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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걱정을 남침 부정으로 알아들은 국힘의 청취력

'전쟁 전 잦은 충돌' 이재명 신년기자회견 발언 문제 삼아... 한반도 전쟁 가능성 차단에 주력해야

등록 2024.02.02 20:21수정 2024.02.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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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3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갈수록 고조되는 남북한 대결 구도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러다 정말 전쟁 나는 것 아닌가 하는 국민의 불안 공포가 광범하게 퍼지고 있습니다"라고 한 뒤 남북 두 정권을 이렇게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시 밝힌 '담대한 구상'은 결국 온 국민의 머리 위에 놓인 거대한 시한폭탄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북한은 민족 동질성마저 부정하며 대한민국을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했습니다. 무력 도발을 이어가며 전쟁 가능성을 과시하기 바쁩니다.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런 뒤 그는 "수백만이 죽고 전 국토가 초토화된 6·25전쟁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라며 "38선에서 크고 작은 군사 충돌이 누적된 결과였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평화를 구축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것이 그의 촉구다.

그는 지금처럼 긴장 관계가 고조되면 크고 작은 충돌이 계속되다가 한국전쟁을 초래한 과거의 전철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 게임을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역사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역사 왜곡하지 말라고 대응했다. 그는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잣대로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반박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동훈 위원장은 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6·25 발발 책임이 서로 티격태격하다 어쩌다 난 것이라는 역사 왜곡을 공당 대표가 한 것에 대해 개탄한다"고 말했다. "소련과 북한이 사전에 계획해서 벌인 일"이라는 점은 "미국 문서가 아니라 소련 문서로 공개된 사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거들었다. 그는 "6·25가 크고 작은 군사 충돌이 누적된 결과라는 건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라며 "북의 남침 사실을 은폐하고 민족사 최대 비극에 양비론을 펼치는 그릇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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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연 202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 질문을 받으며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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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서울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유성호

 
한국전쟁 이전에도 군사 충돌 상당


'크고 작은 충돌의 결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는 말은 한국전쟁 발발 책임이 남북 양측에 다 있음을 강조하는 쪽에서 많이 나온다.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켰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남한의 책임도 적지 않음을 강조하는 이런 주장은 보수보다는 진보 쪽에서 더 많이 나온다.

누가 주장하든 그 말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국전쟁 1년 전에 한국에서 활동한 AP통신 기자도 증인이다. 'AP 기자 옹진지구 시찰기'라는 부제목이 붙은 1949년 6월 30일 자 <조선일보> '4개소(에)서 전투'는 "매일 같이 한인들은 옹진반도의 소규모 혈전에서 상호 살상에 종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양상은 개성 쪽에서도 벌어졌다. 그해 5월 7일 자 <동아일보> 2면 우상단 기사는 그달 2일과 3일의 교전으로 개성 시민 1명이 희생되고 국방군(국군)과 인민군에서 각각 48명과 4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인민군의 "불법 월남"으로 전투가 발발했다고 말했지만, 국군의 월북을 보여주는 정황도 노출했다. 이 기사 중간에 "지난 2일간 38선을 월남하여 공격하여 온 공산군을 격퇴하였는데, 어제 5일 밤에도 네 번이나 전화로 현지 군으로부터 도주하는 공산군을 38선을 넘어 추격할 것을 요청하여 왔다"는 대목이 있다. 국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하는 일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보도다.

그해 7월 16일 자 <경향신문> 기사 '삼팔선 전투에 소군(蘇軍) 가담'은 북한에서 철수했다던 소련군이 38도 선에 출현해 전투에 참여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삼팔선 전투라고 불릴 만한 상황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소련군이 가세했다는 설이 나돌 정도로 국제전 양상을 띠는 전투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사다. 한국전쟁 이전에도 군사 충돌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사전 계획에 의한 전면 기습이라는 주장은 이런 상황과 모순되지 않는다. 군사 충돌이 일상화된 속에서 북한이 전쟁을 계획하고 전면 남침을 벌였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다는 것과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얼마든지 병립 가능하다. 크고 작은 충돌을 언급하는 것은 북한의 남침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평화 공세, 남한은 대북 교역 금지로 대응

