음의 품이 넓어진다. 이런 게 그동안의 숙소였던 호텔과는 다른 맛인가 보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어 커피 한잔씩 내려 마시는데 그게 또 뭐라고 마음 한쪽이 저려오며 살포시 행복감이 느껴진다.
127년 걸려 지어진 대성당이라니
다음 날 아침, 누룽지를 끓여 먹고 숙소를 나섰다. 예약해 둔 세비야 대성당으로 갔는데 이미 입장하려는 사람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영국의 세인트 폴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성당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대표적 도시 세비야는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