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대책, 뭐 하나 시원하게 해결된 게 없어요"

[인터뷰] 안상미 미추홀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장

등록 2024.01.23 11:14수정 2024.01.23 11:14
0
"모든 피해가 평등하다면 모든 책임도 평등하다!"
"피해자들 잘못이 아니다. 제도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 안상미 미추홀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장

지난해 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로부터 시작하여 경기 수원시, 서울 강서구, 경기 화성시 동탄, 부산, 대전, 전북 완주군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전세사기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또 어느 곳에서 전세사기 뇌관이 터질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전세사기 사태는 건축주, 분양사,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 등 주택시장의 건전한 작동을 위해 자기 본분을 바르게 수행해야 할 역할자들이 전세 지원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서민들의 소중한 재산을 갈취한 조직 범죄입니다.

전세사기로 이미 목숨을 잃고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지금도 전세지옥이라 불릴 만한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지원과 대책이 조속히 마련되길 바랍니다. 피해 상황을 먼저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지난 11월 7일 안상미 위원장님 자택이자 미추홀전세사기피해대책위 사무실에서 안 위원장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 먼저 이번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 상황이 어떻게 되나요?
초창기 조사할 때는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씨 피해자들만 총 2864세대였어요. 이 중에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세대수가 있고, 형사가 진행이 안 되고 있는 상황도 있어요. 무엇보다 남모씨 피해자들 중에서만 4명이 사망하셨습니다. 강서구에서도 전세사기 피해로 1명이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고요.

최근 대전, 수원, 부산 등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터지고 있는데 이게 전국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는 게 제도가 잘못돼 있기 때문입니다. 악용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나홀로 아파트라든지 겉으로 보기 좋은 괜찮은 빌라 이런 곳들은 다 대상이 됐다고 보여요. 또 무자본 갭투기 강연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단돈 500만 원이면 몇 채를 살 수 있다며 무자본 갭투기를 그렇게 활성화 해도 법의 제제가 없었어요.

- '전세사기 특별법'이 지난 6월 1일부터 시행중인데 피해자들 입장에서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특별법에 의해 피해자 결정을 받은 사람 중에 지원책을 쓰는 사람은 17% 정도밖에 안 됩니다. 저도 피해자 결정을 받는 데까지 2개월 넘게 걸렸는데요. 그렇게 피해자 결정을 받고도 거기서 또 조건을 달아서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렇습니다. 이 집을 내가 낙찰받거나 최우선변제금 받고 나가거나 해야 하는데 지금 낙찰에 관해서 우선매수권을 준다고 해서 피해자들이 다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실텐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최고가 우선매수권이다 보니 나보다 누군가가 높은 금액을 써버리면 내가 그 금액을 따라가야 돼요. 피해자들이 우선매수권을 써서 하려는 건 이 집을 보증금을 합한 낙찰가로 최대한 시세에 근접한 낮은 금액에 산 후 시세대로라도 되팔아서 손해를 좀 보더라도 내 보증금은 회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건데, 피해자만 경매를 하는 게 아니라 일반꾼들이 경매를 하니까 싸게 살 수가 없어요. 피해를 보전해보겠다는 건데 이것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소액임차인들에게 최우선 변제를 해주는 최우선변제금도 못 받는 피해자들이 많습니다. 저희 아파트만 해도 30%가 보증금이 8천만 원이 넘어서 한 푼도 못 받았어요. 전국적으로는 더 심각합니다. 주거권네트워크와 한국도시연구소가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우선변제금 못 받은 피해자들이 71.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우선변제금 기준이 현재 인천은 1억 4천만 원 이하면 4800만 원을 보호해주게 되어 있는데, 이 집에 근저당이 2015년에 있는 거예요. 그러면 2023년 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2015년 기준이 적용돼서 8천만 원 이하일 때 2700만 원 보호해준 과거 기준을 따라가니까 그 사이 전세값이 올랐으니 모두 해당이 안 되는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건데, 특별법에서 이런 걸 바꿔줘야 되는데 이런 것조차 들어가지 않았어요. 경매 유예 조치도 경매만 유예지 공매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뭐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는 게 없는데 정부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엄청난 지원을 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거 같아 답답합니다.
 
a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가로막는 국민의힘을 규탄하며 한동훈 비대위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들을 하고 계신가요?
저희는 "선구제 후회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집이라는 담보를 가지고 있잖아요. 코인사기처럼 아무런 담보가 없는 것이 아니거든요. 저희가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보증금 채권을 정부가 일괄적으로 사서 거기에 따라오는 문제들을 정부가 해결하는 것입니다. 선 근저당 채권도 어차피 은행 거잖아요. 은행은 어차피 이 채권 부실화돼서 싸게 넘기고 있고, 정부는 은행한테 이 채권을 싸게 넘기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이 문제를 온전히 피해자들에게 넘기다 보니 이 모든 과정을 피해자 각각이 일상은 다 내팽개치고 여기에만 매달려 엄청난 시간과 노력, 스트레스, 상처, 법무비용과 모든 것을 다 거쳐야 됩니다. 이건 정부가 없다는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우선매수권 논의할 때 저희가 계속 주장한 건 최고가 우선매수권은 안 된다, 의미가 없다는 거였어요. 최소 3차 가격 정도는 보장이 돼야 우리가 살 수 있는 건데 반영이 안 됐습니다. 선구제를 못 받는다고 하면 적어도 최우선변제금만큼은 소액임차인 기준 없애고 최소한의 보증금은 가져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하고 특별법의 지원 조건을 피해자라면 모두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희는 여러 방법을 논의해보자는 것입니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지어야 되잖아요. 항상 공급이 부족하잖아요. 이상한 순살아파트 짓고 한 칸짜리 원룸 지어서 다 공실로 두는 그런 거 하지 말고 전세사기 피해주택들 다 도심에 있고 수요가 있는 주택들입니다. 이 주택들을 은행 채권 할인해서 매입하면 정부가 일반인들 상대로 공공매입하는 주택보다 싸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럼 피해자들 보증금 주고도 정부가 이득인 부분이 있다는 거죠. 앞으로도 계속 임차할 거잖아요.

