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전문가 10문 10답] "우선매수권 부여는 책임전가형 수단에 불과"

관리기구 신설을 통한 거래 전과정의 제도화만이 전세사기를 뿌리뽑는 근본적 해법'

등록 2024.01.23 10:41수정 2024.01.2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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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도시개혁센터에서 발간하는 <도시개혁(2024년 겨울호/재창간5호)> 책자에 실린 김천일 강남대학교 부동산건설학부 교수 인터뷰 기사입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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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가로막는 국민의힘을 규탄하며 한동훈 비대위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 먼저 이번 대규모 전세사기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큰돈이 오고 가는 사(私)금융 수단으로서의 전세를 둘러싼 지원제도에 대한 감시·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이번 전세사기 사태를 낳은 근본적인 원인일 것입니다. 무등록 부동산 업자들이 몇백 채나 되는 주택들을 문어발식으로 사드릴 때 금융기관은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않고 이들에게 대출을 남발하였습니다. 수원 세 모녀는 업자도 아니고 겉보기에는 일반인인데 어떻게 빌라 5백여 채 갭투자가 가능했던 것인지, 화성 동탄에서는 어떻게 아내 명의로 오피스텔 196채를 보유할 수 있었는지 원인 진단을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자동차 보험사기 수법이 전세 보증보험에 악의적으로 활용되어 애초에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었던 건축업자들이 중개업자들과 모의하여 범죄수익을 취했습니다. 세입자도 이러한 사기 행각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수사중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보험사기에 의해 보증기관이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경우 공사의 자본금으로 보증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자본금의 대부분은 주택도시기금의 출자금입니다. 그러므로 대위변제 후 채권회수가 어려워지면 공사의 다른 공익적 보증상품 운용 여력이 감소하게 되고, 주택도시기금이 추가로 출자금을 공사에 지원하게 되면 다른 주거복지사업이 축소될 수 있고, 여유자금 운용 등 기금 운용의 안정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보증기관만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세입자의 대항력이 전입신고 후 다음 날에 발생하는 점을 악용하여 집주인이 전세 계약 당일 대부업체에 고액의 근저당을 설정할 수 있는 제도의 허점에 대해서는 과거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지금까지도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집주인의 경제 상황 및 주택에 대한 정보를 세입자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계약 당시 뿐만 아니라 임대차 기간 동안 발생하는 변동사항을 세입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지금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큰돈이 오고 가는 계약이 공증없이 성사되는 관행도 문제겠지요. 미국에서 주택을 거래할 때는 드물게 개인 간 거래도 하지만 통상 에스크로 과정(escrow process)이라는 것이 있어서 에스크로 전문회사, 법무법인, 등기회사 등이 주택거래 당사자들에 대한 문제는 없는지, 주택에 대한 감정평가는 잘 이루어졌는지, 계약 과정은 문제가 없는지, 주택의 상태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다 확인을 하고, 에스크로 회사가 매도인에게 매매대금을 입금합니다.

전세사기 범죄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대규모 전세사기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 사기세력들이 등록임대사업자 제도와 무분별한 전세대출·보증보험을 악용한 부분에 대해 정부 책임은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지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정책은 어떻게 개선돼야 할까요?

"전술하였듯이 전세를 둘러싼 정책과 제도들에 허점이 많으며 정부는 관리·감독 태만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주택시장에서 전세라는 관행이 하나의 제도로서 정착되어 온 이상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책 운영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지원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기존 보증금 대출에 대해서는 채무조정을 해주고 신용보강을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기존 개인회생 절차로는 부족합니다. 피해자들이 자구책을 스스로 찾느라 동분서주하는 속에서 일을 그만두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본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해당 사업장이 이들에 대해 일시 휴직 허가, 연차 지원, 근무시간 조정 등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 정부가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주는 수단도 고려해야 합니다. 정신건강 상담 지원도 강화해야 합니다. 정부는 피해 당사자들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밑바닥부터 세밀하게 살펴주길 바랍니다.


