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병법에 숨겨진 승리요인은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원리

등록 2024.02.07 10:02수정 2024.02.07 10:02
0
원고료로 응원
a

손무자직해 국립민속박물관 사진 ⓒ 국립민속박물관

 
임진왜란 기간 중 일본과의 해전에서 이순신(李舜臣)이 세운 전공은 전대미문(前代未聞)한 것이므로, 그 당시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 문인과 학자들의 평가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 평언들은 대체로 '이순신은 문무(文武)를 겸전하고 탁월한 지략으로 중흥(中興)의 업(業)을 이룬 인물'로 정리되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4백여 년 동안 우리의 역사에 자리매김하였다. 이로 인해 이순신의 병법과 승리 요인은 더욱 세간의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순신은 무과 출신의 장수이기에 무과 시험의 강서(講書)인 <무경칠서(武經七書)>를 충분히 습독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관련한 여러 기록을 보면, 특히 손무(孫武)의 <손자병법>과 오기(吳起)의 <오자병법>, 황석공의 <소서(素書)>는 이순신이 직접 탐독한 책으로 확인된다. 실제 <난중일기>에는 <손자병법> '모공편'의 내용을 인용한 글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움에 백번 이기고,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한번 이기고 한번 질 것이다.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할 것이다. 이는 만고불변의 이론이다.
[知己知彼 百戰百勝 知己不知彼 一勝一負 不知己不知彼 每戰必敗 此萬古不易之論也]

- 갑오년 11월 28일 이후 기록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노승석 역주)
 
이는 세간에 널리 인용되고 있는 지피지기(知彼知己)에 대한 글로, 이순신이 <손자병법>을 탐독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손자병법> 원문에는 "백전불태(百戰不殆)"로 되어 있는 것을 이순신이 백전백승(百戰百勝)으로 수정하여 적었다. 매전필패(每戰必敗)의 패(敗)자를 보면, 이순신이 무경칠서본과 명대 병법가 조본학(趙本學)의 <손자병법>을 읽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이 <십일가주본>에는 "태(殆)"자로 되어 있다.

그 외 이순신이 치른 주요 해전의 기록을 보면, <손자병법> 이론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 글들이 있다. 옥포해전 당시 이순신은 여러 장수들에게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산처럼 침착하고 무겁게 행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고 말했는데, 이는 손무의 "산처럼 동요하지 않아야 한다(不動如山)"고 한 내용과 유사하다.

한산해전에서는 견내량의 지형이 매우 좁고 암초가 많아서 싸움하기가 어려운데다 적이 산언덕을 타고 육지로 올라갈 것이 염려되어 도망가는 척 기만책을 쓰면서 한산도 바다 가운데로 적을 유인해 낸 점도 손무의 "기만책으로 분산과 집중으로 변화한다"는 이론을 적용한 것이다. 정유년 명량해전 당시 13척의 조선 전선이 133척의 일본 전선을 상대하여 전쟁할 때도 좁은 해협인 진도 울돌목을 선택한 것도 손무의 "많고 적은 병력의 쓰임을 잘 안 것"이라는 이론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이순신 병법의 이론들을 종합하면, 결국 '먼저 이길 수 있는 상황조건을 만드는데 주력한 다음 전쟁한다'는 손무의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원리를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점에서 <손자병법> 이론의 핵심인 선승구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승리하는 군사는 먼저 이길 수 있는 형세를 만든 뒤에 싸움을 구하고, 패하는 군사는 먼저 싸운 뒤에 이기기를 구한다.

勝兵, 先勝而後求戰, 敗兵, 先戰而後求勝. - <손자병법>〈군형〉

이순신은 실제 위 글의 의미를 병법에 적용하여 전쟁하였다. 전쟁하기 전에 항상 산천과 바다의 형세를 살피고 부하들을 동원하여 적의 정보를 수집하였고, 주변의 지형을 이용하여 전략적인 요새로 활용하였다. 그 결과, 항상 불리한 상황을 유리한 조건으로 이용하고 승세를 만들어 상대의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순신의 병법이며 승리 요인인 것이다.


그런데 간혹 이순신에게 영향을 준 이 "선승구전"에 대해 "먼저 이긴 후에 전쟁을 구한다"는 식의 글자풀이로 오역하는 경우도 있다. <손자병법>에 대한 중국 역대 병가들의 주석을 봐도 그러한 해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중국 당(唐)나라 때 학자 두목(杜牧)은 선승구전에 대해 "정벌의 방법과 관련하여 계책을 먼저 안에서 정한 뒤 출동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당나라 장수이자 병법가인 이정(李靖)은 "현명한 관찰과 깊은 계책으로 천시와 인리(人理)를 잘 헤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두목은 "그것이 바로 선승구전"이라고 하였다. 먼저 철저한 계책을 마련하는 것이 승리 방법이라는 것이다.

송(宋)나라 때 병가인 장예(張預)는 "먼저 이기기를 계획하고 모의한 연후에 전쟁하면 이긴다. 한(漢)나라 선제 때 장수 조국충이 항상 먼저 계책을 세운 뒤에 전쟁한 것이 바로 선승구전이다"라고 하였다. 명(明)나라 때 조본학은 "선승(先勝)이란, 먼저 남을 이길 수 있는 바탕(상황)을 마련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승은 먼저 승리를 계획하고 승리가 가능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현대 중국의 병법학자 오구룡(吳九龍)은 선승구전을 "먼저 승리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상으로 역대 병가들의 선승구전에 대한 해석을 정리하면, 선승(先勝)이란, 먼저 승리하기 위한 상황을 설정한다는 뜻이고, 이길 승(勝)자는 승리 가능한 상황의 의미가 담겨 있다. 고전 해석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 바로 글자만 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원뜻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맥과 상황에 맞는 해석을 해야 한다.

위에 언급한 장예와 조본학, 오구룡 등의 선승(先勝)에 대한 주석을 보면, 모두 "먼저 승리를 계획하고 이길 수 있는 형세를 만든다"는 의미로 정리된다. 요컨대 선승구전의 의미는 <손자병법>의 핵심이면서 이순신의 병법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것이므로, 반드시 역대 병가들의 주석을 바탕으로 원뜻을 살려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순신 #노승석 #난중일기 #손자병법 #선승구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전학자. 문화재전적 전문가. 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자문위원(난중일기). 현재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 문화재청 현충사 전문위원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3. 3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4. 4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