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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세렝게티 팔현습지의 찬란한 아침

[탐방기] 해 떠오르는 아침 팔현습지 곳곳엔 야생의 흔적.... 환경부는 삽질 중단해야

등록 2024.02.12 14:03수정 2024.02.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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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 팔현습지 위로 아침 해가 떠올랐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12일 이른 아침 팔현습지를 다시 찾았다. 해가 막 떠올랐다. 입춘이 지난 시기라 해 뜨는 시간이 많이 빨라졌다. 8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간 해는 벌써 산 위로 떠 팔현습지를 비추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팔현습지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방촌에서 강촌햇살교를 건너 팔현습지로 접어들었다. 바닥은 밤새 내린 서리가 아직 하얀빛을 그대로 머금고 있었고 그 위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강변숲으로 들었다. 잎을 다 떨군 왕버들나무 가지 사이로 아침 햇살이 시나브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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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로 둘러싸인 팔현습지 하천숲으로 아침햇살이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아침햇살을 받은 습지는 어둠을 서서히 걷어내면서 묘한 빛깔을 선보였다. 아름다웠다. 왕버들로 둘러싸인 안쪽은 초록의 풀이 아직 남았고, 그 위는 하얀 서리가 얹혔다. 그곳에 아침 햇살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찬란한 아침'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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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딱따구리의 구애 행동..... 짝짓기 철이 돌아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찬란한 아침의 빛깔에 취해 있는데 갑자기 한 쌍의 오색딱다구리가 나타나더니 요란한 구애의 몸짓을 보여준다. 새봄을 맞아 짝짓기라도 하려는지 사랑놀음이 분주하다. 얼마나 빠르게 자리를 옮기면서 사랑놀음을 하는지 그 모습을 담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천숲을 벗어나면 왼쪽에 하식애(河蝕崖)가 나타나고 그곳은 팔현습지의 터줏대감이자 이곳의 수호신 수리부엉이의 땅이다. 최근 암수가 자주 함께 나타났지만 며칠 전부터 수놈인 '팔이' 혼자만 바위 사이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것이 목격된다. 이날도 '팔이' 혼자서 바위틈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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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 수놈 '팔이'가 마치 망루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듯 바위틈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아마도 암놈 '현이'는 포란(알을 품는 것)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올해도 산란에 성공한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부화에 성공해서 올여름에도 어여쁜 새끼 부엉이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수리부엉이 팔이를 뒤로 하고 왕버들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걸음을 옮기자마자 저 멀리 큰기러기 무리가 아직 머리를 깃에 깊게 박고 잠을 청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행여나 녀석들이 깰세라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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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잠을 청하고 있는 큰기러기 무리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대구의 세렝게티 팔현습지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이곳이 작은 세렝게티인 것을 느끼게 해주는 광경이 펼쳐진다. 지난밤 수리부엉이에게 당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다. 멧비둘기로 보이는데 깃털만 잔뜩 흩어져 있고, 날개뼈 하나만 붙어 있을 뿐 몸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맛있게 식사를 한 흔적이다. 이곳이 수리부엉이의 식사 장소임을 확인하게 해준 흔적도 발견했다.

수리부엉이의 가슴털이다. 아마도 수놈 '팔이'가 그의 보드라운 가슴털을 떨어트린 채 지난밤 이곳에서 맛난 식사를 했음이 분명하다. 식사 장소를 벗어나자 저 멀리 큰고니 한 가족이 우아한 모습으로 유영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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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비둘기로 보이는 녀석의 날개뼈만 남았다. 몸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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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의 가슴털. 지난밤 수리부엉이가 맛있게 식사를 한 장소임을 알려준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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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고니 가족이 팔현습지를 찾아 유영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며칠 전부터 강 가장자리에 자라난 수초 뿌리를 열심히 뜯어먹고 있던 그 가족이다. 새끼 한 마리를 거느린 큰고니 부부가 늘 팔현습지를 찾아 이렇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민물가마우지와 물닭 그리고 청둥오리와 쇠오리가 분주히 오가고 있다. 갑자기 비오리도 나타나 재바르게 유영하고 있는 이곳이 바로 야생의 땅인 팔현습지다.

새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왕버들숲으로 들었다. 아침햇살을 머금은 왕버들숲도 참 아름다웠다. 비밀의 화원에서 숨겨둔 비밀이 한 꺼풀 벗겨지는 듯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걷힌다. 팔현습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간직한 곳인 이곳 왕버들숲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데, 이곳에도 야생의 흔적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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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숲으로 아침햇살이 스며들고 있다 비밀의 화원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역시 수리부엉이에게 당한 것으로 보이는 이름 모를 새의 흔적이 보인다. 녀석이 배가 불렀는지 내장과 장기의 일부가 남았다. 당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곳곳에 잡고 잡아먹힌 흔적이다.


대구의 세렝게티 이곳은 바로 팔현습지다. 백수의 제왕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런 흔적들은 심심찮게 발견된다. 육상 최상의 포식자 삵도 자리 잡고 있다. 삵에게 당한 흔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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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에 당한 흔적 .... 이곳이 바로 대구의 세렝게티 팔현습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렇듯 팔현습지 곳곳은 야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야생의 영역인 것이다. 멸종위기종 수리부엉이와 삵과 담비의 땅이자 역시 멸종위기종인 큰기러기와 큰고니와 참매의 영역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오리와 물닭과 청둥오리와 쇠오리의 땅이기도 한 것이다.

환경부발 '삽질' 지금이라도 중단돼야

그런데 이런 야생의 영역에 환경부가 탐방로란 이름으로 높이 8미터의 보도교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고 보전해야 할 환경부가 멸종위기종들이 버젓이 살고 있는 땅에 탐방로를 기어이 내겠다 하고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하지 않겠다던 입장을 번복해 다시 시행하겠다 나오고 있다.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올여름 이후 착공할 예정이다. 대구의 세렝게티와 다름없는 이곳으로 사람들이 밤낮 오가는 길을 기어이 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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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라 또다른 빛깔을 선보이고 있는 팔현습지 하천숲. 찬란한 아침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강 건너 맞은편으로 산책로가 잘 닦여 있음에도 길도 없는 절벽 앞으로 새로운 길을 기어이 내겠다는 것이다. '탐욕의 삽질'이란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이 사업을 강행한다는 것은 환경부가 환경부이기를 포기한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환경부는 환경부의 길을 가야 한다. 환경부가 국토파괴부는 아니지 않는가. 환경부는 지금이라도 팔현습지 삽질을 중단해야 한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이승렬 의장의 말이다. 이승렬 의장의 바람처럼 새봄 환경부의 결단을 간절히 희망해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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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습지는 철새들의 땅이다. 다양한 새들의 팔현습지를 찾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금호강 #팔현습지 #수리부엉이 #왕버들숲 #큰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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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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