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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른 여름휴가는 여기입니다, 저장하세요

[서해의 보석, 신안 천사섬 24] 수국 축제와 자산어보 세트장, 도초도

등록 2024.02.02 10:25수정 2024.02.0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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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편집자말]
매년 여름 신안군 도초도에 가면 수국(水菊)의 파스텔톤 감성에 흠뻑 취할 수 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단위면적당 수국이 가장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수국공원에서는 매년 6, 7월 대규모 수국 축제가 열린다. 수국공원은 도초도 지남리의 언덕에 조성되었다. 2005년 폐교한 도초서초등학교의 터를 활용해 2014년 문을 열었다. 19만1500㎡에 90여 종 50만 그루의 수국이 자란다. 수국, 산수국, 목수국(나무수국), 제주수국, 애나벨수국, 등수국, 마이크로필라 등등.


수국공원은 전통 정원, 유리 온실, 한옥 정자, 향나무길, 홍가시나무길, 뽕나무밭, 저류지, 전망 카페 등으로 이뤄져 있다. 꽃바구니, 달, 나팔 부는 소녀상 등과 같은 포토존도 여럿 마련되어 있다. 수국공원엔 하얗고 빨간 글씨로 커다란 간판이 세워져 있다. 사람들을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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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도초도의 수국공원. 폐교 터에 조성된 이 공원에선 수국, 산수국, 나무수국 등 90여 종 50만 그루의 수국이 자란다.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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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 도초도 수국공원에서 열리는 수국 축제. ⓒ 신안군

 
이세돌 어머니가 수국 화환을 머리에 두른 까닭

요즘 수국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축하 꽃다발에 수국이 빠지지 않는다. 수국은 특이한 데가 있다. 작은 꽃들이 무수히 모여 커다랗고 풍성한 꽃송이를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1004개의 섬이 모여 하나가 된 신안군의 모습과 닮았다"고 한다.

토양의 성분에 따라 꽃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도 수국의 신비로움. 수국은 기본적으로 꽃이 피기 시작할 때는 녹색이 약간 들어간 흰 꽃이었다가 점차 밝은 파랑으로 변하고 나중엔 붉은 기운이 도는 자줏빛이 된다. 그런데 토양에 따라 꽃의 색이 조금씩 달라진다.

산성의 흙에서는 푸른색 꽃을 피우고 알칼리성 흙에서는 분홍색 꽃을 피운다. 중성의 흙에서는 보라색이나 자주색, 옅은 자주색의 꽃이 핀다. 줄기와 뿌리가 닿은 부분의 토양이 서로 다르면 한 그루의 수국에서도 여러 색깔의 꽃이 핀다.

이렇게 수국의 꽃 색깔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자라면서 토양의 성분에 따라 계속 변한다. 처음에는 녹색 기운을 띤 흰색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수국이 살아가는 토양의 성분에 따라 최종적으로 수국의 색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두고 "수국이야말로 우리의 인생과 닮은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수국을 재배할 때 특정 색깔의 꽃을 원하면 그에 맞는 토양으로 잘 관리를 해야 한다.


수국공원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올해 수국축제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6월 중순경 열릴 것 같다. 지난해에 4만여 명 가까이 관람객이 찾았다고 하니 올해 여름도 도초도는 수국에 취하고픈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다. 수국의 동산에서 꿈속을 걷듯 여름을 즐길 것이다.

겨울철인 요즘, 도초도 수국공원은 적요하다. 하지만 수국 대신 애기동백이 사람들을 반긴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전망 카페에 앉아 통유리 너머로 아래를 바라보니 멀지 않은 곳에 팽나무 십리길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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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공원 인근 춘경리의 ‘세돌이 엄마 수국 벽화’. 신안 비금도 출신의 바둑기사 이세돌의 어머니 박양례 씨가 수국 화환을 머리에 두른 모습이다. ⓒ 신안군

 
수국공원 주변 지남리, 지북리의 골목길을 걸으며 수국 벽화를 감상하는 것도 매력 만점이다. 민가와 창고의 담장이나 폐교한 초등학교 건물의 담장엔 페인트로 그린 수국도 있고, 타일 조각으로 표현한 수국도 있다.

