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점'의 이유

오만 가지 잡념이 길을 헤매다 목점에 이르면

등록 2024.02.11 14:13수정 2024.02.1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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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뒷목에 점이 있다. 일반적인 점보다 크고, 살짝 입제감이 느껴지는 도톰하고 폭신한 점. 웬만하면 머리카락에 가리고, 내 시야에 없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단발이 기본이던 중학교 때, '목점의 여인'이라며 놀리던 친구도 있었지만).


인생에서 하등 중요하지도, 마음 줄 이유도 없던 목점이 내 몸의 '꽃'으로 재탄생할 줄 누가 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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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차원의 점이었을 때 ⓒ 정유진

 
나는 모유수유를 길게 한 편이다. 세 아이 모두 20개월씩 했다. 첫째는 젖을 먹으며 손으로 내 턱 밑 목을 만지작거렸다. 그 버릇은 열 살이 넘어서까지도 지속됐는데, 내가 안아주면 자동으로 내 목을 만진다. 여기 살이 제일 보드랍단다.

아무튼, 살살 쓰다듬듯 만지던 손길이, 젖을 끊자 그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힘이 들어갔다. 두 손으로 내 앞목을 만지다 못해 꼬옥 누르면, 누가 봐도 목을 조르는 형국이었다. 둘째 젖을 줄 때, 로얄석(내 품)을 뺏긴 첫째는 내 등 뒤나 머리 위에 찰싹 붙어 목을 만졌다(이번엔 뒤에서 목을 조르는... 컥).

그런가 하면, 둘째는 젖을 먹을 때 다른 쪽 젖꼭지를 만졌다. 조물조물, 쭉쭉. 이 아이에게도 단유라는 시련의 때는 왔고, 언니가 하듯 내 목을 만지려 했다. 하지만 앞목은 언니의 두 손이 떡 하니 차지하고 있어서, 뒷목으로 손을 돌렸는데... 어랏? 젖꼭지와 비슷한 느낌의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 둘째는, 키보드의 돌기로 제자리를 알 듯, 내 목점으로 삶의 중심을 확인했다.

이 버릇 역시 학교에 들어간 이후까지 계속됐다. 언젠가 둘째가 내 젖꼭지를 만지고는 눈이 똥그래져서 말했다. "우와!! 엄마 목점이랑 느낌이 똑같아!" 그러니까, 일이 그렇게 됐다는 걸, 나도 그제야 알았다.

셋째는 젖을 끊기 전부터, 두 언니들이 다 엄마 목에 집착한다는 걸 파악하고 '저기에 뭔가 있다'는 대단한 착각을 한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영역에 두 손을 보태면서... 내 목에서 누구 손을 쳐내거나 꼬집는 전투가 날마다, 진정 날마다 벌어지곤 했다(헐...).


문제는 목점이었다. 다른 건 다 동생에게 양보해도 지름 0.5mm짜리 삶의 중심은 포기할 수 없던 둘째는 그야말로 내 목점을 사수했고, 둘째 언니가 하는 건 다 따라하는 셋째 역시 그곳에 일단 무조건 들러붙었던 것이다.

자려고 누우면 내 몸 앞뒤에 붙어서, 필사적으로 내 목점을 차지하려고 탁, 탁 서로의 손을 밀쳐내고, 목점을 꽉 붙잡았다. "내가 먼저 만졌어!", "아니야!" 다투다가 "으앙" 울음이 터지곤 했다. 하루의 끝, 영혼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솔로몬이 돼야 하는 나는 "열 번씩 번갈아 만져"라고 말하고 보이지도 않는 먼산을 바라봤다(아,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두 아이들이(첫째는 아니어서 다행) 거칠게 뺏고 차지하려다 점이 뜯길 것처럼 아팠다. '피 나는 거 아닌가?' 하며 만져보는데... 이것은... 내 점이 아니었다. 분명 내 점은 확실히 2차원은 아니었으나 3차원이라고 하기에도 애석한, 그런 정도의 입체감이었다.

그런데... 공이었다. 동그랗고 적당히 말랑한 공이 붙어 있었다. 점이 무럭무럭 자라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때부터 내 점이 신경 쓰였다. 여전히 내게 보이진 않았지만, 아주 난감한 기분이었다. 이건 그전과는 달리 그냥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모양새였다. 느낌으로 그러했다.

나는 피부과에 갔다. 물론 이 일로 간 건 아니었고, 셋째의 아토피 피부 때문에 갔을 때 얹어서 말했다.

"저... 선생님. 그리고... 제가 여기 목에 점이 있는데요..."
"(흘깃) 네."
"이게 원래 이렇게 크고 볼록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아이들이 만져서(꿍얼꿍얼)... 이렇게 돼서..."

"아... 네..."
"이거 어떻게, 방법이 없나요?"
"... 네? 무슨..."
"뺀다든지..."


나는 그때 보았다. 옆에 있던 두 아이들이 "안 돼, 엄마!!"를 외치는 소리 사이로, 어처구니없어 하는 의사의 표정을.

"... 이거 레이저... 하면 할 수도 있을 텐데, 보이는 데도 아니고... 그냥... 사시죠."

아니, 선생님, 이게 정녕 아무것도 아닌 문제란 말입니까? 음, 그렇군요... 나는 서둘러 나의 '당사자만이 아는 고통'을 거둬 들였다. 뭔가를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던 때이기도 했지만, 자라난 목점에 경악했을 뿐, 뜻밖의 선물 같은 목점을 정말로 없애버리려던 건 아니었지 싶다.

스스로 응가 뒤처리를 하고, 혼자 목욕을 하는 것처럼, '엄마 목/목점 안 만지고 자기'는 아이들이 떼야 할 뭔가였다. 그리고 이제 그 시절을 얼추 건너왔다. 그럼 좀 작아졌나, 싶어 가끔 내 목점을 만지면... 그대로지만.

내가 가진 것 혹은 가진 줄 알았던 것, 가지지 못한 것과 그래서 아쉬웠던 많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내 예상이나 바람과는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그중 목점은... 한 번도 '그 무엇'이 되리라 상상한 적도 없는 것이다. 오만 가지 잡념이 길을 헤매다 '목점'에 이르면, 그 의사처럼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나온다.

뭐가 좋은지, 뭐가 나쁜지, 뭐가 필요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모르는 채로, 무얼 궁금해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삶이, 아주 조금은,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해서.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올립니다.
#육아 #에세이 #목점 #알수없는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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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석 일진. 세 아이를 키웁니다. 육아 집중기 12년이 전생 같아서, 자아의 재구성을 위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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