의무사항 준수 위반 임대업자, 법인화된 사기세력, 변제 능력이 없는 개인이 갭투자를 활용하여 문어발식으로 주택을 구매할 수 있었던 체계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대출실적을 쌓기 위해 이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했던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는 재발 방지 대책이 수립되어야 하며, 금융감독원은 주택과 관련한 대출에 대해서는 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아래 사업장 단위로까지 상시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전세사기 사태를 들여다보면 사기세력의 문서위조가 서민들의 재산을 갈취하는데 효과적으로 악용되었습니다. 서류를 위조하여 명의만 집주인인 사람이 몰래 전입하는 주민등록법 위반 사태가 발생하였으며,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면 금융기관이 대출을 꺼리지만 문서위조로 이를 피해갔습니다. 문서위조가 작동하지 않도록 전자문서 체계 중심으로 서류심사 시스템을 고도화해야 합니다.

정보 관리체계 개선은 집주인 및 해당 주택에 대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집주인이 고액체납자일 경우 이 사항은 등기부등본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세금체납이 입주시점보다 앞서게 되어 세무서가 순선위채권자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주인에 대한 경제상황을 세입자가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서울 강서구 전세사기 피해자는 전세계약 연장을 앞두고 등기를 뗐는데 등기에 가압류가 걸려있는 것을 세입자가 발견했습니다. 앞으로는 집주인이 바뀌거나 등기에 변동사항이 생기면 세입자에게 문자가 가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즉, 집주인과 세입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을 없애야한다는 뜻입니다. 집주인이 전세를 주는 경우, 집주인에 대한 필수 정보 및 주택에 대한 필수 정보를 집을 구하는 자에게 제공한다는 동의를 한 후, 동의를 하면 관련 행정정보가 잠재적 세입자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전산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정보를 열람하는 자는 정보 보안에 서약하고, 전산시스템은 누가 언제 해당 정보를 열람했는지 로그 기록을 관리해야 합니다. 세입자가 큰돈을 맡기므로 집주인도 그러한 수고로움을 감수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IT 강국이고 주민등록제도가 잘 갖춰진 국가인데 안될 게 있나요?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면 개정해야 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태를 언제까지 지켜보기만 해야 합니까? 정보의 통합 관리는 개별 주민센터나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세제도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면 기획재정부 혹은 국토교통부 산하 '(가칭)전월세관리청' 정도의 기관이 설치되어야 합니다. 이번 특별법에 따라 한시적으로 운영될 전세피해지원센터로는 부족합니다. 새로운 정식 기관이 전월세시장 모니터링도 하고, 전월세 계약 관련 정보 관리도 전담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①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제도 확대 및 보증료율 인상, ②전세대출 지원 축소, ③결제대금을 임대기간 동안 예치하는 에스크로(escrow) 제도를 조건부로 도입하는 혼합보증제도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첫 번째 제안에 대해서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 전세의 안전성을 제고하는 측면이 있지만, 고의적 채무불이행의 위험을 보증기관이 떠안게 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제도 보완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제안에 대해서는 기본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출한도, 대출금리, 대출기간 등 대출조건이 세밀히 설계되어야 합니다. 목돈 마련이 어려운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이른바 '전세난민'이 되지 않도록 보완대책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제안은, 전세가율이 해당 지역의 LTV 규제 이하인 경우에는 기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를 활용하고, 전세가율이 LTV 규제 이상이면 그 이상의 보증금에 대해서는 에스크로 제도를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상의 보증금"이 전체 대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지역에 따라 다를 것이므로, 에스크로에 예치해야 하는 금액이 적은 곳으로 전세공급이 쏠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하여 전세수급에 있어 지역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 피해주택들이 대부분 나홀로 아파트나 빌라 등 아파트와 달리 시세파악에 어려움이 있는 주택들이었는데, 아파트 외의 주택들 시세도 아파트처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시세 정보의 취득에 대해서는 세입자에게 문자로 전해질 수 있는 수준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현행 제도하에서도 국토교통부 공시가격 시스템에서 공시가격을, 실거래가 시스템에서 실거래가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공시가격은 시세보다 일반적으로 낮으므로 실거래 정보가 부족한 경우 적정 시세에 대해서는 세입자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신축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가치 측정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감정평가 및 공시제도의 영역인데요, 한국감정평가사협회도 그렇거니와 개별 감정평가 법인이 자체적으로 부동산 자동평가모형(AVM: Automated Valuation Model) 구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해당 임차주택으로부터 거리가 얼마나 떨어진 곳에, 해당 임차주택과 비슷한 유형의 주택의 공시가격 혹은 실거래가격이 어느 정도로 형성되어 있는지 파악되어야 하고 그 정보가 갱신되는 데로 과거 자료와 함께 제공되어야 합니다. 서민들이 의사결정을 하는데 실질적 도움이 될 수준으로 부동산 감정평가 프롭테크 영역이 발전하기를 고대합니다. 이러한 기술진보가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공시제도의 보완도 필요합니다."

