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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서울시민, 오세훈 시장 '명동 버스 대란' 사과 보며 서운"

[인터뷰] '장애인콜택시 탑승 거부' 서울시 상대 소송 황덕현씨

등록 2024.01.16 13:30수정 2024.01.1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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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장애인콜택시 탑승을 거부당해 소송 진행 중인 황덕현씨(중증 지체장애인)가 12일 오후 인천시 중구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 중 보행보조기를 이용해 이동하고 있다. ⓒ 이정민

 
다리가 뒤틀린 남자는 벽이나 보행보조기를 잡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바지 밑단을 걷어 올리자 제대로 걷지 못해 이곳저곳에서 찍힌 상처들이 가득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숙소 1층 로비에서 10층 방에 다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2020년 서울에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려다 거절당한 황덕현(48)씨의 이야기다.

황씨는 그날 이후 서울시·서울시설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처음 마음을 먹고 소송을 시작한 2022년 2월 23일로부터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는 "서울시·서울시설공단이 황씨의 장애인콜택시 이용 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지만 서울시·서울시설공단 공무원들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서울시·서울시설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2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는 지난달 21일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이 정당한 사유 없이 황씨를 차별했다"며 원고(황씨)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서울시설공단은 탑승 거부 당시 황씨의 장애가 '경증'이어서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서 정한 콜택시 이용 대상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황씨가 해당 법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모두 갖추어 장애인콜택시 이용 대상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럼에도 황씨는 여전히 서울에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2심에서 패소한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이 판결에 불복하면서 지난 9일과 10일 각각 상고장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황씨 측은 대법원 판결까지 짧으면 5개월, 길면 2~3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기약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황씨를 지난 12일 오후 인천공항 인근 그의 숙소에서 만났다.

서 있을 수도 없게 된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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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장애인콜택시 탑승을 거부당해 소송 진행 중인 황덕현씨(중증 지체장애인)와 12일 오후 인천시 중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이정민

 
"태어나고 100일쯤 지났을 때 머리를 다쳤어요. 그 뒤로 4~5일 동안 먹으면 토하고, 먹으면 토하고 (반복)했대요. 주변에서는 저희 부모님한테 '좀 지나면 나아질 거다', '걱정 말라'라고 했다는데 돌이 지날 때까지 걷지 못하고 4살에야 걸었대요."


황씨는 "청소년기에도 발을 질질 끌고 다녔다"며 "어릴 때 신던 신발을 보면 뒷굽이 아니라 앞굽이 닳아있었다"고 회상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달리기가 현저히 느렸고 말과 행동도 느렸다. 하지만 황씨 어머니는 "아들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보내겠다" 결정했고, 그는 무사히 대학까지 마쳤다.

정상적인 군 생활은 불가했기에 황씨는 스무 살이 되던 1994년 장애인 등록을 했다. 그의 장애인증명서에는 "종합장애 정도 :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주장애 : 지체(상지기능)장애/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부장애 : 지체(하지기능)장애/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이라고 쓰여있다. 

황씨의 상태가 더욱 악화한 건 지난 2018년 3월이다. 베트남을 여행하던 중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2018년 3월에 경추척수증 진단을 받았어요. 그쯤 처남 식구들이랑 같이 베트남을 여행 중이었는데, 몸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여행 도중 급하게 휠체어를 구매할 만큼요. 나중에 병원을 가보니 여행과 해외 사업 중 무리해 척수에 이상이 왔다는 설명을 들었어요."

이전까지 발을 끌면서라도 걸을 순 있었던 황씨는 이후 그것마저 불가능해졌다. 워커나 휠체어 같은 보행보조기 없인 혼자 서 있을 수 없었고 버스나 지하철도 탑승할 수 없게 됐다.

"서울시, 나를 싸움의 대상으로만 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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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장애인콜택시 탑승을 거부당해 소송 진행 중인 황덕현씨(중증 지체장애인)를 12일 오후 인천시 중구에서 만났다. ⓒ 이정민


인터뷰 당일 제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황씨는 이날 인천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길에 인천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했다.

"인천공항에서 15분 정도 대기하고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 숙소까지 왔어요. 보통 금요일에는 택시 잡기가 힘든데도 금방 오더라고요. 이번 제주 출장 때도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했는데 보통 대기시간 20분을 넘기지 않고 탈 수 있었어요."

현재 서울 서대문구에 살고 있는 황씨는 정작 서울에선 아직도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다. 그는 "상고 소식을 들으니 (서울시·서울시설공단은) 저를 서울시의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싸움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명동 버스대란'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사과하는 모습을 보곤 "서운한 마음이 컸다"고 떠올리기도 했다.

"최근 명동 버스대란으로 여러 서울시민들이 이동에 불편을 겪었잖아요. 그때 오 시장이 나와서 사과하는 영상을 봤어요. 그런데 저는 혼자고 장애인이라서 그런 걸까요? 여전히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는 게 서운하고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대법원 판결이 언제, 어떻게 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최종 승소한다면 서울에서 꼭 장애인콜택시를 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행길이나 30km 떨어진 병원에 가는 길 등 정말 필요한 상황에 탈 것"이라고 전했다.

"역사 속 투사들은 자기 자유를 얻자고 싸운 게 아니라 후대 사람들을 생각해 싸웠던 거잖아요. 제가 소송에 임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향후 서울에서 장애인콜택시를 타지 못해 불편과 억울함을 겪을 다른 장애인을 위해서라도 (장애인콜택시 탑승 기준을) 고치는 게 맞아요. 누구나 갑자기 장애인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고 함께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황씨는 대법원 판결 전이어도 서울에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임시조치 신청을 했다. 법원이 2심 판결의 취지를 인정해 임시조치를 허가하면 황씨는 판결이 나기 전이라도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그는 오는 29일 심문기일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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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장애인콜택시 탑승을 거부당해 소송 진행 중인 황덕현씨(중증 지체장애인). ⓒ 이정민

 

[관련기사]
 
서울시 '장애인콜택시' 소송 불복, 결국 대법원 가나 https://omn.kr/26zf5
#황덕현 #장애인콜택시 #서울시 #서울시설공단 #장애인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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