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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 특전사령관이 5월 20일~27일 총 81시간 광주에 머문 이유

[단독] 정 전 특정사령관이 5.18진상조사위에 제출한 '진정서' 전문 공개①

등록 2024.01.23 11:12수정 2024.01.2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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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령관 시절의 정호용 전 사령관. ⓒ 김충립 전 보안반장 제공


지난 2021년 5월 13일, <오마이뉴스>는 정호용(93) 전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 위원장 송선태)에 제출한 '진정서'를 단독으로 보도한 바 있다. 총 9쪽에 이르는 진정서에서 정 전 사령관은 자신은 광주진압작전에서 배제됐고, 총 네 차례 광주를 방문한 것은 작전을 지휘하러 간 것이 아니었으며, 노태우 대통령(2021년 10월 사망)이 3당 합당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을 5.18 책임자로 몰아 정계에서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 전 사령관은 진정서에서 '전두환의 분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장세동 당시 특전사 작전처장(작전참모, 대령)이 5.18 이전에 광주에 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는 <오마이뉴스>가 별도로 입수해 보도했던 5.18진상조사위의 특전사 간부 면담 결과 보고서 내용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신군부 실세였던 장세동 처장의 광주행은 5.18 진압이 당시 전두환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사령관의 '보안사 라인'(보안사-특전사-공수여단)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문]
- "전두환이 5.18에 사과 안 하면 혼자라도 하겠다" https://omn.kr/273da
"전두환 1980년 2월 창당 시도, 명확한 사실" https://omn.kr/273db

이와 함께 <오마이뉴스>는 허삼수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이 "도청탈환작전이 27일로 정해진 것 같은데 이를 3~4일 앞당기는 것이 좋겠다"라며 특히 "헬기를 작전에 활용하면 희생은 많이 나지 않게 된다"라고 정 전 사령관에게 말했다고 증언한 사실도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 진정서는 정 전 사령관이 재판을 제외하고는 5.18광주민주화운동(아래 5.18)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정부기관에 처음 제출한 의견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그동안 전두환 전 대통령(2021년 11월 사망) 등 신군부 세력이 '헬기 사격'을 부인해온 가운데 신군부 핵심인사로부터 '헬기 동원' 증언이 나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총 16쪽 분량의 진정서 두 건... "죽기 전에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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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이 지난 2021년 2월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제출한 진정서 첫 페이지. ⓒ 구영식

  
<오마이뉴스>는 당시 9쪽의 진정서와는 별도로 추가 진정서를 입수했지만 당시 두 건의 진정서 내용 전체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5.18진상조사위가 당시 정호용 전 사령관 등의 대면조사를 계획하고 있었고, 진정서 전문 공개가 그러한 조사 진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5.18진상조사위의 공식 조사활동(4년)이 종료됐고(2023년 12월 26일), 정 전 사령관이 5.18진상조사위의 대면조사에 최종적으로 불응했기 때문에 이번에 두 건의 진정서 전문을 공개한다. 정 전 사령관은 위원회의 서면조사에만 응했다.  

정 전 특전사령관이 진정서 형식의 의견서를 제출한 건 지난 2021년 2월과 3월이었다. 먼저 2월에 제출한 진정서는 총 9쪽의 분량이다. 여기에서는 ▲특전사 충정부대 작전명령 ▲광주 출동 경위 ▲실탄 분배와 자위권 발동 지시 ▲작전 지휘 이원화와 지휘소 설치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에게 전두환 장군 친서 전달 ▲오인사격 현장 방문과 부상자 위문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의 광주 출동 ▲5.17전군주요지휘관회의 계엄확대 발언 ▲허삼수의 진압작전 조기 실시와 헬기 동원 건의 ▲노태우 대통령에 의한 5.18 책임자 매도 등을 서술했다. 


3월에 제출한 추가 진정서는 총 7쪽의 분량이다. 정 전 사령관은 "2021년 2월 제출한 진정서에 누락되었던 1980년 5월 이전과 이후 있었던 월별 중요사건 중 기억이 나는 내용에 대하여 추가 진술서를 제출한다"라고 설명했다. 추가 진정서에는 ▲민정당(민주정의당)의 창당 자금 모금 ▲언론통폐합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립 참여 ▲보안사령관 보직 관련 노태우 장군과의 갈등 ▲고건 교통부 장관 입각 추천 ▲대통령 임기 6년을 7년으로 조작한 사건 ▲보안반장 김충립 소령 강제전역 사건 등이 담겨 있다.

