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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목적'이라는, 참신한 미술 전시가 열립니다

김홍석 개인전, 서울 종로 국제갤러리서 오는 3월 3일까지

등록 2024.02.22 10:49수정 2024.02.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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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개인전이 3월 3일까지 국제갤러리 K2관·K3관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은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어딘가 다소 익살맞다. 작가는 "뒤엉킨 세계는 이원론적 사유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실천이고, 아마도 현대성은 곧 모든 것의 '뒤엉킴' 일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뒤엉킴(entanglement)'은 이번 전시의 키워드로 '완성과 미완성'의 경계를 넘는 개념이리라. 

기존 인식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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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전이 열리는 국제갤러리 K2 1층 전시장 ⓒ 김형순

 
김홍석은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개념미술가 중 한 사람이다. 미술 전반과 시대조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형식과 매체의 범주를 넘나들면서, 사회, 문화, 정치, 예술에서 나타나는 서구의 근대성, 이에 대항하는 비서구권에 대한 저항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에 대해 눈여겨봐 왔다.


그는 "어떻게 하든 기존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미술가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물론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은 서구 모더니즘을 학습하고 모방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함도 있었다. 혼합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주체화하는 듯했으나, 한국 사유체계는 보다 근원적 대안을 내기보다는 거기 갇히거나 그 사이에서 자본의 지배력과 예술의 자율성이 충돌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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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I '진정한 사랑' 알루미늄, 크폼 페인트 147×140×80cm 2024 ⓒ 김형순


그렇기는 해도 독일 전설적 사회조각가인 '요셉 보이스'는 미술의 확장개념으로 '예술=자본(Kunst=Kapital)'을 주장했다. 역설이지만 예술이 또한 자본의 꽃이기도 하다. 김홍식은 바로 이런 갈등과 모순의 뒤엉킴 속에서 자신만의 개념미술로 이 난제를 풀어냈다. 그러면서 예술은 돈만 버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진정한 자본임을 일깨워준다.

위트 넘치는 이번 제목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를 나는 약간 비틀어서, 작가가 관객에게 "내 전시는 실패가 취지이니, 여러분 관객이 개입해 정상적으로 만들어줘요!"라는 억지라고 읽었다. 연애할 때도 상대방 심리상태를 잘 알아야 소통이 원활하듯, 작가의 속마음과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면 까다로운 듯한 이번 전시도 술술 풀릴 수 있다.

현대미술, 관객이 작품에 개입하는 것 

'이우환'은 미술에서 근대와 현대의 차이를 명쾌하게 구분한다. 그에 의하면, '근대미술은 작가가 전적으로 관여하는 것이고, 현대미술은 작가가 그의 작품에 가능한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문화 민주화 시대 이제 전시의 주인은 작가가 아니라 관객이라는 소리다. 작가의 능력은 이제 작가 자신이 아니라, 관객이 오히려 작가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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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I "극사실주의 노동" 송진(resin) 76×54×51cm 2024 ⓒ 김형순


김홍석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개념미술로 기존의 방식을 바꾸려 한다. 그가 말하는 뒤엉킴이 바로 대안인 것 같다. 평소 인식체계의 기준인 아름다움, 완전함, 올바름에 대한 정의를 뒤엎어버린다고 할까. 그래서 지금과는 다른 세계로 나가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관객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듯하다.
   
우선 1층 전시장에 들어가 보자. 이번 전시는 기존의 미술감상법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입견부터 버려야 한다. 관객도 작가처럼 작업에 개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술감상이 살짝 번거롭고 까다롭다. 관객도 이런 뒤엉킨 광경을 용해하려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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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I "실재 악당" 송진(resin) 61×27×20cm 2024 ⓒ 김형순

 
전시장 입구에 출현한 늙은 '조커' 얼굴을 한 '고양이(위 작품)', 관객은 이런 엉뚱함에 당황하게 마련이다. 또 한쪽에 하이힐처럼 키가 높은 슬리퍼도 보이는데, 용도가 뭔가? 다른 쪽에선 바닥에 깔리는 카펫을 무거운(?) 청동으로 만들었다. 황금빛 불꽃 조각 연작은 또 뭐지? 돌멩이를 든 손(위 작품)이 허공에 떠 있고, 분수가 용암처럼 뿜어나오다 굳어진 모습도 선보인다. 부조리한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마구잡이로 모든 전시물이 뒤엉켜 있을 뿐이다. 관객들에게 이런 혼란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라고 작가는 은근히 압력을 가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특별한 기준도 규범도 없다.