- 6월부터 시행중인 '전세사기 특별법'이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와 추후 개선 및 보완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늦은 감이 있지만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피해자가 공식 지원대상으로 인정을 받아 경·공매 유예, 긴급 주거지원, 생계지원이 주어진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보완해야 할 사항도 있겠지요. 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가 진행되는 경우를 지원대상 조건으로 넣은 부분에 대해서는 완화해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경·공매가 진행될 때까지 세입자는 보증금의 일부에 대해서도 돌려받지 못하고 임차주택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음이 증명된다면 경·공매가 진행되지 않더라도 지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임대인의 사기 의도 입증, 다수의 피해자 발생, 수사기관의 수사 개시 항목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데 역시 이 부분도 재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지원대상의 범위 설정에 있어, "일반적인 역전세난 피해자와 구별하겠다"라고 하여 범위를 좁게 잡을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역전제난 피해자를 일부 포함하더라도 범위의 경계를 더 넓혀서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진심을 다해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우선매수권이 과연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가격이라고 판단하여 우선매수권을 행사해서 낙찰을 받는다 하더라도 선순위저당 금액을 법원에 경락대금으로 납부하고 기존 전세대출금도 곧바로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낙찰자금을 저리로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결국 또 빚을 내는 것입니다. 국토부장관은 "낙찰받은 주택의 가격이 올라가면 피해 보증금도 회수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했지만, 가격은 상승할수도 있고, 정체될수도 있고, 하락할수도 있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발언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내년에도 부동산 시장은 소강상태를 보일 것입니다. 시장 예측을 하는 여러 기관들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주택가격이 최고점 대비 반토막이 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부동산 PF 사업 부실화의 뇌관이 내년에 터질 것이라는 관측도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가격이 오른다면 언제 어느정도까지 오른다는 말일까요?

가격 상승을 기대할 상황이 아니거나 낙찰자금 대출 여력이 없다면 LH에 우선매수권을 넘기게 됩니다. 그런데 LH가 우선 매수를 할 때 내부적으로 가격상한선을 설정한다고 합니다. 과거 LH는 강북구 어느 주택을 매입임대주택으로 매수했다가 고가 매입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세사기 사태에 대해서도 너무 높게 매수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기존 매입임대주택의 경우와 이번 경우를 동일한 사안으로 봐야할까요? 내부 가격상한선이 어느 정도로 책정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본다면 다소 비싸게 매입을 해서라도 피해자의 주거안정을 우선시하는 방향이 옳다고 봅니다. 한편, LH가 해당 주택을 매입하여 피해자에게 낮은 임대료로 장기 거주하도록 한다는 발상도 완벽한 처방은 아닙니다. 주어진 예산제약하에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곳에 살 수 있게 하는 것도 주거복지 정책이 해야 할 일입니다. 보증금의 대부분을 잃은 상태에서 살다가, 직장을 옮기거나 아이를 위해 더 넓은 집이 필요하게 되는 등 주거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은 '모든 피해는 평등하다'라며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선을 그었는데, 금융사기나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을 생각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 지원은 불가하다는 정부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매수권을 피해자가 직접 행사하든 LH에게 넘기든 경매에는 제3자가 참여하게 되고 따라서 결과의 불확실성이 상존합니다.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만큼 만족스러운 낙찰가격이 형성될때까지 경매 진행 상황을 관찰해야 합니다. 또한 해당 지역 시세에 비해 경매물건의 가치가 어느 정도나 낮은 것인지 판단도 해야 하는데, 생업에 바쁜 일반 서민인 피해자가 경매 전문가는 아니지 않습니까?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이고 신속하며 근본적인 대책은 아닌 것입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정부가 전세보증금 채권을 매입해서 전액은 아니더라도 피해액의 상당액을 세입자에게 먼저 보상하는 방안을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다시 검토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국토부장관은 "그런 선례를 남기면 안 된다"라고 했는데,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 관리·감독 체계를 구축하고 관련 제도 개선을 해야하는 것이지 또 이런 사태가 발생할 걱정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미분양 주택 정부 매입 검토를 지시했었습니다. 건설사들의 연쇄 도산 및 이로 인한 금융권 위기를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미분양이 번지게 되면 걷잡을 수가 없고 어떠한 정책 수단도 효과가 반감된다"라고 발언하였습니다. 건설사 돕듯이, 부실 금융기관을 돕듯이 서민들도 좀 도와주면 어떨까요?"