정 전 사령관이 두 건의 진정서를 5.18진상조사위에 제출한 것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진정서에서 "1996년 재판에서 처벌을 받았으나 본인은 전두환 장군과 공모한 사실이 없고, 예하 여단을 타부대로 작전배속시켜 작전지휘권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전사령관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것이 억울하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5.18진상조사위에서 5.18에 대해 재조사한다고 하기에 진정서를 제출하니 잘잘못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여 죽기 전에 다소간에 명예를 회복시켜 주시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7개 여단 모두 타부대에 배속, 내 지휘하에 병력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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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4일 오전 서울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제1회 특전사마라톤 대회' 개회식에서 12.12쿠데타, 5.18광주학살 관련자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가운데)과 정호용 전 국방장관이 특전사전우회 자문위원과 회장의 자격으로 연단에 앉아 있다. ⓒ 권우성

   
두 건의 진정서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역시 5.18 당시 자신의 행적과 역할에 관한 내용이다. 그 핵심은 "예하여단을 타부대에 작전배속시켜 나에게는 작전지휘권이 전혀 없었다"였다. 

정 전 사령관은 "예하부대로 1, 3, 5, 7, 9, 11, 13여단 등 7개 여단을 소유하고 있으나 계엄 이후 7개 여단이 모두 타부대에 배속되어 본인의 지휘하에는 병력이 한 명도 없었다"라며 "따라서 본인은 5월 17일부터 20일 오전까지 천호동 소재 사령관 집무실에서 여러 여단의 행정지원 업무만 수행하고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광주와 서울 간의 유무선 통신을 통제하고 광주 현지와 서울 계엄사령부 간에 연락 임무를 하고 예하 여단에 인사와 군수지원 업무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보안반장 김충립 소령의 조언에 따라 보안반장이 요청하여 배속된 헬기를 이용해 광주 현지를 방문하여 예하 여단의 인사와 군수 행정 지원도 해주고, 광주 현황을 계엄사령부에 전달할 목적으로 광주에 간 것일 뿐 육군본부나 보안사령관 등 상부의 지시나 명령으로 출동한 것이 아니다."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확정했다. 이보다 앞서 보안사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비상계엄 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국보위)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해둔 상태였다. '시국수습방안'이라고 하지만 '신군부집권시나리오'였다. 정 전 사령관에 따르면, 특전사는 5월 17일 밤 10시 30분 육군본부 작전명령에 따라 특전사의 시위 진압부대('충정부대')을 출동지역 사령관에게 작전배속시켰다. '작전배속'이란 예하부대의 작전지휘권을 배속을 받는 부대에 넘기는 것을 말한다.

정 전 사령관은 "육군본부 작전명령에 따라 충정부대(특전사의 시위진압부대)를 지시한 곳에 배치하고, 출동지역 사령관에게 작전배속시키라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고, 본인이 부대 배치를 한 사실이 없는데 본인이 관여한 것처럼 조사된 것을 재조사해 진실을 규명해주기 바란다"라는 내용이었다. 

20일부터 27일까지 총 81시간 광주에 머물러.. "작전수행업무와 관련없는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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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이 지난 2021년 2월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제출한 진정서의 마지막 페이지. 정 전 사령관의 도장과 서명이 있다. ⓒ 구영식

 
문제는 정 전 사령관이 5.18 당시 몇 차례 광주를 방문한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그가 5.18진상조사위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5월 20일 5시간, 21일과 22일 25시간, 23일 46시간, 26일과 27일 5시간 등 4일에 걸쳐 총 81시간(3일 8시간)을 광주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에 광주역 최초의 발포, 실탄 분배, 도청 앞 집단 발포, 자위권 발동 결정, 주남마을·송암마을 민간인 학살, 전교사령관 교체(윤홍정→소준열), 미군과의 무력진압 방침 협의, 도청소탕작전('상무충정작전') 등이 이루어졌다. 