그런데 남북 간에 그런 양상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평화 공세도 있었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남북관계 연표 1948~2011>에 따르면,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은 1949년 6월 28일 내놓은 '평화통일방안'에서 "남북조선을 통하여 통일적 입법기관 선거를 동시에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조국전선은 7월 5일에는 남북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주관하는 총선의 실시를 재차 제안했다. 9월 15일에 선거를 하자는 게 조국전선의 제안이다. 옹진반도와 개성을 비롯한 38도선 부근에서 전투가 격렬한 와중에도 북한이 거듭거듭 평화통일을 제안했던 것이다. 이런 양상은 한국전쟁 직전까지도 계속됐다. 전쟁이 임박한 1950년 6월 7일과 19일에도 평화통일과 총선을 연거푸 제안했다.

한편으로는 전투를 벌이고 한편으로는 평화 공세를 벌이는 모습은 김일성 정권의 이중성이나 양면성을 입증하는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지만, 북한 정권 입장에서는 이런 평화 공세가 갖는 실용적 의의가 컸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평화 공세는 전쟁 명분을 축적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남한의 반응 여하에 따라 이것은 남침을 정당화하는 발판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은 그런 평화 공세가 남침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해야 했다. 북한의 평화 공세를 무력화시키는 반박 논리를 내놓든가 아니면 훨씬 강력한 평화 공세를 벌이든가 하는 등의 대응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도리어 빌미만 제공했을 뿐이다. 긴장을 더욱 고조시켜 북한을 자극하고 북한이 전쟁 명분을 갖도록 만드는 데 일조하고 말았다.

조국전선이 1949년 7월 5일에 9·15 남북 총선을 제안하자, 이승만은 나흘 뒤 거부 입장을 표시했다. 그는 이처럼 북의 평화 공세를 거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북한을 자극하는 공격적인 조치도 내놓았다.

이승만 정권은 그해 3월 31일 대북 교역 금지를 발표했다. 이렇게 한반도 공급망을 약화한 그는 북한·중국·러시아를 압박하는 반공동맹의 결성에도 주력했다. 그 일로 인해 분주한 이승만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사 중 하나가 그해 7월 22일 자 <조선일보> 1면 중간에 실린 UP 통신 기사다. 반공연맹 구축을 위해 필리핀 및 대만과 머리를 맞대는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비율빈 대통령 퀴리노 씨는 태평양동맹 협의를 위하여 한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로부터 한국을 방문하라는 초청을 받었다고 한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은 장개석 총통에게도 서울을 방문하라는 초청을 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은 북한의 평화 공세가 전면 침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보다는 동맹국들과 함께 북·중·러를 압박할 방도를 모색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노력은 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에 아시아반공연맹을 창설하는 일로 이어졌다. 전쟁을 막는 데는 아무런 효험도 없었던 것이다.

이승만이 동맹을 확장한 것 자체는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과의 충돌이 위험 수위에 도달한 상황에서도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소련까지 압박할 동맹의 구축에 힘쓴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이는 평화 공세를 벌이던 북한이 전면 전쟁으로 자연스레 전환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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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신형 고체연료 추진체를 사용한 극초음속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15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변에서 바라본 북측 초소에서 북한군이 외투로 몸을 감싼 채 대기하고 있다. 2024.1.15 ⓒ 연합뉴스

 

말꼬리 잡기보다 한반도 평화에 주력해야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크고 작은 충돌이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이재명 대표의 언급을 북한에 의한 남침을 부정하는 논리인 듯이 동문서답 식으로 맞받아쳤다. 이런 상황이 전면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발언의 요체를 외면하는 반박이다. 이 같은 대응은 국민의힘 정권이 한반도 평화에 별 관심이 없음을 표시하는 것으로도 비칠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맞받아치기에 에너지를 쏟는 게 아니라, 최근 북한이 보이는 도전적 행보들이 전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게 차단하는 노력이다. 이승만 정권은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북한의 남침을 허용했다. 
#한반도 #남북관계 #한국전쟁 #이재명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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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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