- 그렇다면 현재 피해자 분들이 요구하는 '선구제 후회수(후 구상권청구)' 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근저당이 설정된 집에 세입자로 들어간 것이 무조건 개인의 잘못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전세 관련 제도의 맹점에 대해서 정부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과거 참혹했던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피해자에 대해서 선(先)보상·후(後)구상이 제안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전세사기 사태에서는 피해액이 크고, 피해자 범위를 정하는 부분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보상액을 어느 정도까지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하고, 차후 보상을 만족스럽게 받은 세입자와 그렇지 못한 세입자 간 갈등이 예상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우선매수권 같은 책임전가형 대책에 머무르지 말고 정부가 채권 회수 리스크를 떠안더라도 지원 방향을 일단은 선구제로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피해자라 하더라도 경제적 여력이 어느 정도 있으신 분들도 있고, 한부모가정과 같이 신속한 지원이 절실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일단은 선구제로 하고, 지원대상 및 보상액을 차등화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만약 정말 정부가 죽어도 선구제는 싫다고 한다면, ①현금 선구제의 차등 적용, ②우선매수권 행사, ③우선매수권을 LH에 양도 후 피해주택에 일정기간 동안 무상으로 거주, ④긴급거처에 일정기간 동안 무상으로 거주와 같은 대안들을 고안하고, 피해자들이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전문가와 상담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안은 어떨지요? 지금 당장 현금이 필요한 분들도 있고, 일단 주택에 안정적으로 거주하는 것이 중요한 분들도 있고, 금액조건이 적당히 맞으면 주택을 소유해보겠다는 분들도 있을테니까요."

- 사기피해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전환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택지개발로 공공주택을 건설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도심 곳곳에 산재한 비아파트형 주거 공간, 주택이외의 거처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주거 기능을 제공하는 공간을 공공자산으로 확보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현재 피해자가 우선매수권을 LH에 넘기면 LH가 경매에 참여하여 매입하도록 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최근(11월 27일 기준)까지 LH 매입건수는 없다고 합니다. 국토교통부에서, "이미 계약이 돼서 전세 기간이 만료돼 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예방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라고 했는데요, 그렇다고 손 놓고만 있지 말고, 제 생각에는 피해주택이 경·공매 절차로 넘어가기 전에,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있는 주택을 공공기관이 점검하여, 주택소유자와 사전에 협상하여 위험 주택을 확보하는 방안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행한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실거래 마이크로데이터를 활용해서 깡통전세 위험가구를 분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택에 대해서 금융대출, 보증금 수준, 선순위 등기 내역을 공공기관이 점검하여 위험을 사전에 탐지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 전세사기, 깡통전세, 역전세난 등 온갖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내 집 마련을 위한 주거사다리 역할을 해온 전세제도를 이참에 폐지하자는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는데, 전세제도 폐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폐지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요?

"엄밀히 말하자면 전세는 개인 간 거래 "관행"이므로 "제도"는 아닙니다. 다만, 개인 간 채권계약인 전세계약을 물권계약의 수준으로 보호하고자 주택임대차보호법도 만들고, 확정일자 등 관련 "제도"들도 고안한 것이지요. 또한 전세금 반환보증 및 전세대출 보증 "제도"도 만들어서 집주인 및 세입자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든 것입니다. 즉, "관행"이 잘 작동하도록 "제도화"를 한 것입니다.