2층,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사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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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I '사군자(231234)' 아크릴 물감 88×76cm 2023 ⓒ 김형순

 
2층 전시장으로 가면 놀란다. 동양화에서 자주 보이는 '사군자' 페인팅이 보이기 때문이다. 서양화 전공자가 그린 사군자, 위험천만한 작업이다. 묵향이 나는 것도 아니고,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리는 서양회화 방식이다. 전통 사군자처럼 붓의 농담이 아니라 두꺼운 물감으로 처리했다. 군자의 위상이나 권위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게 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짓은 아닌가.

이렇듯 그는 서양식 화면의 구성요소인 비례, 균형, 조화를 활용해 캔버스 위에 사군자를 그렸다. 연꽃, 매란국죽 등을 동양의 정신보다는 오직 서양의 물감 덩어리로 화폭에 담았다.

전시장에선 사군자와는 어긋나는 팝송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많은 사람이 그냥 함께 즐기는 카페나 드는 음악 혹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기차역, 공항, 쇼핑몰, 백화점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분위기다.

김홍석이 개념미술가가 된 건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유학에서부터다. 그는 아래 작품을 설명하면서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1980대 말 독일 유학 당시, 지도교수가 "너는 한국적 현대미술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권고했고, 그런 문제 제기에 지금껏 자신이 서구 미술에만 빠져있었다는 걸 돌아보게 되었다고. 그러나 자신은 정체성보다는 미술의 사회적 효용에 더 관심을 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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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I 믿음의 오류(운석) 송진(resin) 150×189×160cm 2024 천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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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I 믿음의 오류(운석) 송진(resin) 150×189×160cm 2024 바닥 ⓒ 김형순

 
이번엔 끝으로 K3관 전시장으로 들어가 보자. K2관과 다르게 장소 특정적이고 유쾌하다. 록 음악 '주춤거리는 행진'이 들린다. 천장엔 구멍이 뚫려 있고, 전시장 바닥에는 운석 같은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깨져 있다. 작가가 연출한 이런 풍경은 미술의 본질을 묻으면서 관객에게 시각체계에서 변화를 주려고 하는 강박감도 있어 보인다.

천장 갈라진 틈 사이에 있는 게 '별'인가 '돌'인가. 작가도 한때는 별이었으나 이제는 돌이란 말인가? 별과 돌의 뒤엉킴은 작가가 말하는 실재와 허구, 옳음과 그름, 정상과 비정상, 가벼움과 무거움 같은 혼합성을 닮았다. 하여간 작가는 감상자가 이를 통해, 기존개념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선물 받는 것처럼 작품을 감상해 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김홍석 작가는 서울 출생으로 1964년생이다. 1987년 서울대학교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현재 상명대 무대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국내외 기관에서 꾸준히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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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K2 1층 전시실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김홍석 작가. 왼쪽 그의 설치 '다섯 손가락'도 보인다. ⓒ 김형순

 
주요 전시로는 서울시립미술관 '우리가 모여 산을 이루는 이야기'(2023), 스페이스 이수 '속옷을 뒤집어 입은 양복과 치마를 모자로 쓴 드레스'(2023), 문화역서울 284 '나의 잠'(2022),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2019 타이틀 매치: 김홍석 vs. 서현석' '미완의 폐허', 가나자와 미술관 '변용하는 집'(2018),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달의 이면'(2017)이 있다.

그리고 삼성 플라토에서 '좋은 노동 나쁜 미술'(2013), 도쿄 모리미술관 'All You Need is LOVE'(2013), 국립현대 '올해의 작가상 2012', 아트선재센터 '평범한 이방인'(2011) 등이 있다. 3년제 오쿠노토(2017), 요코하마(2014), 트리엔날레 그리고 2년제 광주비엔날레(2012), 리옹비엔날레(2009), 베니스비엔날레(2005) 등 다수의 국제전에도 참가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미국 휴스턴 미술관, 캐나다 국립미술관, 호주 퀸즈랜드 미술관, 프랑스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르콩소르시움, 일본 구마모토와 가나자와 미술관을 비롯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포스코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덧붙이는 글 국제갤러리 홈페이지 https://www.kukjegallery.com/
#김홍석 #개념미술 #뒤엉킴ENTANGLEMENT #이우환 #사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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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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