근데 보증금 돌려주는 행위 자체는 절대 할 수 없다고 원희룡 장관이 못 박은 거잖아요. 혈세를 투입할 수 없다고요. 모든 사기 피해는 평등한데 너네만 보증금 돌려줄 수 없어. 본인이 잘못해서 손해본 거를 정부한테 뜯어내려는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 거예요. 저는 국감 때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모든 피해가 평등하다면 모든 책임도 평등하다' 저희가 정부에 마냥 떼쓰는 아이처럼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이 모든 과정에 관리감독을 해야 할 주체가 관리감독을 하지 않고 오히려 사기가 일어날 수 있게끔 계단을 만들어주고 방조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 대부분 피해자들이 20-30대, 신혼부부라는 점은 어떻게 보시나요?
국토부 장관도 그렇게 얘기하는데 저는 그게 마치 사회적인 지식이 없어서 경험이 없어서 당했다는 식으로 몰고가는 거 같아 불편해요. 지금 제가 사는 피해 아파트 같은 경우도 노년층이 많고, 절대 젊은층만 당한 게 아니거든요.

20-30대가 더 많았던 이유는 원래는 20-30대가 돈이 없으니까 전세를 못 들어가잖아요. 근데 나라에서 청년들한테 전세자금대출을 너무 쉽게 많이 해준 거예요. 그러니까 너도 나도 젊은 청년들이 대출을 가지고 들어오게 된 거죠. 20-30대 피해자들이 많지만 은연중에 이들이 잘 모르거나 경험이 없어서 당했다는 식으로 이들 책임으로 떠넘기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 1년 넘게 대책위 활동하시며 많이 지치셨을텐데 지금 상황은 어떠신지요?
네 많이 지쳤습니다. 지금 여기서 그만할 수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지, 1년 동안 평일에 움직여야 되는 일들이라 제 일을 전혀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저는 내야 할 이자가 없어서 돈 안 벌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거 같은데 벌어놓은 돈 까먹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는 피해자들이 대책위에서 소리내는 거 말고는 크게 활동하기 어렵습니다. 선생님들은 몇 만명씩 모여서 집회하고 하는데 저희 피해자들은 그럴 수가 없어요. 생계를 버리고 집회를 나오질 못해요. 그래서 세입자들은 조직화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미추홀구 특정 열대여섯명이 다 하고 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돈으로 하면 되고 변호사 구해서 하고 직장이 안정적인 사람들은 양해 구하고 나가면 되지만 대부분 피해자들은 일단 돈을 벌어야 되니까 뭘 해볼 수가 없고 집회를 해도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처럼 생계를 팽개치고 붙어야 하는데 모두가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죠.

- 끝으로 피해자들이나 시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국감에서도 얘기했지만 일단 피해자들에게는 "피해자들 잘못이 아니다! 제도가 잘못된 거다. 사회적 재난이다. 그러니 숨지 말아라. 같이 목소리를 내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민들께도 이게 특정 누군가의 피해가 아닙니다. 그 피해자가 여러분 주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일 수도 있고 사촌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심지어 내 옆자리 같이 근무하는 직장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이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고 제도적인 결함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피해자의 잘못일 거라는 시선을 거둬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선구제 방안에 대해서 피해자들에게 쓰는 돈은 혈세라고 원희룡 장관이 매도했는데 나라가 국민들 지키고 살리는 게 나라 아닙니까? 우리도 다 세금내는 사람들이예요. 근데 기업들은 뭐가 잘못되면 국가에서 공적자금 쏟아부어 지원해주는 게 너무 당연하고 서민들 지원은 형평성 얘기하며 문제가 된다고 하면 그게 무슨 나라예요?

최근에도 국회가 LH의 PF사업 손실액이 1천억 원에 육박한다는 자료를 발표했는데, 공적자금 다 어디로 갔습니까? 바지 임대인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사기꾼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어요. 그렇게 나가는 돈은 지원을 해줘야 되고 피해자들 개개인을 살리는 그 돈은 인색하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피해자들은 많은 문제를 느끼고 있는데, 일반 시민들은 많이 모르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피해자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서 뭔가 이득을 얻으려거나 집 싸게 사서 나중에 되팔아서 돈 챙기려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그런 게 아닙니다. 이득을 보려는 게 아니라 살겠다고 이런다는 것을 조금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안상미 미추홀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장 ⓒ 경실련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실련도시개혁센터에서 발간하는 "도시개혁(2024년 겨울호/재창간5호)" 책자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경실련도시개혁센터 #전세사기 #사회적재난 #선구제후회수 #전세사기특별법
댓글

경실련은 특정 당파에 얽매이지 않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며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시민단체입니다. 약자를 보호하고, 시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경실련과 함께 해주세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