정 전 사령관은 "작전기간 10일 중에 총 3일 정도 머물렀는데, 작전업무를 수행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본인이 작전임무를 맡았다면 현지에 24시간 상주해야 한다"라며 "따라서 본인이 작전업무를 수행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988년 청문회 당시에도 나왔던 '특전사령관 작전지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웅 사단장이 1988년 청문회에서 지휘소를 설치하고 본인이 작전지휘를 하였으며 PRC-25 무전기로 비행기 내에서나 서울에서도 지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본인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본인은 실제로 (광주에 투입된) 3, 7, 11여단의 작전업무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예하 여단장들의 상관은 작전배속된 31사단장 정웅 사단장과 전교사령관(전투병과교육사령관) 윤홍정 장군인데 본인이 그분들의 권리와 책임에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 현지를 방문하여 작전수행업무와 관련없는 지원을 했을 뿐입니다."

그동안 5.18 당시 발포 등 작전지휘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계엄사(계엄사령부) 라인'과 '보안사(국군보안사령부) 라인'으로 이원화돼 있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돼 왔다. 그런 가운데 정 전 사령관은 '계엄사령부(육군본부)-2군사령부-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31사단-공수여단'이라는 정식지휘계통를 통해 작전지휘권이 행사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전교사령관 취임식에는 참석... "하지만 전두환 메시지 전달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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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항쟁 ⓒ 5.18기념재단

 
네 차례에 걸친 정호용 전 사령관의 광주 방문에는 소준열 전교사령관 취임식, 11공수여단과 전교사 보병학교 병사들 간 오인사격 현장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소준열 사령관은 5.18 당시 시위대 진압 임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5.18 이후 육군참모차장과 1군사령관 등을 지낸 뒤 1983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소준열 전교사령관 취임식 참석과 관련, 정 전 사령관은 "본인은 (5월) 21일 오후 광주에 도착해서 22일 소준열 장군 취임식에는 참여하였으나 전(두환) 장군의 메시지를 전한 사실이 없다"라며 "변호사를 통해 소준열 장군이 전두환 장군 메시지를 23일 또는 24일 본인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본인은 모르는 일이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11공수여단과 전교사 보병학교 병사들 간 오인사격 현장 방문'과 관련해서는 "(5월) 23일 오후 3시 광주에 가서 24일 효천역 부근에서 11공수 여단과 보병학교 병사들 간에 오인사격으로 희생자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고 현장에 갔었고, 병원에 문병을 갔다가 야간이라 헬기비행이 어려워 다음날 참모 차장 비행기 편으로 상경한 사실은 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후생복지를 위해 활동한 것일 뿐 작전임무와 관련이 없음에도 작전지휘를 한 것처럼 알려진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거듭 작전지휘권 행사 의혹을 일축했다.   

이와 함께 정 전 사령관은 전남도청소탕작전 전인 5월 26일 저녁 8시 헬기로 광주에 출동했을 때의 상황도 서술했다. 5월 26일 오후 5시부터 3시간 동안 폭우가 멈추지 않자, 헬기 조종사는 "비행 절대 불가 상황"이라고 보고했고, 김충립 보안반장도 그에게 "도청탈환작전에 참여해야 할 책임이 없지 않느냐? 그리고 위험하니 광주 가는 것을 포기하라"라고 수차례 건의했다. 하지만 정 전 사령관은 "아니다, 내가 현지에 가 있어야 군인들이 경거망동을 못한다, 내가 현지에 있어야 시민군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 그러니 사고가 나더라도 가봐야 한다"라며 헬기로 출발했다고 전했다. 

"실탄 지급, 자위권 발동, 발포 등 사격명령과는 전혀 상관없어" 

정 전 사령관은 실탄 지급와 자위권 발동, 발포 등 사격명령도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5.17전군주요지휘관회에서 자신이 계엄 확대를 강조하며 강경발언에 나선 것은 "집권시나리오나 정국수습방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국이 혼란하니 계엄령 하에서 군이 질서를 강하게 잡아야 한다는 취지였다"라고 해명했다. 추가로 제출한 진정서에서도 "'계엄하에서 학생 데모가 심하고, 재야정치권이 정국을 혼란시키는 행위를 군 지휘관들이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적인 발언을 한 것이고, 집권 계획 같은 내용은 전혀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5.17전군주요지휘관 회의록을 보면, 정 전 사령관은 계엄 확대와 군의 정치 개입에는 찬성하면서도 무력 사용에는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지금은 내환의 시대입니다"라며 "군부가 정치에 관여 안 함으로써 사회안정이 돌아온다면 즉시 (계엄을) 해제할 수밖에 없지, 칼과 전차를 갖다대겠습니까?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그땐 늦습니다"라고 말했다. 