춘경리엔 비금도 출신의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어머니 박양례(78) 씨가 수국 화환을 머리에 쓴 채 환하게 웃는 모습의 벽화도 있다. 이른바 '세돌이 엄마 수국 벽화'다. 남북으로 인접한 도초도와 비금도는 1996년 개통된 서남문대교를 통해 손쉽게 오갈 수 있다. 이곳에서 세돌이 엄마와 기념사진 한 컷! 기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수국공원 주자창 한편에는 간재미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 조형물 주변에서는 수국 축제와 때를 맞추어 간재미 축제도 함께 열린다. 그런데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게 간재미인지, 홍어인지, 가오리인지 구분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형물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누군가 지나가면서 "홍어가 아니라 간재미"라고 알려준다. 간재미는 홍어나 가오리보다 역삼각형 모양의 코가 많이 튀어나와 있다고 한다.

도초도에서는 3월부터 간재미가 많이 잡힌다. 주낙 어법으로 잡기 때문에 상처가 적고 싱싱해 무침, 찜으로 먹는다고 한다. 수국공원관리사무소의 한 직원은 "수국 축제에 오면 간재미를 꼭 먹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화도 선착장과 주변의 횟집에 가면 특히 간재미 회무침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수국공원 유리정원 바로 옆에는 피자집이 있다. 폐교한 도초서초등학교 건물를 활용해 2023년 문을 열었다. 도초도에서 수국도 만나고 간재미 요리도 맛보지만, 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예측불허의 신선한 경험이다.

이 피자집은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남편 사장님은 "다소 이색적인 공간이다 보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도초서초등학교 졸업생들이 찾아와 '우리 학교가 피자집으로 바뀌었네'라며 놀라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국공원 옆엔 팽나무 십리길이 있다. 화도 선착장에서 수국공원 사이 4km에 걸쳐 월포천을 따라 팽나무 700여 그루가 늘어서 있다. 신안군이 전국 곳곳에서 기증받은 수령 70년 이상 된 팽나무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방치되던 팽나무들을 하나둘 모아 이렇게 멋진 길을 조성한 것이다.

팽나무길에도 수국이 자란다. 지금은 나뭇가지만 보이지만 봄이 되고 잎이 나오면 멋진 팽나무 터널을 이룰 것이다. 6월이 되면 이 터널길도 온통 수국으로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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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공원 인근 팽나무 십리길. 신안군은 전국 각 자치단체에서 방치되던 팽나무를 한두 그루씩 기증받아 멋진 팽나무 터널을 만들었다. ⓒ 신안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자산어보> 세트장

수국은 인생을 닮았다. 아니 어쩌면 인생보다 더 인생 같은 꽃이다. 그런 수국을 생각하며 팽나무길을 가로질러 영화 <자산어보>(2021년 개봉) 촬영장으로 향한다.

이준익 감독은 수국공원 옆 발매리(發梅里, 매화가 피는 동네라는 뜻) 바닷가에 <자산어보> 세트장을 마련했다. 이 감독은 바닷가 장면 대부분은 신안군 자은도에서, 초가가 나오는 장면과 일부 바닷가 장면은 도초도 발매리의 세트장과 그 주변에서 촬영했다.

팽나무 십리길을 벗어나 발매리 표석이 나올 즈음, 멀리 능선 위로 작은 초가 한 채가 보인다. 언뜻 고인돌 같기도 한데,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라 초가 세트장에 가까워지니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초가 뒤쪽으론 길이 뚝 끊겨 가파른 경사면이고 거기 바다가 쫙 펼쳐진다. 거대한 바위도 있다. 바닷가의 거친 매력이라고 할까. 평화로운 해변과는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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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도 발매리 해안에 위치한 영화 ‘자산어보’의 초가 세트장. ⓒ 이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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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세트장에서 바라본 바다. 멀리 우이도가 보인다. 우이도는 유배객 정약전이 생을 마친 곳이다. ⓒ 이광표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을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세트장에 가면 썰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제된 느낌이라고 할까. 왠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고 어수선하다. 건물도 있고 거리도 있지만, 영상으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비현실감 같은 것이다. 그런데 도초도 세트장은 다르다. 초가 두 채, 작은 마당, 돌담. 아주 간결하다. 간명해서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뒤쪽으로는 가파른 경사와 거대한 바위, 끊임없이 밀려와 부딪히는 파도. 실제 자연을 그대로 살려 초가를 지었기에 그 감동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세트장 뒤로 펼쳐지는 가파른 해변은 적절히 아름답고 적절히 무섭다.

