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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기사가 꼽는 '좋은 콜'의 세 가지 조건

콜 메마르지 않는 곳에 살지만... 순발력 발휘할 때 필요한 판단 요소들

등록 2024.02.16 09:27수정 2024.02.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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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이자, 작가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인, 대리기사의 사소한 이야기다. 그러나 한 인간의 이야기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한 움큼의 희망을 얻어 가시길.[기자말]
나는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다. 게다가 배산임수와 같은 대리 운전하기 최적의 지리적 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 집 앞에는 석촌호수가 있고, 그 너머에는 잠실이, 반대편에는 방이 먹자골목이, 한 블록만 점프하면 천호동이 있다. 술집을 포함한 음식점들이 많고 그만큼 '콜'(대리기사를 호출하는 것을 합쳐서 대략 이렇게 부른다)이 메마르지 않기도 하는 곳이다. 


이럼에도 가장 꿈같은 형태는 집에서 '대기'를 타고 있다가, 즉 기다리고 있다가 반경 500m 안에서 콜이 뜨면 바로 잡고 나가는 일이다. 콜이 발생한 곳에 얼마나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느냐가 늘 고민이니 이런 경우는 정말 땡큐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반경 2km 안에서 콜이 뜨고, 바로 이 때 순발력을 발휘해서 나가야 한다. 정말 좋은 콜은 망설이는 순간에 앞다투어 채가기 때문이다. 

거리적 가까움, 적절한 가격, 집까지의 귀환 가능성

좋은 콜이란 대략 세 가지 정도 요소를 만족시키는 경우다. 첫째는 현재 있는 곳과 거리적 가까움이다. 앞서 말했듯 가까운 게 최고다. 대부분의 콜은 모르는 곳에서 뜨고 그곳을 빠르게 찾아가는 게 묵직한 미션인데 그 모든 걸 만족시켜 주니 말이다. 

둘째는 도착지 운전시간에 대비해서 적절한 가격인가이다. 이를테면 잠실에서 인천까지 가는 콜이라면 운전시간이 20시 기준 5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1만 5천 원이라면 이건 좀 너무한 일이다. (보통 이 정도 거리면 4만 원에서, 4만 5천 원이 적절하다.)

물론 예외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콜을 받고 인천까지 운전을 해서 도착했는데 거기서 잠실 쪽으로 오는 콜이 1만 5천 원에 뜬다면? 이건 고민할 이유가 없이 잡아야 한다. 어차피 돌아가야 하는 길인데, 운전하면서 편하게 올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으니 기회비용 대비 200% 만족이다. 


셋째는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가이다. 처음 대리 운전을 시작했을 때 멋모르고 토요일 밤 10시 30분 정도에 남양주 쪽으로 넘어가는 콜을 잡았는데, 생각보다 깊이 들어가서 도착하고 나니 11시 10분 정도가 되어버렸다. 빠르게 검색해서 가까운 지하철역, 버스, 다 찾아봤는데 이미 막차가 끊겨 있는 상태였고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란 택시밖에 없었다. 

콜을 받고 온 가격을 그대로 택시비로 써버렸다. 그래,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수업료라고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긴 했지만, 택시 안에서 털썩 몸을 기대지도 못한 채 잇새로 흘러나오는 뜨거운 걸 삼키며 꼿꼿이 불편하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남양주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지만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택시도 없는 오지에 갇힌 경우도 있으셔서, 그야말로 '탈출'을 했다고 하기도 한다. 

결국 이 일을 하는 것은 돌아오기 위함이 아닌가. 돌아갈 곳이 없다면 쓸쓸하다. 돌아오지 못한다면 헛헛하다. 돌아올 수 없기에 돌아버리는 것이다. 낮보다 더 반짝이는 밤을 힘껏 헤엄치며 돌고 돌아 돌아온다, 그렇게, 결국.

각자의 속사정을 지니고 술에 기대어 본 사람들이라 제멋대로 믿어버리고, 그들을 안온하게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고 동네에 불시착한다. 끝으로 내가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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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오르는 연어 ⓒ pixabay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송고됩니다.
#대리 #대리운전 #대리기사 #김대리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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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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