"소수 주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대다수는) 비상계엄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개회되면 국가를 오도할 사례가 많아집니다. 우리나라의 장래가 극히 염려되는 시점입니다. 전 국민이 모여서 비상대책회의를 설치하여 남북타개가 요망됩니다."

관련 회의록을 공개한 적이 있는 김용삼 현 <펜앤드마이크> 대기자(전 <월간조선> 편집장)는 "회의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영복 (국방)장관은 반복해서 '계엄지역 전국 확대'와 '군이 개입하여 정치풍토 쇄신'을 주장하고 있으며, 정호용(특전사령관), 노태우(수경사령관) 등이 분위기를 잡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장세동의 광주행, '보안사 라인'에 의한 5.18 진압 가능성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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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가 사망한 2021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씨 자택에서 측근 장세동씨가 조문을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그런데 정 전 사령관이 '전두환의 분신'인 장세동 특전사 작전처장의 광주행을 증언하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진정서의 '장세동 외 5인의 광주 출동건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라는 항목에서 "5.18기간 동안 작전참모를 찾았더니 광주에 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라며 "광주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며 5.18 당시 만난 기억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장세동 작전참모로부터 광주에 간다는 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고, 광주에 가서 무슨 일을 하였는가에 대한 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5.18 당시 특전사에 근무했던 박아무개 하사관도 지난 2022년 5.18진상조사위의 면담조사에서 '장세동의 광주행' 증언을 내놓았다. 박 하사관은 "장세동 처장이 광주에 갔다 왔다, 나중에 (작전이) 끝나고 온 것 같다"라며 "나중에 '마침내 일을 다 끝냈다'고 전화가 왔었다"라고 말했다. 김아무개 대위는 "(장세동 처장의 파워가) 아주 막강했다"라며 "(정호용) 사령관보다 더 파워가 있었다, 정 사령관도 장세동 대령을 무시하지 못했다"라고 '장세동의 특별한 지위'를 증언했다.     

특전사 보안반장으로 있으면서 특전사령관(정호용)의 동향을 관찰해 보안사에 보고했던 김충립 전 5.18진상조사위 전문위원도 이미 지난 2018년 5월 두 차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장세동이 5월 17일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기 수일 전에 광주에 내려갔다'라는 증언을 내놓은 바 있다. 김 전 위원은 "1980년 5월 17일 전국으로 계엄을 확대하는 조치가 있었고, 거기에 따라 병력 투입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 이전에 이미 장세동이 광주에 내려갔다"라며 "장세동이 내려갈 때부터 병력출동, 부대배치, 작전계획 등이 다 수립돼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형식적으로 보면) 계엄 확대는 계엄사에서 나오지만 계엄 확대에 대비하는 것은 (신군부의) 핵심 인물들이 했다. 계엄사가 5월 17일 병력 투입을 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전에 광주 '소요'에 대비하기 위한 병력 배치가 보안사에 의해 이뤄졌다."

'장세동이 5.18 수일 전에 광주에 내려갔다'는 증언들은 5.18 진압이 '보안사 라인'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장세동 전 처장도 지난 2019년 3월 MBC 탐사보도프로그램 '스트레이트'에 "내가 (광주에 간 것은) (5월) 14일~18일 사이"라며 "마지막 작전은 보고 올라왔지"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관련기사]
"장세동은 5·18 수일 전에 왜 광주에 내려갔을까?" http://bit.ly/99vsxi
"5·18 '북한-미국 개입설'은 사실무근" http://bit.ly/dsudg4
[단독] 드디어 입 연 정호용 "노태우가 날 5.18 책임자로 몰아 제거" https://omn.kr/1t84i
"정호용 특전사 사령관, 5.18 작전지휘에서 벗어나 있었다" https://omn.kr/1yxvi
[추적]"5.18 수일 전 광주 간 장세동, '마침내 일 다 끝냈다'고 전화" https://omn.kr/1yz0r
정호용 전 사령관, 5.18 관련 답변서 제출.. 대면조사는 '불응' https://omn.kr/1zifd
[단독] "5.18 당시 광주 간 장세동, '전두환 분신' 평가 받았다" https://omn.kr/1zl5h
[단독] 신군부 5.18 '헬기 사격' 부인했지만.."허삼수는 '헬기 작전' 말했다" https://omn.kr/1zlsi
#정호용 #51518광주민주화운동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두환 #장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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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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