유배객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살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뼈저리게 사유했던 정약전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저 바다 먼발치로 정약전이 생을 마친 우이도가 보인다.

그 너머는 흑산도다. 도초도에서 배로 가면 1시간 정도. 이곳에선 바다 쪽으로 해가 진다. 석양을 배경으로 한 세트장 초가의 풍경이 환상적이다. 정약전과 <자산어보>의 분위기를 느껴보기에 제격이 아닐 수 없다.

도포 입고 입 벌린 고란리 장승

도초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은 시목(柴木)해수욕장이다. 근처에 땔감이 되는 땔나무가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선 모래밭의 휘어진 곡선이 첫눈에 확 들어온다. 해변의 곡선이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휘었다. 마치 병풍을 쳐놓은 듯 산과 주변 지형이 해안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이렇게 휘어진 모래밭이 2km에 이른다. 모래밭의 폭도 넓고 수심의 경사도 완만해 여름이면 가족 피서객들이 많이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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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 해안선이 활처럼 멋지게 휜 도초도 시목해수욕장.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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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도 고란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해온 석장승. ⓒ 이광표

 
도초도는 평야가 많다. 고란리에 들어서면 섬이 아니라 내륙의 어느 평야에 온 듯하다. 쫙 펼쳐진 겨울의 고란평야는 한적하기만 하다. 드넓은 논 사이로 쭉 뻗은 도로, 그 양옆엔 애기동백이 붉은 꽃을 피웠다. 동백을 감상하다 보면 고란마을 삼거리가 나온다. 예전에 난초가 많이 자라 고란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삼거리엔 잘생긴 석장승이 서 있다. 오랫동안 고란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해온 석장승은 머리에 갓 모양의 모자를 쓰고 몸에 도포 같은 긴 옷을 걸쳤다. 커다란 눈이 툭 튀어나왔고 입을 벌린 채 윗니와 아랫니를 활짝 드러냈다. 의관으로 보면 선비 분위기인데, 얼굴 표정은 지극히 편안하고 다소 익살스럽다. 소맷자락 밖으로 두 손을 내놓았는데 다섯 손가락을 쫙 벌리고 있다. 그 모습이 이채롭다. 어찌 보면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 표현 같기도 하다.

고란마을의 장승은 원래 목장승이었으나 지금은 석장승이다. 이와 관련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예전엔 밤이 되면 무덤에서 귀신들이 내려와 목장승을 갖고 놀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1938년 목장승을 철거하고 석장승을 세웠다. 그 뒤론 무덤 귀신이 출몰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동 제사인 당제를 지내고 한 판 굿놀이도 벌였다.

이 석장승 뒤쪽으로 고란마을이 있다. 마을의 골목은 대부분 돌담이다. 일부는 잘 보존되어 있고 일부는 무너져 내렸다. 온전한 돌담과 무너진 돌담이 서로 겹치면서 오히려 고풍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르막 골목이어서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돌담 풍경이 더욱 매력적이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강제윤, 《신안》, 21세기북스, 2021
신안군, 《사계절 꽃피는 바다 위 정원 플로피아》, 2021
이재진, 〈이렇게 많은 수국, 본 적이 있나요?〉, 《산》 2022년 6월호, 조선뉴스프레스
이주영, 〈산책로 따라 형형색색 수국에 흠뻑 빠져볼까〉, 《월간 전남매일》 2023년 7월호, 전남매일
#도초도 #수국축제 #간재미 #자산어보 #고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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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에서 문화부 기자, 정책사회부장, 오피니언팀장, 논설위원 등으로 일했고 현재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중들이 문화유산과 예술을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고 향유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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