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km를 4시간 16분에 맞춰 달리는 남자

[4·16 챌린지] 누군가의 응원과 격려로 달리는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등록 2024.04.08 10:00수정 2024.04.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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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한 명인 김동수 씨(파란바지의 의인이라고도 불리는)와 함께 세월호 참사 10년을 기억하며, 416챌린지를 펼칩니다. 4.16km이상을 걷거나 뛰고난 뒤 sns 등에 #416챌린지 등의 태그와 함께 인증사진을 올려주셔서 함께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편집자말]
제주의 4월이라고는 하지만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제주도를 자주 방문해 본 사람들은 제주의 봄바람이, 특히나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세차고 차가운지 알 것이다. 더군다나 오락가락 비가 오는 날씨라면 더욱 그렇다.

매년 4월이면 세월호에 함께 승선했던 아이들과 승객을 기억하며 매년 종달리에서 제주항까지 41.6km를 4시간16분에 맞춰 달린다는 김동수씨. 적어도 8년간 외롭게 뛰었을 그를 생각하니 적어도 올해부터는 더 이상 외롭게 뛰게 하지는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9주기 때부터는 함께 그 길을 달리자고 했다. 김동수씨와 함께 달리기 위해 겨울 내내 성실하게 달리기를 준비해 왔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6일가량 매일 달렸다. 적어도 5km이상 10km 사이를 꾸준히 달렸다. 눈이 오거나 날이 추워지더라도 밖으로 나가 달렸다. 그렇게 한 달에 250km 이상을 달렸다. 앞서 말했듯 꾸준히 매일 달리는데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매일'에 더 먼 '거리'를 달리기 위해서는 성실함에 더해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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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은 하루를 제외하고 모든 날을 달렸다. ⓒ 변상철

 
사실 마라톤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러너가 몇 개월 연습으로 40km 이상을 달리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김동수씨와 41.6km의 거리를 모두 달리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적어도 절반 이상의 거리를 함께 달릴 수만 있다면 김동수씨가 달리는 동안 덜 외롭고 덜 힘들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적어도 20km. 그 거리가 1차 목표였다.

그러나 1차 목표는 목표일 뿐,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41.6km의 모든 거리를 함께 뛰고 싶은 마음. 그래서 나는 행사 2주일 전 주말 아침에 40km에 도전해 보았다. 오전 7시에 충분한 스트레칭 후에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성산대교에서 성수대교 방향으로 달리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날의 달리기를 통해 내가 얼마나 마라톤에 문외한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40km를 달리기로 했으면서 아무런 준비물도 없이 무작정 출발했던 것이다. 그 전까지 내가 가장 길게 뛰었던 것은 20km였으며, 그 정도 거리를 달리는 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그래서 40km를 달리기로 하면서도 물 한 병, 젤 하나도 준비하지 않고 달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동호대교를 돌아 한남대교까지 오는데 크게 힘든 줄 몰랐다. 그런데 22km 정도를 지나자 다리가 무거워지고, 발바닥의 통증이 심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복부가 당기면서 호흡하기가 힘들어 규칙적 호흡이 어려워지기까지 했다. 결국 반포대교 부근에서부터 달리기를 포기하고 걷기 시작해야 했고, 그때부터 밀려드는 추위와 어지럼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결국 남은 달리기를 포기하고 근처 한강 편의점을 찾아 물과 단백질 바 등을 사먹었다. 그러고는 '따릉이'를 타고 겨우 집에 도착했다. 내 모습을 본 가족들은 '얼굴이 검은 빛이네, 곧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야'라면서 집에 있는 이온음료와 영양제를 가져와 먹게 했다. 샤워를 겨우 마친 나는 곧바로 침대에서 몇 시간동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먼 거리를 달리자고 결심한 사람으로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달리는 것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다. 특히나 다른 사람들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나는 더 자주 수분을 보충해야 하는데도 물 한 병 준비하지 않았다. 자칫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위험한 행동이었다.