제도를 폐지하는 방법 중 가장 강력한 수단은 보호법, 등기법, 보증보험, 전세대출을 모두 폐지하고, 개인 간 전세거래를 법으로 금지시켜 금융범죄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개인 간 전세금 거래가 불법으로 이루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사례가 속출할 것입니다. 또한 전세금 거래를 금지시킬 때 전세금이 어느 정도 규모이면 불법인지 그 액수도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전세는 개인들이 만들어 낸 자연발생적 발명품이므로 공공이 무작정 없앨 수는 없습니다. 전세가 부작용 없이 작동하면 집주인, 세입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세사기 사태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여전히 월세보다는 전세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최근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분도 지원 대출금에 자기 자금을 보태서 반전세 집으로 옮겼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깡통전세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증금을 떼이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세를 지탱하고 있는 제도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겠지요.

전세권설정등기를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전세권 등기가 최선순위(最先順位)가 아니면서 주택에 설정된 채권이 애초에 많은 경우는 낙찰대금이 바닥나서 보증금의 상당액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70% 이상이면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의도 금융기관에서 나왔습니다만, 주택가격이 많이 내려가고 세입자가 후순위채권자이면 세입자의 보증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여전합니다. 이번 전세사기 사태에서는 신규 빌라를 중심으로 감정평가액을 부풀리는 방식이 사용되었으므로 전세가율 기준을 적용하려면 이러한 "업(UP)" 감정에 대한 대응 조치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전세계약은 별도의 공증없이 공인중개사의 중개로 계약이 이루어집니다. 시세 1억원 주택의 집주인이 2천만원을 은행에서 빌리고 8천만원을 전세 놓기를 원할 경우, 중개업소에는 전세를 7천만원에 놓고, 세입자가 7천만원에 대해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나머지 자기자본 1천만원을 집주인에게 맡기는 이면계약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즉, 전세가율 70% 제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 하는 얘기입니다. 70%라는 기준을 지역 및 주택유형 구분 없이 일괄 적용할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계산을 정밀하게 해서 지역 및 주택유형에 따라 전세가율 상한 비율을 차등화해도 문제인데요, 그렇게 차등화가 되면, 전세자금을 더 많이 조달할 수 있는 지역 및 주택유형으로 전세공급이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고, 전세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지역은 전세공급이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전세사기 피해를 예방하고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전월세 계약의 전 과정을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가칭)전월세관리청 전월세계약시스템(아래 시스템)'을 우선 구축합니다. 앞으로 집주인이 법으로 정해진 임대보증금액 이상으로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집주인이 고용한 공인중개사가 시스템에 해당 물건을 등록해야 합니다. 등록할 때 먼저 집주인의 경제 상황 정보 제공에 동의해야 합니다. 동의를 하면 신용정보기관, 금융기관 및 세무서로부터 관련 정보가 이관되어 시스템에 저장됩니다.

다음으로 임대 줄 주택을 등록하면 주택에 대한 정보(신축여부, 공시가격, 실거래가격, 감정평가액, 신탁여부, 근저당 설정 여부, 선순위 채권액, 과거 경매물건이었는지 여부, 전세금반환보증 가입 가능 여부, 소유권 다툼 여부 등)가 임차희망자 측 공인중개사에게 제공됩니다. 주택에 대한 정보는 과거 이력도 포함되어 표시됩니다.

다음으로 집주인 측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이 원하는 임대보증금 및 월세를 입력합니다. 임차희망자는 공인중개사를 통해서 정보보호 서약서에 서명하고 집주인의 채무불이행 시 보증금 손실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평가 후 임차 신청을 합니다. 세입자가 임차 신청을 하기 전 시스템은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변제 순위 및 선순위 금액에 대해 알려주고, 위험 주택일 경우 경고해줍니다. 주택에 기(旣) 설정된 채권액이 많은 주택의 경우 임차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임차희망자가 집을 방문하여 집 상태를 확인한 후, 집주인과 임차희망자 간 상호합의에 따라 거래가 성립되면 계약서가 만들어집니다.

계약서가 만들어지면 보증기관에 계약서가 전달되어 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한 주택인지 평가를 받습니다. 반환보증 가입이 안 되는 주택으로 평가되면 계약이 무효가 됩니다. 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하면 계약서가 법무사에게 전달되고 토지와 건물 모두에 대해 전세권설정등기 절차가 시작됩니다. 현재는 전세권설정등기가 의무사항이 아니지만, 앞으로는 의무화합니다. 전세권 등기 비용과 같은 거래비용은 양측이 반반씩 부담합니다.

