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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와 서구의 식민통치, 특이한 차이점은

[서평] 한 권의 책으로 이해한다... 책 <세계사 속의 한국근현대사>

등록 2024.02.13 17:59수정 2024.02.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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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해 하반기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시도, 국가보훈부의 백선엽 동상 건립 및 이승만 선양 등으로 촉발된 '역사전쟁' 때문이다. 최근 12.12 군사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에 크게 성공한 것도 근현대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한몫한 듯하다.

사회적 이슈가 된 역사적 사안에 대해 대중 스스로 공부하며 '팩트체크'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건 유튜브 등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무분별하게 범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가짜뉴스들이 대중의 가치 판단을 흐리지는 않을까 두렵다.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통해 역사적 사실 확인과 가치 판단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최근 출간된 한 권의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등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12인의 역사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세계사 속의 한국근현대사>다.

책은 크게 1부(제국주의 세력의 침략과 근대한국의 개혁), 2부(일본제국주의의 지배와 민족해방운동), 3부(냉전기와 탈냉전기의 남북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3부에서는 북한사를 2개의 장으로 정리해, 상대적으로 소홀하기 쉬운 북한 역사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주관적인 역사관과 세계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서술로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밝히고 있다. 또 학계의 최신 연구성과들을 반영함으로써 그동안 잘못 알려졌거나 미진했던 부분들도 대거 바로잡고 보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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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의 한국근현대사> 표지 ⓒ 경인문화사

 
서구 열강보다 억압적이었던 일제 식민통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일국사(一國史)적인 관점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근현대사를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비교 분석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식민지 확보 경쟁은 19세기 중반 이래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시작된 전세계적인 유행이었지만, 일제의 식민통치는 서구 열강의 방식들과는 조금 달랐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일제는 강제 병합 직후 한·일 양국이 일가(一家)를 이뤘다며 그 목적은 '천황의 일시동인(一視同仁) 아래 문명화의 길을 걸어 동양 평화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면서 식민적 관념·민족의 우열·종족의 구별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이른바 '동화주의(同化主義)'를 식민지 조선에 대한 통치 이념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국내 사학계 역시 일제 식민정책의 특질을 동화주의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35년이라는 기간 동안 동화주의가 제대로 실현됐는가에 대해 나는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다. 완전한 동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일본인들과 조선인들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했다. 조선 총독은 조선에서 입법·사법·행정·군권을 장악하고 독재적 권한을 행사했다. 그렇기에 혹자는 조선 총독을 두고 작은 천황이라는 의미에서 '소(小)천황'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조선 총독은 본국으로부터 위임받은 입법 권한을 토대로 '제령', '부령' 등을 공포하며 일본 본토와는 다른 차별적 통치를 펼쳐나갔다.

그렇기에 식민지 조선은 본토의 헌법이 적용되지 않는 이법지대로서 차라리 '이화(異化)주의'에 가까웠다. 그러나 외부적 저항(조선인들의 독립운동)과 자신들의 필요(조선인들의 군사동원)에 따라 점차 동화주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것은 필요에 의한 편의적 동화정책으로서 끝내 조선인들의 참정권 보장 등 본국과의 완전한 동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동화주의를 일제의 식민통치 방침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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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청사 ⓒ 위키피디아

 
이 책 역시 일제는 조선인에게 일본인으로의 동화를 강요하면서도, 일본 헌법과 법률에서 규정한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은 조선인들에게 시행하지 않는 모순적 행태를 보였다고 분석한다.

강제 병합 직후 <조선민사령>과 <조선형사령>을 제정해 조선인에게도 일본의 민법과 형법 등 일본 법령을 일부 적용했지만, 중요한 입법 사항은 조선 총독이 별도로 제정하도록 하거나 입법 자체를 하지 않음으로써 조선인들은 법적으로 무권리 상태에 놓인 것이다.

이에 저자들은 서양의 식민통치보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훨씬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서양의 식민통치와 비교할 때 두드러지는 일제 식민통치의 특징은 조선 주민의 정치적 의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총독 개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집중시킨 점에 있다. 그리고 식민지 행정기구 내에 조선 총독의 무단적, 독재적, 폭력적 통치를 견제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이해는 언제나 뒷전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참정제도가 형식적이고 허울에 불과하기는 했으나 참정제도 자체를 만들지 않은 일본의 통치제도는 매우 억압적인 사례에 속한다." - 책 168쪽

최근 논란이 되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저자들은 이승만 정권에 대해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평가하진 않는다. 그러나 반민특위 활동 탄압에 따른 친일 청산 실패, 제주 4.3 사건·여순사건·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정적에 대한 사법 살인 그리고 부정선거를 통한 독재정권 연장 시도 등 이승만 정권 당시 행해졌던 각종 부정부패와 학살 등의 과오를 서술함으로써 현 정권의 이승만 띄우기가 과연 온당한 것인가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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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오후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이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이승만 학술 대토론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 국가보훈부

 
역사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언제나 시련 가득한 난세였던 근현대사에서 한국인들이 이룩한 성과는 무엇인가? 저자들은 "한국인들은 식민, 분단, 전쟁, 독재, 빈곤이라는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그 결과 비록 분단은 극복하지 못했지만 남한에서는 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평가한다.

미완의 과제들도 있다. 윤석열 정권 출범 후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비롯해 제왕적 대통령제·양당중심제로 대표되는 '87년 체제'의 한계, 빈부격차의 확대, 코로나19와 같은 예상치 못한 질병의 창궐, 노령화, 저출생, 미·중갈등, 기후위기 등 우리 앞에 극복해야 할 새로운 과제들이 쌓여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한국근현대사에서 시련과 극복, 도전과 성취의 주역은 바로 평범한 한국인들이었다. 지난 150여 년간 한국의 교육수준과 문화수준은 크게 높아졌으며, 정치의식과 사회의식도 크게 높아졌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인은 시대의 과제를 하나하나 해결해왔다. 앞으로 한국 사회의 남은 과제, 새로운 과제를 해결해 나갈 주역도 바로 이들일 것이다." - 책 526쪽

흔히 역사학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학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은 과거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그래서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막막하게만 느껴진다. 이럴 때 흘러가버린 역사가 우리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과거 우리 조상들이 마주해야만 했던 식민과 분단, 독재와 빈곤이라는 시련들 역시 그전까지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싸웠고, 끝내 극복했다.

뻔한 소리 같지만 그러한 선조들의 극복기를 통해 우리 역시 앞으로 우리가 마주한 시련들을 극복할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게 역사가 갖는 힘이자 의미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도서 정보] <세계사 속의 한국근현대사>, 박찬승 외 11인, 경인문화사, 2024.

세계사 속의 한국 근현대사

박찬승, 이승일, 김지형 (엮은이),
경인문화사, 2024


#근현대사 #박찬승 #이승일 #김지형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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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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