뼈저린 교훈을 얻게 해준 실패(?)로 인해 나는 혹시나 내가 40km를 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미련 없이 버렸다. 나의 목표는 절반. 20km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간단히 셰이크와 과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자 8시쯤 김동수씨가 차를 가지고 와 달리기 출발 지점인 종달리로 함께 이동했다. 종달리 항구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달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복장이었다. 김동수씨에게 물어보니 제주의 마라톤 동호회 분들이라고 했다.

마라톤 동호회라는 말에 김동수씨가 적어도 혼자 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라는 안도감과 따뜻함이 밀려 들었다. 차가운 바람과 중간 중간 내리는 비로 더 춥게 느껴지는 날씨였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습니다'는 문구를 저마다 가슴에 달았다. 그것은 그날 행사에 달리고자 모인 사람들의 다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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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9주기를 기억하며 함께 달린 시민들. 이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얼마 달리지 못하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 변상철

 
오전 9시가 되자 모였던 10여 명의 사람들이 힘찬 함성과 함께 달려 나갔다. 마라톤 대회처럼 많은 사람들의 응원이 없더라도, 화려한 음악이 없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을 의지하며 힘차게 달려 나갔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한 마음, 세월호 의인을 위로하겠다는 마음, 그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했다. 가능한 자동차 도로를 피해 자전거 도로를 이용해 달렸다.

김동수씨가 달리는 동안 김동수씨 가족은 자동차를 이용해 5km 지점마다 먼저 도착해 물과 바나나, 초코파이, 이온음료 등을 준비해놓았다. 덕분에 달리는 동안 수분과 영양 보충을 해 달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긴 거리의 마라톤 대회에서는 거리마다 이런 물과 먹거리를 준비해 주지만, 공식대회가 아닌 경우 모든 것을 개인이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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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에서 제주항까지 달리는 동안 물과 의약품 등을 지원하기 위해 김동수씨 가족이 운행한 차 ⓒ 변상철

 
마라톤 대회에서 볼 수 있었던 도로에서의 응원 소리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달리는 동안 지나쳐 가는 자동차들 중 천천히 속도를 줄여 창문을 내린 뒤 '힘내세요'라고 큰 목소리로 응원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응원의 소리는 조금씩 지쳐 자세가 흐트러진 채 달리는 나에게 힘과 자극이 되었다.

누군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친 기색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었다.  5km마다 준비된 물을 마시고 간단한 과일 등을 먹으며 소진된 체력을 보충해 갔다. 1분간의 휴식 후 다시 달렸다. 약속된 시간과 거리가 있기에 힘들다고 더 쉴 수 없는 노릇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까지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처음 목표했던 20km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km를 더 달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긴 거리와 시간을 김동수씨와 함께 달렸다. 그리고 내가 함께 달리지 못한 거리를 다른 이들이 함께 달렸다. 나 역시 마지막 3km 지점에서 재차 합류해 마지막 지점인 제주항까지 함께 달렸다. 제주항에 도착해 세월호 참사를 잠시 기억하는 시간과 함께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가 더욱 행복하길 바라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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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에 도착한 김동수씨와 제주시민들이 김동수씨를 응원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시민들의 위로는 김동수씨를 비롯한 세월호 생존 피해자들이 한 해를 살아갈 힘이 되어 줄 것이다. ⓒ 변상철

 

이날 달리기에서 긴 거리를 달리는 동안 보내준 누군가의 응원과 5km마다 설치된 음료 등이 큰 힘이 되었다. 아마도 내가 예상했던 거리보다 더 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주변의 응원과 음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또 함께 달리는 사람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주변에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숨소리와 격려 그리고 힘들 때마다 외친 응원 소리 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달릴 수 있었다.

9년이라는 시간동안 김동수씨를 비롯한 세월호 참사 유족과 생존자, 가족들이 그 긴 시간을 버텨가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이웃과 시민들의 격려와 응원 그리고 어디선가 세월호 피해자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이웃의 시선이 아닐까 싶었다.

결국 우리는 41.6km를 달렸다. 그러나 41.6km는 끝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고, 세월호 피해자가 온전히 위로받고 기억되는 그 날, 그 시간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그날을 위해 김동수씨의 달리는 시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그룹입니다.
#FIGHTINGCHANCE #파이팅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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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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