법무사가 개설한 임시 계좌에 임차희망자의 자기 자금 및 보증서 발급이 완료된 전세대출금이 입금됩니다. 세입자가 대출한 전세자금은 금융기관이 법무사 임시 계좌에 직접 입금합니다. 보증금 입금이 확인되면 세입자가 전세권 권리증서에 서명날인합니다. 임시 계좌에서 집주인에게 보증금이 입금되고 전세권설정등기가 완료되면, 집주인 측 공인중개사가 임차인에게 집 열쇠를 전달합니다. 이후 집주인의 경제 상태 및 주택 권리관계에 변동이 발생하면 해당 사항을 시스템이 세입자에게 문자로 전송합니다.

지금까지 전월세거래의 제도화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세부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을 것이고 불가능한 것도 있겠지만, 전세계약에 잠재된 리스크의 사전적 차단 관점에서 위와 같은 전월세거래의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세입자 주거안정을 위해 현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세입자 제도개선 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요즘 서울 일부 지역은 아파트 평균 월세가 100만원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세입자들은 매달 나가는 월세 부담을 피하고자 전세를 선호합니다. 최근 전세사기 사태에 대해 '전세대출이 전세가격 및 매매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다'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만, 무조건 전세대출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전세대출을 막으면 여력이 없는 서민들은 전세금을 구하기 위해 고금리 돈놀이를 하는 민간 사채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가족·지인에게 돈을 융통해야 할 것입니다.

전세에도 약점이 있습니다. 전세 시세가 지금 낮다고 세입자가 마냥 좋아할 상황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전세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여 2년 뒤에 전세금을 많이 올려줘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집주인 우위 시장으로서 세입자는 추가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됩니다. 그 반대의 상황은 역전세난으로서 집주인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처럼 전세가격은 변동성이 큽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세가격의 변동성이 주택매매가격의 변동성에 비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택가격에는 전세가격 변동성 리스크를 헤지(hedge)하고자 하는 프리미엄(premium)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서울 어느 공공분양주택 사업에서 전용면적 47제곱미터 주택 1채의 가격에 전세가격 변동성을 회피하고자 하는 프리미엄이 1제곱미터 당 60만원 정도 내재된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한국개발연구원, '주택 공급사업의 추가 편익 산정 방안 연구', 2022.11). 전세대출을 줄여야 한다면, 2년 뒤 전세가격이 급등할 때 그 차액에 대한 대출지원을 강화한다면 주거안정에 일단은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세입자가 대출을 추가해서 집주인에게 보증금 인상분으로 입금해 준 뒤에 역전세난 시기가 오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세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전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어 보자는 얘기입니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 공공분양주택, 공공임대주택,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매입임대주택 공급을 꾸준히 늘려가야 합니다. 필자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술하였듯이 서민들의 생활근거지 내 소형 주거공간들을 공공이 지속적으로 확보하여 도심 내 주거공간 자산을 늘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악한 주거공간들에 대해서는 리모델링 지원도 필요합니다.

다만, 그러한 도심 내 주거공간에 대한 매입·리모델링 사업을 대형 공기업들이 단기간에 대규모로 하면 안 되고, 주변 민간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소규모로, 천천히,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또한, LH, SH, iH, GH와 같이 주택공급과 운영에 전문성을 갖춘 공기업들이 소규모 풀뿌리 민간기업들과 협력하고 공기업들이 인큐베이터로서 노하우를 제공하여 도심 내 다양한 주거공간들이 마을단위에서 자생적으로 지속가능하게 공급·관리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세가 '자산형성', '주거사다리', '강제저축'의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금융기관 전세대출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과거의 얘기이고 지금은 전세대출로 전세금을 마련하기 때문에 그러한 효과들이 크지 않습니다. 앞서, 전세가격의 변동성에 대해서 논의했듯이 전세의 약점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세입자가 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을 늘리자는 말이 아니고, 세입자의 주택 소유를 위한 자산형성 프로그램에 재원을 더 투입하자는 것입니다. 영국, 싱가포르 등 해외 선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생애주기별 자산형성 지원체계 중 도입할 수 있는 부분들은 적극 도입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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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도시개혁센터 #전세사기 #우선매수권 #갭투기 #깡통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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