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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보고서 삭제' 지시 정보경찰 유죄… 경찰 '윗선' 향할까

참사 473일만에 첫 선고… 재판부 "경찰 사전 보고서, 이태원 인파 운집 명백히 지적"

등록 2024.02.14 15:24수정 2024.03.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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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대비 정보 보고서 삭제 지시 혐의로 기소된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 정보외사부장이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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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대비 정보 보고서 삭제 지시 혐의로 기소된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이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기사보강: 14일 오후 7시 20분]

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의 책임이 불거지자 참사 전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을 예측했던 경찰 보고서들을 삭제하도록 지시한 박성민(57)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에게 14일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태원 참사 관련 공무원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재판부가 참사 전 경찰이 작성한 보고서에 대해 "2022년 이태원 핼러윈 데이에 다수의 사람이 이태원 거리 일대에 운집할 거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규정, 향후 김광호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윗선'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보고서 삭제' 정보경찰 3명 모두 1심 유죄

서울서부지방법원 11형사부(재판장 배성중 부장판사)는 14일 증거인멸교사·공용전자기록등손상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부장 등 정보부서 경찰관 3명 모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박 전 부장으로부터 보고서 삭제 지시를 받고 이를 부하 직원에게 하달한 김진호(54)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상사인 김 전 과장이 시키는 대로 실제 보고서 파일을 업무용 컴퓨터에서 지운 곽영석(42) 전 용산경찰서 정보관에겐 징역 4개월의 선고가 유예됐다.

참사 발생 473일만에 처음으로 공무원들이 유죄를 받은 것이다. 다만 실형을 받은 박 전 부장도 보석 석방 상태가 유지돼 구속된 사람은 없었다.


이들 정보 경찰관 3명은 이태원 참사 직후인 2022년 11월 1~2일 향후 수사에 대비해 핼러윈 축제 전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을 예견했던 정보보고서 4건을 삭제·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이 삭제한 정보보고서는 ▲가을축제 행사 안전관리실태 및 사고위험요인 SRI(2022.10.4) ▲할로윈 데이 온오프 치안부담요인(2022.10.7) ▲할로윈, 경찰 제복으로 파티 참석 등 불법 우려(2022.10.7) ▲이태원 할로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2022.10.26) 등 4개다. 보고서엔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해밀톤호텔 인근 인파를 우려하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보고서 삭제) 행위는 이 사건 사고(이태원 참사) 발생으로 인한 진상규명과 책임소재 파악에 있어 경찰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위법적인 인식 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경찰이 작성한) 정보보고서는 2022년 이태원 핼러윈데이에 다수의 사람이 이태원 거리 일대에 운집할 거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라며 "(경찰이)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경위도 경찰 조직 내에서 사전에 사고 위험 요인을 파악하려는 취지가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법부가 경찰 정보보고서의 성격을 처음으로 규정한 대목이라 의미가 크다. 경찰 수뇌부인 김광호 전 청장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경찰 내부의 책임은, 사전에 사고 위험 징후를 파악하기 위한 조치가 있었는지, 사고발생의 위험이 충분히 경고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조치를 충분히 다하지 못하였는지와 같은 정책적 의사결정에 대한 부분이지, 일선 정보관들에게까지 그 책임 유무를 따져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도 밝혔다. 김 전 청장은 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했다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지난 1월 기소된 상태다.

"초유의 인명 피해, 진상규명 요청 있었건만…" 경찰 질타한 사법부

재판부는 수집된 정보의 목적이 달성되면 폐기한다는 '경찰관의 정보수집 및 처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해당 정보보고서들이 상부에 보고돼 그 목적이 달성됐으므로 폐기해도 문제가 없었다는 경찰 측의 핵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보경찰의 일은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 예방과 대응을 위한 것"이라며 "이러한 점에서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해당 정보보고서의 목적이 달성돼 불필요하게 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2022년 이태원 핼러윈 데이와 관련해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목적으로 작성된 이 사건 정보보고서들은 핼러윈 데이가 무사히 종료되기 전까지는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2022년 10월 29일 이 사건 사고(이태원 참사)의 발생으로 공공안녕에 심각한 위험이 초래됐으므로, 이 사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파악하며,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 예방과 대응조치에 해당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태원 참사 이후 진상규명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저버린 채 책임을 축소하려 했다며 경찰을 질타하기도 했다.
 
"이 사건 사고는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처음 맞이하는 핼러윈 데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태원 일대에 모였다가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지나치게 집중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넘어진 끝에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만 대형참사에 해당한다. 이 사건 사고로 인해 159명이 사망했고, 최소 294명이 상처를 입어, 직접 피해를 본 사람의 수만 하더라도 수백명에 이르고,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지인 등 소중한 사람을 별안간에 상실하여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겪게 되었으며,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과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도 수많은 생명이 경각에 이르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면서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됐다.

이처럼 다수의 젊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게 된 상황을 접한 국민 역시, 큰 충격과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됐다. 이 사건 사고 이후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제대로 구축되어 작동하고 있는지, 사전에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징후가 있지는 않았는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조직들이 맡은 바 역할을 충분히 다하였는지, 향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지와 같이, 이 사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파악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데 사회적 요청이 집중됐고, 이를 위해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하는 경찰 조직에 대하여 수사와 감찰이 개시됐다.

따라서 경찰 조직의 일원인 피고인들로서는, 기존의 자료를 보존하거나 적극적으로 제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와 같은 수사와 감찰에 성실히 협조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이와 정반대로 경찰 정보기능 내에서 이 사건 사고와 관련해, 사고 이전에 작성된 정보보고서 파일을 삭제하도록 지시하거나 이를 이행함으로써, 공무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을 임의로 파괴함과 동시에, 이 사건 사고와 관련된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의 증거를 인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와 같은 피고인들의 범행은 그 자체를 보더라도 공무에 지장을 초래하고, 국가의 형사사법기능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써 그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초유의 피해가 야기된 이 사건 사고의 진상규명 및 책임소재 파악에 대한 전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채 경찰의 책임을 축소하고 은폐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어렵게 하려고 시도한 피고인들에 대해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는 다만 "삭제된 정보보고서가 총 4건에 불과해 아주 많은 양은 아니었고, 컴퓨터 파일의 형태로 다른 저장 공간에 남아있거나, 프로그램상의 기능에 따라 복원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내용이 모두 수사기관 등에 의해 확보됐으므로, 실제로 업무의 지장에 초래된 정도나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이 방해된 정도는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피고인들에 대하여 유리한 점으로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유가족들 "인파밀집 예측한 경찰 책임 인정… 의미 크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이날 판결을 반겼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선고 후 성명을 내고 "이번 법원의 판결은 이태원 참사 발생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물은 결과는 아니지만, 이태원 참사 직전 경찰이 인파밀집을 예측하고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참사가 일어난 이후에는 도리어 참사와 관련된 정보를 은폐하고 축소하기 급급했던 것과 관련해 공직자의 형사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로 그 의미가 작지 않다"라며 "실형 선고는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관련기사]
검찰, 이태원 '보고서 삭제 지시' 혐의 경찰간부에 징역 3년 구형 https://omn.kr/26sm5
 
#이태원참사 #박성민 #김진호 #경찰 #이태원공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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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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